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영결식…참석자들, 조사(弔詞) 들으며 눈물
용접공으로 시작해 진보정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삼성 X파일로 주목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국회 본청 앞 정현관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되고 있다. <사진=이은재 기자><br></div>
 
▲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국회 본청 앞 정현관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되고 있다. <사진=이은재 기자>
 

[폴리뉴스 신건 기자]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 정현관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이날 서울의 기온은 29.9도(기상청 자료 기준)로 무더운 날씨였지만, 유족들과 동료의원, 시민들까지 2천여 명이 영결식에 참석해 노 의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노 의원의 영정사진 앞에는 위패가 놓였으며, 국회 본청에는 검정색 배경에 하얀 글씨로 ‘노회찬 국회의원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는 글귀가 써졌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고 노회찬 원내대표 영결식에서 영결사를 읽고 있다. <사진=이은재 기자><br></div>
 
▲ 문희상 국회의장이 고 노회찬 원내대표 영결식에서 영결사를 읽고 있다. <사진=이은재 기자>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영결사에서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 입구에서 노 의원의 모습이 보일 듯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노 의원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문 의장은 “노 의원은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다. 보장된 주류의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 온몸을 던져 투쟁했다”며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주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노 의원이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편안을 누리시라”고 노 의원의 안식을 기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노회찬 의원 영결식에서 조사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은재 기자><br></div>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노회찬 의원 영결식에서 조사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은재 기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 명을 잃은 것이 아닌,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한 것”이라며 “노 의원이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 할 때, 그 짐을 나눠지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라는 시민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다”며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다. 노 의원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소수자들과 약자들을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며 “먼 훗날 다시 만나 진보정치의 꿈을 이루고, 평등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 낭독 중 눈물을 흘리는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사진=이은재 기자><br></div>
 
▲ 조사 낭독 중 눈물을 흘리는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사진=이은재 기자>
 

노 의원과의 30년 인연을 가지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는 흐느끼며 노 의원의 이름을 불렀다. 

심 전 대표는 “노동운동가로 알게 돼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됐다”며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지만 노 의원이 열어주었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노 의원과 함께였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 원통하다”며 “노 의원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심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대한문 앞에서의 단식농성을 언급하며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약속을 꼭 지켜낼 것이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호규 금속노동자는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을 바꿔도 함께했던 선배였다”며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다.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한 얄팍함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갈등했던 기억은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닷가에서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다”며 “진보정당 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 산자의 결기로 나아가겠다”며 노 의원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노 의원의 안식을 기원하는 말로 조사를 마무리했다.

▲시민 2천 명, 영결식에 참석해 노 의원 마지막 길 배웅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시민들은 노 의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국회 본청 앞에 자리했다. 일부 시민들은 조사가 낭독되자 눈물을 흘리며, 노 의원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한 시민이 27일 국회에서 진행된 노회찬 의원 영결식에서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사진=신건 기자><br></div>
 
▲ 한 시민이 27일 국회에서 진행된 노회찬 의원 영결식에서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사진=신건 기자>
 

두 명의 자녀와 함께 노 의원의 영결식을 지켜본 강미영 주부는 “여성과 노동자를 위해 힘쓰셨던 분이 허망하게 가셔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며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려 참석했다”고 밝혔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영결식에 참석한 김두현(가명) 씨는 “처음 노 의원의 부고를 접했을 때는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며 “노 의원님이 노동자의 편에서 많은 목소리를 내주셨다. 노 의원처럼 열정적으로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국회 청소노동자인 김선민(가명) 씨는 “노 의원님은 ‘여성의 날’이라고 장미꽃도 챙겨주시고,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주시는 몇 안 되는 의원님”이라며 “안타까운 분을 잃었다. 당분간은 510호(노회찬 의원실)를 지날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슬퍼했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고 노회찬 의원 책상. 정책자료와 참고서적이 놓여져 있다. <사진=신건 기자><br></div>
 
▲ 아직 정리되지 못한 고 노회찬 의원 책상. 정책자료와 참고서적이 놓여져 있다. <사진=신건 기자>
 

영결식 행사 직후에는 유족들이 노 의원의 위패와 영정사진을 들고 국회 의원회관 노회찬 의원실을 둘러보는 노제를 지냈다. 

노 의원의 책상은 법안 준비를 위한 서류들로 어지러웠으며, 책장에는 ‘정책 스터디’, ‘조세개혁’, ‘국정농단’ 등 각종 자료들로 빼곡했다. 노 의원이 생전 열심히 일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제를 마친 유족들은 의원실을 나오면서 문에 게시된 노 의원의 생전 활동사진과 ‘노회찬’이라고 적힌 의원명패를 어루만지며 다시 한 번 눈물을 쏟아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노회찬 의원의 비서를 끌어안고 오열했으며, 한 정의당원은 노 의원의 책상을 붙잡고 “형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슬퍼했다.

노 의원은 이날 오후 1시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돼 영면에 든다. 

▲용접공으로 시작해 진보정치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노회찬 의원은 1956년 부산 출생으로, 1982년 용접기술을 배워 노동자로 생활하다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구속돼 3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후 정치운동가로 활동하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다.

지난 2005년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서울 중구 삼성본관 앞에서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 'X 파일' 관련 거리 연설회에서 당원들과 삼성의 비리척결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br></div>
 
▲ 지난 2005년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서울 중구 삼성본관 앞에서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 'X 파일' 관련 거리 연설회에서 당원들과 삼성의 비리척결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 의원의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년 후인 2005년, 이른바 ‘삼성 X파일’을 폭로하면서부터다. 

‘삼성 X파일’은 지난 1997년 9월 삼성그룹이 검사 7명에게 뇌물을 제공한 내역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불법도청을 통해 녹취한 사건으로, 노 의원은 2005년 해당 자료를 입수‧폭로했다

이 일로 인해 노 의원은 지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2013년 2월 14일 대법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형을 확정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당시 노 의원은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 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이라며 “법 앞에 1만 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 국회를 떠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 성산으로 출마,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또 정의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당을 이끌어왔으며, 2018년 6월 원내대표로 재선출 됨으로써 ‘원내대표 3연임’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올해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받아왔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해야 한다”고 가장 앞장서서 말해왔다.

개혁법안과 활동을 통해 진보정치의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드루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특검팀이 ‘드루킹이 노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낸 정황을 포착했다’며 압박해오자, 지난 2018년 7월 23일 노 의원의 동생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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