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자서전 통해 “대통령 아들, 명예라기보다 ‘멍에’”
박지원 “김홍일, 고문 후유증으로 10여 년 이상 투병”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홍일 전 의원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홍일 전 의원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향년 71세로 전날 20일 오후 5시께 별세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8분께 서울 서교동 자택 안방에서 김 전 의원이 쓰러진 것을 관리인이 발견해 119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접수한 직후 구급대를 출동시켜 CPR 등 의료지도를 시행했고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오후 5시 4분께 김 전 의원은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 공안당국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 이상... 파킨슨병 얻어
김 전 의원은 1971년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선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고초를 겪었고, 1980년 당시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공안당국에 의해 고문을 당했다. 이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파킨슨병까지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당민주당 소속으로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이 있다.

재선 의원 시절 파킨슨병이 발병해 불편을 겪었고, 3선 당시 미국을 수차례 오가며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건강이 나빠져 의정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6년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에게 인사 청탁 대가로 1억 5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가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이후 그는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다.

김 전 의원은 2001년 출간한 자서전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를 통해 죽고 싶을 만큼 고문이 고통스러웠다고 토로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아들은 당사자 입장에서 명예라기보다 ‘멍에’요, 행복 쪽이라기보다 불행 쪽이지 않았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DJ 비서실장 박지원 및 각 정당 애도 물결
김 전 의원의 비보 소식에 정치권에서 애도가 이어졌다. DJ의 마지막 비서실장이라 불리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김 전 의원의 별세 직후 “김 전 의원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께도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 운동과 평화통일 운동에 헌신하셨으며 군사정권의 고문 후유증으로 10여 년 이상 투병하셨다”며 “하늘나라에 가서 부모님 만나 한반도 평화통일과 고문 없는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일을 하시리라 기도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을 통해 “김 전 의원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며 “고인이 꿈꿨던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고인의 뜻을 받들어 우리 당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으로 “김 전 의원의 국가를 위한 애국심과 생전 의정활동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국민이 크게 안타까워할 것이다”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목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의 역경과 고난을 함께 한 분”이라고 했다.

김정현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암울한 시절 민주연합청년동지회를 결성해 이 땅의 민주화 운동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큰 힘을 보탰다”고 평가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을 통해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고문 등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민주화를 향한 고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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