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게임 멈추고 거시적 안목의 정책 세워야
6·17 부동산 대책은 문재인 정부 들어 21번째 나온 대책이다. 평균적으로 두 달도 안 되어 한 번씩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셈이다. 대책마다 규제의 강도를 높여왔지만 그 효과는 번번이 단명했고, 규제에 대한 내성만 키워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6·17 대책도 발표 된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6·17 대책은 부동산 시장의 풍선효과 차단과 갭투자 방지, 법인을 이용한 주택투기 근절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재건축 분양권을 받기 위해서는 2년 실거주 의무를 채우도록 하여 사실상 재건축 사업이 중단되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정부로서는 일종의 정책적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 속에서 넘치는 유동성과 저금리 기조의 지속으로 집값 상승은 상당 기간 불가피 할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다. 고강도 규제가 시장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기는 역부족이라는 진단들이다.
21차례나 대책을 내놓으며 규제의 강도와 대상을 계속 높이고 넓혀 나가도 집값을 잡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를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애당초 정부가 집권 초부터 강남이라는 특정 지역의 집값 잡기에 올인한 것이 적절한 것인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정 지역의 집값이 유난히도 높은 현상은 세계 많은 나라에서 흔히 있는 일, 정부는 강남 집값은 ‘그들만의 리그’의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 대신 정부는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 안정을 이루는데 초점을 맞추는 방향이 바람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에 양질의 주택들을 많이 공급하거나 신뢰할만한 청사진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불안 심리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정부는 내 집 마련 혹은 더 넓은 집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은 채 찍어 누르기 식의 규제로만 집값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집값은 잡히지 않고 있으며, 규제의 피해는 내 집 마련의 꿈이 간절한 무주택자와 아이들이 크니까 지금보다 넓은 집으로 가고 싶어 하던 평범한 중산층들이 입고 있다. 현금 부자들이야 대출을 안 해주면 자기 돈으로 집을 사버리면 그만이지만, 대출이 막힌 서민과 중산층들은 꼼짝달싹 하지 못하는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당장 실거주 의무를 강화한 6·17 대책의 영향으로 전세공급도 줄어들고 전세가는 더 오를 것이 예상된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흔히 두더지 잡기 게임에 비유되고 있다. 어느 지역의 집값이 올라 강력한 규제책이라는 망치로 때리면 다른 지역의 집값이 상승하여 다시 그 곳을 때리는 일이 무한정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두더지 게임의 과정에서 국민이 진짜로 실험용 두더지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듬어지지 못한 거칠은 정책이 그냥 발표되고 사후에야 보완하는 일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들’이 양산된다. 아무리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더라도 투기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생활 기반을 갑자기 흔드는 정책들이 즉흥적으로 던져져서는 안 된다.
워낙 많은 부동산 대책들이 쏟아진 나머지, 전문가들조차 규제의 내용들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1차례나 대책이 나오다 보니까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이전의 정책과 새로 나온 정책이 충돌하거나 모순되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러니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키워질 수밖에 없다. 지역, 구입 시기, 가격에 따라 규제의 내용이 다 다르고 세율이 다르다. 그래서 은행 대출, 세금, 의무 규정 등이 다르다. 일반 국민들이야 그 복잡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게 당연할 지경이고, 경우의 수가 너무도 복잡하고 예외 사항도 많아 은행 담당자나 세무사들조차도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당장 이번 6·17 대책의 내용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국토교통부 당당자들은 물론이고 은행, 금융위원회 등에서도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다. 지난 3년 동안 발표된 깨알 같은 부동산 대책의 내용이 난수표 보다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아마 관료들도 자신들이 그동안 내놓았던 정책들의 내용을 자신도 제대로 모르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토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국토부가 발표해온 부동산 대책들의 내용을 갖고 시험을 보면 평균 점수가 몇 점이나 나올까 궁금하다.
지금처럼 쏟아지는 정책들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진화용의 성격이지 지속가능한 내용의 것이 되지 못한다. 눈앞의 불을 끄는 데만 급급할 뿐, 최소한 몇 년 앞이라도 내다보는 시야 같은 것이 없어 보인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그 전쟁의 피해를 다음 정권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원칙도 방향도 없는 두더기 잡기 식의 정책은 주택공급의 절대 부족 상황을 예고하고 있고, 현금이 없으면 내 집 마련도 어려워진 상황은 서민층과 중산층의 박탈감을 높여갈 것이다. 다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선들 이렇게 엉켜버린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동산 정책을 전쟁 치르듯이 하니까 섬세하지 못한 거칠은 정책만 난무하고 시장의 요구와 동떨어진 정책이 이어지는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문재인 정부가 전쟁을 치르며 수많은 곳에 폭탄을 투하했지만, 정작 집값은 계속 오르고 국민들이 겪는 불편과 어려움은 심해지고 있다. 이제는 두더지 게임을 멈추고 거시적 안목의 부동산 정책을 세워야 할 일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았어야 할 때가 이미 지났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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