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전향’ 요구, 그 낡음에 대하여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이인영이 아니라 태영호가 뉴스의 인물이 된 인사청문회였다.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이 행한 '사상 검증'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태 의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질의 시간 7분을 모두 이 후보자의 사상 검증에 집중하는 열의를 보였다.

태 의원은 “전대협의 성원들이 매일 아침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남조선을 미제 식민지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충성 맹세를 했다고 한다”며, “혹시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라고 공개 선언을 한 적이 있냐"고 이 후보자에게 물었다. 자신은 탈북하고 나서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는데, 이 후보자도 그런 전향을 한 적이 있느냐는 얘기였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귀순후 첫 기자회견’ 사진까지 들고 나왔으니, 그 분위기가 아득했던 옛 시절의 뉴스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가 질의하면서 들고 있던 자료의 제목이 '태영호와 이인영 두 김일성 주체사상 신봉자의 삶의 궤적'이었다고 하니, 이미 그는 이 후보자를 주체사상 신봉자로 규정하며 전향을 요구했던 것이다. 물론 이 후보자는 “태 의원이 아직 남쪽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며 "당시에도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고 답했지만, 2020년 대한민국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느닷없이 터져나온 사상 검증의 광경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인물도 아니고, 이미4선 의원을 지낸 이 후보자에 대한 그 같은 방식의 사상 검증은 대한민국 유권자들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태 의원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은 1980년대에 멎어 있는 듯하다. 그로부터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일부 극우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빼고는 더 이상 상대에게 ‘주체사상 신봉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일부 있었던들, 진작에 사라진 역사 속의 얘기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적이 없다는 후보자를 상대로 1980년대로 돌아가 사상 전향을 요구하는 청문회장의 모습은 과거 시절의 야만적인 기억들을 소환하게 만든다. 문제는 후보자가 아니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이상 누구도 관심 없는 사상 전향의 얘기를 꺼내고 있는 태 의원에게서 드러나고 말았다. 태 의원이 한국에 온지도 어느덧 4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1980년대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태 의원이 북한에 대해서는 전문가적인 식견을 보여주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당선인 신분이었던 4월에는 CNN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 신병 이상설’을 꺼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망신을 당한 일이 있었다. 6월에는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발언과 관련해 "물리적으로 폭파하는 단계까지 가는 것은 대단히 힘들 것"이라고 말한지 사흘만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장면이 있었다.

반복되는 그의 오판은 자신이 속한 미래통합당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가 보수편향의 모습에서 벗어나 중도성을 강화하려는 행보를 하고 있고, 그러한 노선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 마당에 태 의원의 느닷없는 사상 검증 장면은 자기 당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는 자살골이 되고 있는 셈이다.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보수층을 의식해 자신들로서는 상징적인 지역인 강남구에 그를 공천했지만, 이제 그는 계륵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태 의원의 사고가 그렇게 과거에 갇혀있다면, 그는 이런 장면들을 끊임없이 낳고 논란을 자초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 계륵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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