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문재인 대통령은 11월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한 자리에서 독일의 하르츠 개혁과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을 언급하며 저성장 고실업의 위기를 극복할 ‘사회적 대합의’의 성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앞에 놓인 길은 쉬운 길은 아니다. 이에 <폴리뉴스>는 국내외의 주요 사회적 합의 경험을 돌아보고 새로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과제를 살펴보는 기획을 시작한다. 첫 번째 순서는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다.

독일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의 노동이사였던 페터 하르츠의 이름을 딴 ‘하르츠 개혁’은 1990년대 10% 내외로 치솟았던 독일의 높은 실업률을 잡기 위해 2003년부터 3년간 추진된 노동시장 개혁방안이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하르츠 개혁을 모범으로 삼아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려 했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도 올해 신년연설에서 이를 언급한 일이 있었다.

사진 = Sven Simon
▲ 사진 = Sven Simon

'어젠다 2010'으로도 불리는 하르츠 개혁은 실업자 지원 중심의 독일 복지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침체에 빠진 독일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시행됐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사회적 합의 과정보다는 개혁의 과단성과 일자리 수 증가에 초점이 맞춰져 언급된다.

결과적으로 하르츠 개혁은 실업자 수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해 오히려 노동시장을 악화시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르츠 개혁은 ‘미니잡’, 즉 파트 타임 일자리나 파견근무, 저임금 노동을 늘렸다. 애초에 기업의 고용을 촉진함으로써 실업자가 빠르게 일자리를 찾게 하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32개월에 달하는 실업급여를 18개월로 단축시켰다. 실업자의 구직활동을 장려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미니잡’이라 불리는 적은 노동시간으로 일할 기회를 늘렸다. 이는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시장 재통합과 장기 만성실업자의 노동시장 편입을 노린 것이다.

짧은 노동시간과 미니잡에 부여되는 근로소득 면세·사회보험료 면제 혜택이 전일제 정규직 배우자를 가진 여성에게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노동자뿐 아니라 사업주에 대해서도 정규직에 비해 적은 노동비용을 부담하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어 미니잡에 대한 사업주들의 선호 역시 높은 편이라는 평가다.

반면 정규직 배우자가 없는 여성단독가구나 여성가구주로서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 저임금·단시간 일자리 외의 선택지를 찾기 힘들어졌다. 또한, 미니잡을 통해 제공되는 일자리는 성격상 숙련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 직무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시장으로 이동하려는 실업자에겐 이직을 위한 경력개발 기회가 박탈됐다.

하르츠 개혁은 16년 보수연합 정권을 교체하며 새롭게 등장한 사민당·녹색당의 연정을 이끈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주도로 이뤄졌다는 특징이 있다. 자신의 지지기반에 반하는 친기업적 정책 노선을 폄으로써 결국 개혁은 성공하고 자신의 집권 기간은 단축하게 한 셈이다.

하르츠 개혁안은 4개의 법안으로 분리돼 법령화되고 2003년부터 3년간 시행됐다. 하르츠 법안은 독자적인 법률이 아니라 노동시장과 사회정책에 관한 기존 법령 개정방안을 집약해 놓은 것이다. 3년에 걸친 하르츠 개혁이 종료된 뒤 최대 500만 명에 달했던 독일의 실업자 수는 현재 절반 이하인 20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친기업적 경제개혁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살아났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과연 독일 경제의 재도약이 하르츠 개혁 덕분일까. 유럽 국가들의 노동 연금 정책을 연구해 온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Jorg Michael Dostal)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부터 현재까지 10여 년의 독일 성장은 유럽 통합에 따른 통화 절하 효과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슈뢰더 방식의 노동, 복지개혁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앞서 지적한 것처럼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하르츠 개혁은 꾸준히 인용됐다. 하지만 독일이 이를 통해 비정규직을 늘렸다는 사실, 연금을 축소했다는 사실만 떼어와 한국에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독일은 우리나라만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단국대 국제통상학부 한종수·정미경 교수는 연구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독일의 시간제 근로자는 적게는 전체 임금근로자 임금의 54.1%에서 많게는 76.2%까지 받았다. 반면 한국은 같은 시기 시간제 근로자가 전체 임금근로자 임금의 25.7%밖에 받지 못했다.

하르츠 개혁을 무작정 도입하기 전에 독일 사회에서 그것이 받아들여진 사회, 제도적 맥락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우선 독일은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오래전부터 확보하고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대학 등록금에 많은 돈을 지출하지만, 독일은 국가에서 지원이 나온다. 이렇듯 실업급여 축소와 노동시간 축소로 줄어든 임금이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통해 상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에 이은 산입범위 확대 논란과 탄력근로제 연장을 두고 정부·여당과 노동계가 힘겨루기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하르츠 개혁은 사회적 합의 테이블에 이해당사자들이 어떻게 나오게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답안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해당사자의 양보를 끌어내기가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과정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