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투사, ‘세일즈’ 경기지사 거쳐 ‘대권도전’

‘손학규 대세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 초반4연전 이후, 손학규 후보는 정동영 후보의 조직세에 밀려, 4전 전패했다. 심지어 손 후보는 초반 4연전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1위 자리를 정 후보에게 내주고 만다. ‘민심의 손학규’란 슬로건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에 손 후보는 칩거 후 잠적 그리고 경선복귀의 일련의 과정을 밟으면서 선대본부 해체라는 최후의 카드를 펼쳐들었다.

조직.동원 선거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하는 한편, ‘민생대장정’으로 다시 돌아가,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조직력에 앞선 정 후보를 정치적으로 타격하기 위함이다.

특히 오는 29일 광주.전남 경선은 손 후보에겐 마지막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통합신당 및 민주개혁세력의 정치적 기반이자, ‘전략적 투표’ 성향의 호남에서 마저 손 후보가 1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정 후보의 ‘신대세론’의 열풍은 신당 경선판도를 뒤덮을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범여권 후보로 자리매김하려던 손 후보에게, 호남경선은 정치적 명운을 건 승부다.

신당경선 초반 4연전, ‘손학규 대세론’ 꺾여

대통합민주신당 본경선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초반 4연전에서 선두를 차지한 정 후보가 손 후보를 처음으로 앞섰다는 의외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가 하면, 양 캠프가 `조직선거` 논란을 놓고 사실상 사활을 건 전면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손학규 대세론’이 완전히 꺾인 상황이다.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KRC)’가 지난 17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정 후보는 전체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10.2%를 기록해 손 후보(4.5%), 이해찬 후보(4.0%)를 제쳤다.

범여권 대선후보 선호도에서도 정 후보는 21.7%로 손 후보(18.5%)와 민주당 조순형 후보(10.3%), 이해찬 후보(10.1%)를 앞섰다. 가상 대결에서도 ‘이명박(한나라당ㆍ56.1%)-정동영(21.9%)-권영길(민주노동당12.8%)’, ‘이명박(62.6%)-손학규(15.3%)-권영길(11.3%)’로 역시 정 후보가 앞섰다.

또 <한겨레>가 이날 ‘리서치플러스’에 맡겨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조사에서도 정 후보는 전체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9.7%를 기록해 손 후보(6.1%)와 이 후보(3.6%)를 제치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56.7%)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이 같은 결과는 초반 4연전을 ‘조직.동원’ 선거로 인해 정 후보가 승리했다고 주장하던 손 후보 캠프가 당황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손 후보 측은 반전을 고대하고 있다. 손 캠프의 우상호 전 대변인은 “대선 본선 승리를 사실상 포기하고 연고가 있는 일부 후보를 지원해 주자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패배주의의 산물”이라며 “손 후보의 본선 경쟁력이 확산되면 언제든지 여론은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상황이 녹녹치 않았다. 이에 따라 손 후보는 ‘선대본 해체’라는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이를 배수진으로 삼아, 오는 29일 광주.전남 경선에서 반전을 노리겠다는 복안이다.

그렇지만 정 후보가 전북출신이고, 신당 경선이 흥행에 철저히 실패하는 상황에서, 조직력의 승부가 쉽사리 변화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손 후보가 만약 호남 경선에서 1위를 확보, 역전의 교두보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범여권 최종주자의 꿈은 완전히 사라져버릴 위기다.

孫, 민주화투사에서 ‘세일즈외교’ 경기지사까지

이처럼 정치적 명운을 건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있는 손 후보는 1970년대 반유신 독재투쟁의 선봉에 섰던 민주화 투사였다. 그 당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조영래 변호사 등과 손 후보는 ‘서울대 3인방’으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1979년 10.26 사태 직후인 80년 ‘빈 머리 속을 채우겠다’는 말을 남긴 채,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1987년 6월항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에 머물렀다. 이후 인하대 교수와 서강대 교수를 거쳐 1993년 정치권에 입문했다.

손 후보는 문민정부 탄생 직후 개혁열풍이 불었던 이해, 14대 국회의원 보선에서 김영삼 당시대통령의 신임 속에 민자당 소속으로 경기 광명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이어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지내며 탄탄대로를 걷는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3선에 성공한 뒤 2002년 경기지사에 재도전한 끝에 승리를 안았다.

경기지사 시절에는 ‘세일즈 외교’를 펼치며, 외자유치전에 나서 114개의 첨단기업을 경기도에 유치하고 7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도내 성장률 7.5%를 달성하는 등 ‘일자리 만들기’의 강한 추진력을 과시했다.

2006년 6월에는 지사에서 퇴임하자마자 농.어촌과 탄광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100일 민심대장정’에 나서 서민속으로 파고드는 이미지를 선보인 바 있다.

이 같은 학생운동권에서 ‘일자리 만드는’ 경기도지사까지 다양한 이력을 가진 손 후보를 두고 일각에선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을 가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손 후보는 지난 3월 정치적 명운을 걸고, 한나라당 탈당을 감행한다. 손 후보는 ‘내부개혁’의 실패를 탈당의 변으로 들었지만, 범여권내에선 당내 경선을 통과할 자신이 없자, 탈당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과 이명박 후보에 맞서 과연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강하게 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울러 손 후보는 신당경선 초반4연전 후. ‘대세론’도 사라진 상태라, 대권가도에서 난관에 봉착해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손 후보는 혁신과 창조를 전면에 세우고, 선진경제, 통합사회,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新창조국가’ 건설을 미래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하는 선진경제 구상은 일자리 창출이 핵심이다. R&D(연구개발)에 5년간 100조원을 투자하고 국가급 인재 1만명을 길러내는 한편, 첨단산업 육성과 글로벌기업의 10배 유치 등을 제안했다.

또 서민층을 겨냥, ▲(실)업이 없는 나라 ▲(사)교육비 부담이 없는 교육 ▲(구)김살 없는 노후생활 ▲(시)름없는 내집마련 등 소위 ‘실사구시’ 정책을 내놓았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반도 상생경제 10개년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He is...
1947년 경기도 시흥 출생
1977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이회 인권운동 간사
1988년 인하대학교 정치회교학과 교수
1990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3년 제14대 민자당 국회의원
1995년 민자당, 신한국당 대변인
1996년 제15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2000년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2년 제31대 경기도 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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