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23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와 삼성물산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대법원이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한 삼성그룹 차원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있었다고 판단한 지 한 달 만이다.

검찰이 옛 삼성물산 1대 주주(지분율 11.6%)로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을 압수수색한 점에 비춰 수사가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부정 의혹'이라는 종착점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와 서울 강동구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처음이다. 과거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016년 11∼12월 연달아 국민연금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외관상 검찰 수사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캐고 있지만, 본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삼성바이오 회계 변경→삼성바이오 유가증권시장 상장'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부정 의혹을 규명하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바이오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분식회계를 통해 고의로 가치를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는다.

삼성바이오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이 부회장 지분(23.2%)이 많은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은 많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없어 제일모직 가치가 높게 평가될수록 이득이었다.

삼성바이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콜옵션 부채가 2012∼2014년 회계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제일모직이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된 상태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뤄졌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국민연금이 던진 주주총회 찬성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민연금은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 지분(46.3%) 가치를 6조6천억원으로 추산하고,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맞바꿈으로써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1 대 0.35)에 찬성했다.

이로써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 과정에서 딜로이트안진과 삼성KPMG 회계사들로부터 "삼성이 주문한 대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 1대 0.35가 정당하다'는 보고서 내용을 작성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정해진 합병 비율에 맞추기 위해 제일모직 가치는 높이고 삼성물산 가치는 낮추는 식으로 보고서 내용을 조작했다는 진술이었다.

제일모직 바이오사업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동시에 삼성물산의 경우 현금성 자산 1조7천억원가량을 누락하고 광업권도 자산 평가에서 사실상 제외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건설 경기가 좋았는데도 삼성물산 건설부문 실적은 줄었고, 국외사업 수주 발표를 늦추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합병 비율 보고서는 국민연금의 판단 근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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