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란 우정의 품격. '마스크'란 친구의 염치.

제목 :여름 ....쉼 / 크기 :61.0×61.0(cm) / 재료:mixing on canvas / 작가:현라라<br></div>
작품설명: 사계시리즈 중 여름을표현한 작품. 계절을 연상할수있는 색상과 표면의 마티에르로 바람의흐름을 표현하였으며 커다란 나무밑 공간에 안식을취한 토끼의 형상으로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표현하고자 했다.
▲ 제목 :여름 ....쉼 / 크기 :61.0×61.0(cm) / 재료:mixing on canvas / 작가:현라라
작품설명: 사계시리즈 중 여름을표현한 작품. 계절을 연상할수있는 색상과 표면의 마티에르로 바람의흐름을 표현하였으며 커다란 나무밑 공간에 안식을취한 토끼의 형상으로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표현하고자 했다.

 

5월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위시하여 결혼하기 가장 좋은 계절, 성인의 날, 부부의 날, 가족을 위한 축제의 계절...

 

5월이 떠났다. 

초1은 '입학식'을 잃어버렸고 어린이날이 뭔지도 모르게 됐다. 고3은 '수능시험'에 실패했고 '수시모집'도 사라졌다. 외계생명체 중2는 '어쩌다 개학'으로 친구들 반갑다고 부비부비하다, 종일 마스크로 입막혀 코막혀 교실에 감금돼 이 세상을 하직했다. 어버이의 가슴에 달릴 '카네이션'은 어버이보다 먼저 도라(?)가셨고, 결혼에게 5월의 예식장은 텅텅 비었다. 축복의 하객으로 갔다가 주검으로 이별하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5월이 만났다.

'잘못된 만남'이란다. 모두 '위기'에 관한 담론들뿐이다. 근본이 흔들리고 진위는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코로나팬데믹은 생물학적 위기만을 뜻하지 않는다.

올해 5월의 '이별과정'은 너무나 서글펐다. 너무 서글퍼 이 모든 위기를 '이별'이라 부르자. 우리는 '이별하는 법'을 너무 모른다. 이별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고통을 견디는 법'에 너무 서툴다. 즉 '만남'에 '예의가 없다. 삶을 만나는 태도에...

초딩에서 고3에게, 신혼에서 어버이까지 단 한마디, 모두 내가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만 했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내탓이 아니라고 상대를 비방하고 흠집내기를 하는 동안 사랑했던 시간들과 그 사랑의 진정성까지도 의심하게 만드는 사태가 무슨 '이별의 공식'처럼 벌어진다.

이별은 아프다. 아픔은 견딜 수밖에 없고, 그래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드라마는 끊이질 않는다.  참 나이스한 경우도 많은데 말이다. 부부가 이혼하면서 소송도 없이 재산을 의논껏 나누고, 지난 결혼생활은 행복했고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면 된다. 이별의 고통을 과거에 진정으로 사랑했던 시간에 대한 존중으로 바꾸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별! 헤어질 때는 꼭 이러더라! 사랑이 부족하다고. 대화가 필요하다고. 정말 그럴까? 유사 이래 지금보다 더 사랑과 대화가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결핍'이 아니라, '과잉' 때문은 아닐까? 더 구체적으로는 모든 시선과 욕망을 오직 '인간'을 향해서만 쏠리게 만드는 이 지독한 '인본적 계몽',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지.

제목:섬과 동백꽃 / 재료:mixed on canvas / 작품크기: 27.3*19 작가:윤수미<br></div>
작품해설: 툭떨어지는 돈오의 깨달음,동백꽃 내마음에도 언제나 깨달음과 지혜가 가득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려보았습니다.부산 동백섬을 바라보면서...
▲ 제목:섬과 동백꽃 / 재료:mixed on canvas / 작품크기: 27.3*19 작가:윤수미
작품해설: 툭떨어지는 돈오의 깨달음,동백꽃 내마음에도 언제나 깨달음과 지혜가 가득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려보았습니다.부산 동백섬을 바라보면서...

 

5월은 이랬다.

아버지는 왕인 줄 알았더니 왕따였더라. 엄마는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하여 부모에게 남은 건 우울증이고 치매다. 자식도 가정의 제왕인 줄 알았는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며 청춘의 열정마저 다 바쳤더니 마흔이 되어서도 부모의 품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됐다. '어쩌다 결혼'은 했는데 아이 없는 인구절벽에서 사는가 싶더니 이혼하고 혼밥먹고 살더라. 이것이 5월의 '페르소나'다. 모두가 희생자고 모두가 피해자인......

 

5월은 친구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서로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신의 삶과 세계를 '선물'하는 것이다. 그 삶과 세계를 일구는 가치가 바로 '친구'다. 이 말처럼 친숙한 것도 없지만, 이 말처럼 낯선 것도 없다.

사람들은 가까이 두고도 가까운 것들에 무심하다. 이상하다. 왜 자신이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줄 생각은 하지 않는가? 좋은 친구를 얻는 최상의 지름길은 자신이 그런 친구가 되는 것이다.

아다시피 우리의 교육에는 어디에도 그걸 학습하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객체화되고 경쟁 상대가 되고, 극복의 대상이 된다. 목적은 소비에 있고 생활은 전장戰場이 된다. 그리하여 우정은 박제화되고, 친구란 '함께 소비하고 즐기는 상품' 정도로 치부되고 말았다.

제목:유희 /크기:45.5*45.5 /재료:혼합재료 / 작가:이지송<br></div>
작품설명: 두마리 말의 유희 ..즐거운 마음이 서로만나 좋은 시너지를 내듯이 말들의 몸짓에 밝은 색채를 입혀보았습니다.
▲ 제목:유희 /크기:45.5*45.5 /재료:혼합재료 / 작가:이지송
작품설명: 두마리 말의 유희 ..즐거운 마음이 서로만나 좋은 시너지를 내듯이 말들의 몸짓에 밝은 색채를 입혀보았습니다.

 

5월의 친구, '코로나'

그러다 보니 우리 시대의 인간은, 서로에게 선물할 세계가 없는, 스스로 왕따를 자초한 '신자유주의 좀비'들의 집합체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싫든 좋든 떠나야 할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인 죽음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모든 크고작은 이별의 시간과 장소,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허망하지만 삶은 움직이는 것이고, 사람이 떠난 자리를 붙들고 있다고 해서 사랑은 돌아오는 것은 아니므로 고통을 견뎌내야만 한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서먹서먹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주춤주춤 다가간다.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 인생에서 많지 않았던 그 뜨거운 사랑의 순간들을 잿빛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우리는 이별을 맞아야 하고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면서 내부가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코로나팬데믹 속에서 우정의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것.

코로나는 암과 같은 것이다. 끝없이 극복해야 하는 전쟁 상대가 아니다. 우정과 친구라는 가치가 일상에 뿌리박을 때, 사랑은 그 토양 위에서 싱싱하게 살아 숨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희망한다. '사회적 거리'란 우정의 품격. '마스크'란 친구의 염치. '내 탓이오!'가 사귐의 예의. "아프지만 함께 살아내야 하는, 그런 존재가 코로나19라오" 이런 5월의 담론으로 풍성해지길...

봄이 지나 여름이 왔는데도 지난 봄을 붙잡고 봄은 어떠해야 한다고 말한다. 봄은 다시 오지만 다시 오는 봄은 과거의 그 봄은 아니고 새로운 봄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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