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윤청신 기자]

SBS 새드라마 '사의찬미'가 27일 첫 방송된 가운데 신혜선이 맡은 윤심덕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윤심덕은 '사의 찬미'로 유명한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본관은 파평, 호는 수선이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었으며, 자라서 소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던 중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1921년 귀국하여 순회공연을 하던 도중 극작가 김우진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26년 8월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연락선에 탑승한 두 사람은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언론에서는 투신이라 보도했지만 사고사이거나 타살의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이들의 정사(情死) 사건은 영화 <윤심덕>과 연극 <사의 찬미> 등으로 극화됐다.

1897∼1926. 호는 수선(水仙)이며 평양 출생.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으며, 강원도 원주에서 1년여 동안 소학교 교원을 한 뒤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우에노(上野)음악학교 성악과에서 수업받았다.

1921년 동우회(同友會) 등의 순회극단에 참여하면서 극작가 김우진(金祐鎭)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22년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조교생활 1년을 마친 뒤, 1923년 6월 귀국하자마자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짐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데뷔하였다.

이때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모든 음악회 프로에는 항상 윤심덕을 넣을 만큼 일약 스타가 되었다. 양악이 수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제대로 성악을 공부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풍부한 성량과 당당한 용모 또한 대중을 휘어잡았다.

그러나 정통음악을 가지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사생활과 함께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세미클래식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하였다. 한때 극단 토월회 주역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하였으나 연기력이 없어서 실패하였다.

대형 오페라가수를 꿈꾸었던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중가요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꿈꾸었던 예술 조국을 만들기에는 이 땅이 너무 낙후했고 견고한 유교적인 인습은 그녀를 더욱 못 견디게 하였다.

특히 유부남 김우진과의 사랑은 진보적인 도덕관을 지닌 그녀를 궁지로 몰아갔다. 1926년 여동생 성진(聖眞)의 유학길 배웅을 위하여 일본에 간 그녀는 닛토(日東)레코드회사에서 24곡을 취입한 뒤 먼저 와 있던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서 정사하였다. 그녀가 남긴 '사의 찬미'는 오늘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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