대권 재수 도전... 15대 총선 '전국최다득표' 화려한 입문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대통합민주신당 초반 4연전의 승기는 정동영 후보가 잡았다. 정 후보 측은 앞선 에비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손학규 후보와 0.29%라는 근소한 차이로 2위 자리를 얻으면서 '역전'을 자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후보의 新 대세론이 강하게 자리잡을수록, 동원경선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조직세에서 단연 우위라고 평가받는 정 후보에 대한 의혹이 점점 더 불어나고 있는 실정.

신당은 경선 시작전부터 '경선룰'로 인해 끊이지 않던 잡음이 '동원경선'이라는 절정에 다다르게 되면서 각 주자간 발언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손 후보 측은 29일 광주·전남 경선 결과에 따른 법적 공방도 검토하는 등 대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듯 각 후보 진영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29일로 예정된 광주·전남 경선과 무관치 않다. 사실상 신당 후보가 점쳐질 호남 경선은 세 후보 모두에게 사활을 건 승부처다.

호남 후보로써 일단은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평가되는 정 후보는 '호남후보 필승론'을 외치며 고삐를 단단히 죄고 있다. 정 후보가 호남에서의 승리로 승기를 확고히 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동원경선 논란 '법적공방'으로 번지나...

신당 초반 4연전 전체 득표수는 1위 정 후보 13910표, 2위 손 후보 9368표, 3위 이 후보 8925표로 집계돼, 정 후보가 손 후보를 4000여 표차로 따돌리며 새로운 대세론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만큼 강하게 제기된 것은 '동원선거' 논란이었다. 더욱이 투표율이 20% 안팎이라 조직력이 사실상 승부를 가르는 관건. 또한 충북지역에서 정 후보가 6334표로 압승을 거두면서(2위 손 후보 2920, 3위 이 후보 2760) 의혹은 더욱 커졌다.

손 후보는 강원·충북 개표 후 연설부터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심이 왜곡된다'며 동원선거의 폐해를 호소했고, 유시민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금 정동영 후보의 구호가 절대강자 정동영이던데 동원경선, 조직경선에 절대강자라는 것 인정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가운데 논란은 법적 공방으로까지 번질 위기에 있다, 손 후보 측은 21일 동원 의혹 차량 사진 및 제보내용 등의 자료를 신당 조사단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후보 측은 일단 당 차원의 진상조사 결과를 지켜본 후 29일 광주·전남 경선을 토대로 이를 법적인 문제로 끌고 갈지 여부를 결정할 태세다.

호남 후보로서 일단은 광주·전남 경선의 유리한 고지에 있는 정 후보 측이 29일 승기를 잡는다면, 그 영향력으로 앞으로의 경선판도가 정 후보 쪽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렇듯 각 진영이 '동원경선' 문제에 촉각을 세우고 있고, 그 외에도 모바일 투표, 최근 불고 있는 김한길 의원과의 당권 거래설 등 여러 변수가 존재해 정 후보가 역전의 기회를 성공으로 이끌지는 아직 미지수다.

참여정부의 황태자, 두번의 당의장과 통일부 장관
열린당 탈당으로 '의리없는' 후보 공세

이번 경선에서 '동원경선' 만큼이나 정 후보를 곤란케 했던 것은 '의리없는 후보'라는 타이틀이다.

이는 친노주자들의 단골 메뉴로 유시민 의원은 한 토론회에서 "정 후보에게 참여정부는 곶감항아리 같다. 가끔씩 와서 빼가고 의리는 지키지 않는다"며 "정치도 신의가 있어야 한다"고 정 후보의 열린우리당 탈당을 비판했다.

한명숙 전 총리도 "참여정부와 우리당의 황태자는 정동영이었다"며 "이런 사람이 좀 더 신의를 지켜줬다면 국민이 더 신의있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 후보는 이를 두고 '우리당 사수론은 민심과 동떨어 진다. 국민에 순종하는 정치가 좋은 것'이라며 반박했지만 당황하는 모습 또한 역력했다.

사실 정 후보가 '참여정부의 황태자'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정 후보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동교동캠프 맏형 권노갑 전 의원이 천거하여 정치권에 입문했다.

정 후보는 방송사의 간판 앵커로 인한 인지도,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 등의 장점으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전주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하며, 화려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그는 국민의 정부 시절 '권력의 2인자'였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정면 비판했던 '정풍운동'을 주도,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 했다. 청와대 회의석상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당정쇄신을 위해 권노갑을 2선 후퇴시켜야 한다며 정면승부를 건 것.

정 후보는 이로 인해 정치적 입지를 굳히며 쇄신파의 리더로 소장파의 적극적 지원을 받았다. 이렇듯 승승장구 가도를 달리던 정 후보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노무현 후보와 끝까지 경선을 완주해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또한 노무현 캠프에 합류, 높은 대중적 친화력과 뛰어난 언변을 무기삼아 '노풍'을 대통령 당선으로 안착시켰다.

그 후 정 후보는 두 번의 당의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이른바 참여정부의 황태자로 등극했다. 또한 통일부 장관은 현재 정 후보의 '개성동영'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정 후보는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 참패로 불명예 퇴진 했고, 지난 6월18일 열린우리당 탈당 등의 이력은 친노주자들이 '의리없다'는 공세를 퍼붓도록 만들었다.

그 후 정 후보는 17대 대선으로 대권 재수에 나섰다. 정 후보가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전국최다 득표 당선'이라는 화려한 입문으로 시작한 정치생활에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He is...
1953 전북 순창 출생
1972 서울대 국사학과 입학
1978~1995 MBC 기자, 앵커
1996 새정치국민회의 15대 국회의원 전주
2000 새천년민주당 16대 국회의원
2004 열린우리당 당의장, 통일부 장관(~2005.12)
2006 열린우리당 당의장으로 선출
2007 17대 대통령 후보 출마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