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지난달 31일 국회 운영위원회 질의에서 준비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PPT 화면이다.
▲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지난달 31일 국회 운영위원회 질의에서 준비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PPT 화면이다.

다사다난했던 2018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은 ‘조국 청문회’로 대미를 장식했다.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검찰 수사관의 폭로로 촉발된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출석한 가운데 국회 운영위원회가 열리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운영위에 출석한 것은 지난 2006년 8월 노무현 정부 당시 전해철 민정수석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날 운영위는 한국당의 줄기찬 요구로 소집됐다. 한국당은 조국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을 요구하며 사실상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처리와 연계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여러 차례 국회를 방문해 눈물을 흘리며 ‘김용균법’의 조속한 처리를 호소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지난 27일 오전 참모진과 티타임에서 조 수석의 운영위 출석 문제로 ‘김용균법’ 처리가 난항을 겪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조 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을 지시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 탄핵까지 언급했을 정도로 잔뜩 벼른 만큼, 이날 운영위에서 여러 의혹들이 조금이라도 규명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15시간 가까이 이어진 운영위에서 청와대의 “사찰하지 않았다”는 반박을 한국당이 제대로 뚫지 못하면서 운영위 소집이 조 수석에게 면죄부만 주는 꼴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당 이만희 의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증거라며 김정주 전 환경산업기술원 본부장의 음성파일을 공개했지만 자책골로 끝이났다. 김 전 본부장은 2년 임기를 채우고 1년 연임까지 했으며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비례대표 23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의원의 폭로는 신뢰성을 잃었다.

특히 본질과 상관없는 한국당 전희경 의원의 색깔론 공세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전 의원은 ‘조국 그는?’이라는 제목의 PPT 화면을 준비하고 “요즘 인기 있는 예능 프로에 ‘전참시(전지적 참견 시점)’라고 있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참여연대로 구성된 시대착오적 수구 좌파정권의 척수”라고 목청을 높였다.

전 의원은 “문재인 정권의 인사 낙마자들을 보면 참여연대, 민변 출신으로 조국 수석과 다 인연이 있다”며 “조 수석은 서울대 법대 출신, 참여연대 출신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전력이 있다. 이 분이 무능한 분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분이라 생각했다”고 비꼬았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어쩐지 색깔론이 왜 안 나오나 했다”라고 야유가 터져 나왔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참여연대와 민변 전대협 출신을 ‘극렬 좌파’라 비난하는 건 묵과할 수 없다”며 “오랜 역사 속 고통 받아온 이들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라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 의원의 색깔론 공세는 그의 그동안의 행보를 본다면 사실 놀라운 것은 아니다. 재작년 11월 6일 청와대 등을 상대로 진행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희경 의원은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색깔론을 제기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전 의원은 전대협 출신의 임 실장을 겨냥해 “청와대 구성이 전반적으로 한 축(전대협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으면서 말끝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중요성을 운운하는 게 이율배반적”이라며 “전대협 강령과 회칙을 보면 전대협 강령 전문에는 미국에 반대하고 회칙에는 민족과 민중에 근거한 진보적 민주주의 구현을 밝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청와대에 들어간 전대협 많은 인사들이 이런 사고(반미)에서 벗어났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색깔론을 제기했다.

전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던 임 실장은 “전 의원의 말씀에 매우 모욕감을 느끼고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고 “그게 질의입니까, 의원님 그게 질의입니까”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한국당은 지난해 6·13 지방선거 결과 전국 광역단체장 17곳 가운데 대구·경북 2곳에서만 간신히 당선자를 내는 참패를 기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대참패를 하면서 보수가 궤멸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당의 지방선거 참패 원인으로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나 혁신적 변화는 전혀 없이 색깔론에 기대려는 수구적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홍준표 당시 대표는 남북 교류 흐름을 “위장평화쇼”라고 폄하하는 데만 열을 올렸고, 한국당은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습니까’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안보 공세를 퍼부었다. 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 대해서도 “사회주의 헌법 개정쇼”라고 색깔론을 덧씌우기에 바빴다.

한국당이 새롭게 거듭나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색깔론에서 벗어나 건전한 비판과 대안 제시를 해야 한다는 지적은 하루이틀 거론됐던 얘기가 아니다.

로버트 켈리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부산대 정치학과 교수)은 지난달 29일 ‘자유한국당은 어떤 길을 가야 할까’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한국당은 당면한 사회문제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루기 위한 새로운 정책과 이념을 필요로 한다”며 “대한민국 보수는 너무 오랫동안 반공 및 친재벌 이념 안에서 타성에 젖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색깔론과 빨갱이 사냥은 이제 버려야 한다”며 “민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북한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북한의 조종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희경 의원을 비롯한 일부 보수 인사들은 주머니 속 사탕처럼 꺼내드는 ‘색깔론’을 버릴 수 없는 모양이다. 그 의도가 일부 특정 지지층을 겨냥한 것이라면 한국당의 고리타분한 ‘색깔론’에 염증을 느끼는 나머지 국민들은 외면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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