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가 회계처리 불확실성 높여, 재량권 남용 막는 제도 장치 필요해

지난 28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판정이 남긴 교훈과 과제’ 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국제회계기준(IFRS)이 기업에 부여한 회계처리 재량권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사진=강민혜 기자>
▲ 지난 28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판정이 남긴 교훈과 과제’ 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국제회계기준(IFRS)이 기업에 부여한 회계처리 재량권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사진=강민혜 기자>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회계 사태를 두고 국제회계기준(IFRS)의 원칙 중심 회계처리 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IFRS가 기업에 부여한 회계처리 재량권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가 이번 분식회계 판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IFRS가 국내 기업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판정이 남긴 교훈과 과제’ 토론회를 열고 “IFRS에 따른 회계 처리는 회계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견이 많다”며 “IFRS가 국내에 제대로 정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IFRS는 우리나라가 지난 2011년 도입한 ‘원칙 중심’ 회계 처리기준이다. 최근 삼성바이오가 지난 2015년 종속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해 회계처리 한 것을 두고 “IFRS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같은 사항에 대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IFRS를 넘어선 “고의 분식회계”라고 판단한 바 있다.

IFRS가 도입되기 전 우리나라는 ‘규정 중심’ 회계 처리기준을 따랐다. 기업이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규정해 놓는 식이었다. 이 경우 기업 회계담당자는 회계 처리를 하면서 헷갈리는 부분이 생기더라도 규정에 적혀있는 대로만 처리하면 됐다.

반면 IFRS는 ‘규정 중심’과 다른 ‘원칙 중심’ 회계 처리기준이다. 상세한 회계 처리 규정 대신 회계처리의 큰 원칙과 개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원칙 안에서 기업과 경영자에게 회계 처리 재량권과 그에 따른 책임을 부여한다. 기업 스스로 자사의 실적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회계를 처리하란 취지에서다.

이날 토론에서는 IFRS를 두고 회계전문가 사이에 날 선 공방이 오갔다. 특히 IFRS가 기업에 부여한 회계처리 재량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견이 많았다.

토론회 발제자였던 손혁 교수는 “여러 연구에 따르면 기업과 경영자는 자신의 유인(incentive)에 의해 IFRS가 부여한 재량권을 남용할 우려가 있다”며 “현행 IFRS가 국내에서 잘 작동하도록 기업과 경영자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고 악의적으로 남용할 경우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또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IFRS의 원칙 중심 회계 처리를 위반한 기업의 IFRS 재량권 남용 사건이며,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고의 분식회계 판단은 국내에서 이를 분별한 첫 사례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IFRS는 폭넓게 기업과 경영자의 재량권을 허용하지만 이를 이용해 회계처리를 마음대로 하도록 허용한 것은 아니다”며 “삼성바이오와 같이 IFRS 재량권을 남용하는 기업을 막기 위해선 다면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홍순탁 회계사도 “IFRS의 재량권은 기업이 경제적 실질을 충실히 보고하게끔 하려는 것으로 재량권을 합리적으로 행사하라는 책임을 함께 부여하고 있다”며 “그 관점에서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를 보면 명백한 분식회계”라고 설명했다.

홍 회계사는 삼성바이오가 IFRS의 재량권을 넘어선 회계 처리를 했다는 근거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삼성그룹 내부문건을 들었다. 그는 “문건을 보면 삼성바이오가 주식 가치 평가액이 하락하게 된 상황에서 이를 할인율 조정으로 상쇄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며 “IFRS가 회계 처리 재량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의도한 결과에 맞추어 인위적으로 할인율을 조정하도록 허용하고 있진 않다”고 분석했다.

반면 또 다른 토론자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동현 회계사는 “원칙 중심 회계 처리기준인 IFRS에서 부여된 경영자의 재량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은 재량권 남용이 아닌 IFRS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계사는 “IFRS 적용의 근본적 한계는 경제적 실질 반영을 위해 끊임없는 선택과 판단이 요구되나 이를 위한 잣대나 가이던스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국제회계기준이사회에 문의를 해도 구체적인 가이던스 없이 원칙 중심으로 자체 판단하라고 답변이 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사후 적발 및 징계 위주의 감리제도가 운영됨에 따라 기업 회계처리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가중되고 있다”며 “증선위가 내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판단도 이러한 불확실성을 높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같은 회계기준 안에서 다양한 회계 처리가 존재할 경우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대안을 기업이 주석으로 공시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회계사는 “이런 내용이 공시되면 투자자가 좀 더 합리적인 투자의사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감독 당국이 하나의 거래에 2개 이상의 회계 처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을 가진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유승경 책임연구원도 IFRS가 부여한 재량권의 허용범위를 하나의 답으로 규정하긴 힘들다고 밝혔다.

유 연구원은 “IFRS에서 허용하는 재량권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당연히 원칙 중심”이라며 “일관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원칙을 벗어나는 고의적 회계 부정행위는 재량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우리나라 회계환경 자체가 하나의 답을 내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우리와 달리 유럽이나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서는 하나의 회계 처리에 대해 단일의 답을 내놓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IFRS의 재량권 범위를 일괄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기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 연구원은 삼성바이오에 대한 증선위의 고의 분식회계 판단을 거론하며 “감독 당국이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기업의 잘못에 대한 제재는 감독 당국이 아닌 시장 자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감독 당국이 회계 처리가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렸을 때 1차적으로 사업보고서를 정정하라고 지시한다”며 “처음부터 징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잘못을 받아들이고 회계처리를 정정하면 더 이상의 제재를 하지 않고 불복할 경우에만 징계 절차를 밟는다”며 “기업이 자발적으로 정정한 회계 처리는 공시를 통해 시장에 공개되고 평가받게 되는데 우리도 이런 부분을 참조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유럽에서 만들어진 IFRS는 현재 140여 개 국가가 도입하고 있다. 엔론 분식회계 사태로 미국 회계기준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IFRS가 국제 사회의 호응을 얻은 탓이다.

앞서 우리나라는 회계 처리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IFRS 도입을 결정했다. 여러 나라가 사용하는 통일화된 회계 처리기준을 도입할 경우 기업 회계처리에 대한 투명성과 신뢰성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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