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정보와 판단력 만큼 중요한 요건은 시간이다. 서울 한복판이 아니라 나라를 온통 난리판에 몰아 넣은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대란은 그 좋은 예이다. 언론의 시선은 처음에는 안전불감증에서 시작해 초연결사회로 연결됐다가 사고 발생 2~3일로 접어들면서 통신의 공공성 의무를 팽개친 자본주의적 이윤극대화 경영에 화살을 모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안전불감증과 이윤극대화는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 없다. KT 전직 임원인 대학교수가 라디오방송에 나와 이를 지적하고 나섰을 정도다. 경영합리화를 위한 무리한 지사 통폐합으로 서울 도심인 아현지사를 D등급으로 낮춰놓고 관리를 했으니 이런 사고를 자초했다는 내용이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참사를 넘어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재난사는 철저히 사회적 재앙으로 얼룩져 있다는 점에서 국가의 선진지수를 거덜내는 심각한 감점 요소가 돼 왔다.

이번 사태에서 2차적 책임의 한 당사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고 현장 방문 당시 발언이 내포한 문제점도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고 있다. 박시장은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을 거론하며 과학기술로 화려하게 포장된 대도시가 재앙에 직면할 경우 드러나는 나약함과 위험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 사무를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민첩하게 인용한 사회학자 벡은 현대사회의 재난 취약성을 강조하면서 위험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촉구하면서 책을 마무리 했다. 바꿔 말하면 폭력혁명론까지는 나가지 않더라도 현대의 재난 프롤레타리아들이 위험사회를 음모하는 권력과 자본가들에게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박시장의 의도와 달리 이번 사태에 대한 위험사회론적인 접근은 무한증식에 매몰된 자본의 야만성과 권력의 방조에 대해 시민의 자각과 저항을 촉구하는 한 계기로서 충분하다. 

이번 사고로 들여다본 KT는 '하인리히 법칙'이 지하통신구를 비롯한 직원들의 작업현장이 아니라 어이 없게도 최고경영자의 집무실에서 먼저 작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크고 작은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이 법칙은 황창규 회장의 지난 4년 10개월을 대입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소위 '주인 없는 회사'에서 오너도 아닌 CEO로 부터 비롯된 내우외환이 오너 리스크 보다 더 심각했다. 정신이 어지러우면 여기저기 뼈마디가 쑤시고 삐걱거리는 건 인체의 원리를 넘어서 가족, 기업, 국가, 지구의 전 영역에도 똑 같은 이치다.

물론 황창규 회장에게도 얼마든지 억울하고 답답한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KT를 둘러싼 경영환경은 CEO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을 사정을 감히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경쟁단위가 글로벌로 확대된 IT업계 총아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회사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전 구성원이 눈에 불을 켜고 일하는 최선두에서 서야 한다. 날만 새면 회장을 둘러싼 묵은 뉴스가 지면을 채우는 상황에 회사의 기강이 어떻게 바로 서겠으며 지하통신구인들 저런 사단이 어떻게 안 일어날 수가 있겠는가. 황 회장은 '통신 문외한'이라는 조롱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이번 일을 잘 수습한 뒤 자신과 회사의 명예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담대한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재난에 대한 기업인의 책임은 이번 KT 통신구 화재 대란처럼 위험사회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만큼 더 철저하게 다뤄져야 한다. 포스코 최정우 회장의 경우는 두 명의 전임 회장 재임 기간 발생한 사회적 재난에 대한 책임을 승계한 사례이다. 최 회장이 과연 포항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지열발전소 컨소시엄에 대한 포스코 참여 과정에 대해 그 심각성을 인식할 만큼 충분한 보고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 포스코의 앞에는 지열발전소 사업 참여 과정을 규명하는 한편 그 책임을 따져보는 시간이 저장된두 개의 알람시계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전자는 2009년 정준양회장 체제 출범, 2010년 박영준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의 취임과 포스코의 사업 참여 및 시행사 (주)넥스지오에 대한 정부의 사업자 선정, 유력 기업인이던 C씨의 개입설 등 석연 찮은 의혹에 대한 규명이다. 권오준 회장 당시 회사는 정부의 지침 대로 규모 5.4 강진 사태 이전에 발생한 사전 유발지진을 보고받았다는 의혹도 있다. 후자는 내년 4~5월 예정된 정부정밀조사단의 포항지진 원인 연구조사 결과 발표 이후 촉발될 또 다른 민형사 소송이다. 정부의 판단이 유발지진으로 기운다면 포스코가 성공신화를 창조한 포항에 미증유의 유발지진 피해를 초래했다는 끔찍한 비난과 오명이 따라다닐 것이다. 최정우 회장이 헤쳐가야할 포스코 바로 세우기 노정에는 전임 회장 재임 기간의 사회적 재난 유발 책임 논란과 청산도 분명히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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