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진 바른역사 정의연대 대표
▲ 정연진 바른역사 정의연대 대표

역사문제와 영토를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이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깊어진 한 해입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과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 중국은 일본과 전쟁도 불사할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인터넷에는 ‘13억 중국인이 하루만 일본제품을 사지 않으면 1천개의 일본회사가 망하고, 반년을 사지 않으면 일본인 절반이 일자리를 잃고 1년간 일본 제품을 사지 않으면 일본 경제 무너진다’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입니다.

2005년도 무척 시끄러운 한 해였습니다. 때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와 독도문제로 한창 동북아시아가 들끓고 있었던 5월. ‘일본의 과거사청산을 위한 국제연대협의회’의 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국제연대협의회는 일본의 주변국들과의 역사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한국, 북한,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의 일본침략 피해국들과 미국, 네델란드 등 10개국의 시민단체가 결성한 국제민간협력체였습니다.

일본 방문 일정 중에 당시 고이즈미 수상을 비롯한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있던 야스쿠니 신사에 평화시위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전쟁영웅 또는 호국영웅의 영령이 모셔져 있다는 야스쿠니 신사는 주변지역이 잘 꾸며진 공원 같이 단장되어 시민들이 삼삼오오 거니는 장소였습니다. 때는 일요일 정오쯤. 마침 2005년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지 100주년이 되는 시점이라, 야스쿠니 신사의 입구에는 러일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포스터가 크게 그려져 있었고, 일장기가 그려진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어디서 단체로 견학을 왔나보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버스 주변에 어느 일본 중년여성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지 뭡니까. 우리 일행은 한국과 해외에서 온 40여명 되는 일행이었는데, 아무래도 차림새가 일본의 현지사람들과는 다르니 눈에 띄었을 법 합니다. 험상궂은 인상의 아주머니는 우리일행을 계속 노려보며 휴대전화로 어디론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야스큐니 신사에서 큰 소리로 소란스럽게 시위하려던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 평화를’, ‘교과서 왜곡은 이제 그만’ 등의 메시지가 적힌 A4 용지보다 작은 카드를 꺼내어 조용히 침묵시위를 하려던 계획이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의 입구에 다달아, 우리 일행이 현수막을 꺼내는 순간, 야스쿠니 신사 저 안쪽으로부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야쿠자 같은 검은 양복을 좍 빼입고 머리를 뒤로 넘긴 건장한 청년들이 여러 명 뛰어나와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40대, 50대 장년층 남성들, 여성들이 같이 뛰어나와 다자고짜 우리 일행에 달려들었습니다. 시위 현수막을 꺼내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모두 찢고 팽개쳐버리더니 험한 얼굴로 악을 쓰며 우리 일행을 해체시키려고 난동을 피웠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시각 야스쿠니 신사 안에서는 일본의 우익계 시민들이 모여서 고이즈미 수상이 더욱 강경하게 일본 우익의 주장을 실천해야 한다는 청원서 운동을 벌이고 있던 참이였습니다. 택일을 해도 정말 크게 잘못한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험상궂게 우리를 노려보던 아주머니는 어느 ‘불온한’ 일행이 야스쿠니로 걸어들어간다고 자기 그룹에게 알려준 모양입니다.

우리 시위대와 일본인들과 한 쪽은 해체하려고 다른 한쪽은 해체당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쓰는 몸싸움이 벌여졌습니다. 야스쿠니신사에서 나온 일본인들이 어찌나 악을 쓰면서 우리들의 옷과 몸을 우악스럽게 쥐어잡고 비틀고 팽개치고 난동을 부리는지, 순식간에 당한 폭력 앞에서 우리 일행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 장소가 일반인들이 산책을 하거나 가족들과 나들이 나온 공공 장소이기 때문인지 야쿠자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 일행에게 대놓고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옷과 팔 다리를 움켜잡고 소리를 지르며 형언하기 힘든 험악한 얼굴로 발악하는 일본인들에게 우리 일행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끌려나가지 않으려 저항했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어느새 싸이런이 울리기 시작하고 경찰과 공안들이 수십명씩 현장에 오고 한 동안의 소란이 계속되었습니다. 경찰은 우리를 바로 내좇지는 않았지만 성난 일본인 패거리들과 우리 일행을 분리시키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서 조금씩 야스쿠니신사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우리 시위자들을 몰아갔습니다.

도대체 일본인들이 뭐라고 하면서 그렇게 악을 쓰는가, 통역자에게 물었더니, 그들은 “이 더러운 조센징! 썩 물러가라, 신성한 야스쿠니에서 당장 꺼져라”와 같은 경멸에 찬 말투와 욕지거리라고 했습니다. 일제에 해방된 60년이 지나서도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직접 듣게 되다니….

우리 일행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침묵시위를 계속했으나 경찰에 제지되어 조금씩 밀려서 결국 야스쿠니 공원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갔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에 평화를’이라는 플랭카드를 가지고 길거리에 일부는 앉고 일부는 서서 한 시간 남짓 평화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2005년 고이즈미 수상 때의 일본은 부시대통령과의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유엔의 최고 의결기관인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했고, 바른역사정의연대와 중국계 글로벌 얼라이언스 (Global Alliance)가 합동작전으로 벌인 인터넷 서명운동, 즉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는 상임이사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유엔에 청원하는 인터넷 서명운동은 지구촌 네티즌들로부터 이례없는 큰 반응을 얻어 한 달 반 만에 4천2백만명이 서명하는 성과를 거둔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언론들이 인터넷서명운동 과정과 결과를 취재하는 데 열심이었고, 당시 도쿄로 회의를 위해 떠나면서 저는 일본의 우익들에게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저와 함께 인터넷서명운동을 전개했던 글로벌 얼라이언스의 리더 이그나시오 딩은 일본의 보수 언론에 마치 괴수와 같은 인물로 왜곡보도됐습니다. ‘나 또한 일본 우익들의 표적이 되었겠지’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미국의 동기들에게 “혹시 내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내가 너희들을 사랑했다는 건 잊지말아다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의 난동을 겪은 것 이외에는 개인적인 테러는 당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 난동을 부리던 일본인들의 얼굴에 나타난 심한 적개심과 분노, 흉포한 몸짓은 기억에서 지우기가 힘듭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당시 한국과 일본침략 피해국들의 피해자 단체들은 야스쿠니에 강제 합사된 조상들의 위패를 야스쿠니에서 빼내어 줄 것을 요구하는 야스쿠니 합사철폐를 주장하고 있었으나, 야스쿠니에 가서 그러한 주장을 할 때마다 일본인들은 들은체 만체하는 식으로 우리 피해자들의 주장을 무시해왔었습니다.

물론 야스쿠니신사 안에 있었던 우익은 일본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열성적인 우익세력을 대표하는 것이겠지만, 그 소동을 겪고 나서 느낀 바가 많습니다. ‘이들에게 야스쿠니 신사라는 것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념이구나. 아무리 이웃나라들이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두려워해 야스쿠니 방문을 성토해더라도, 종교적 차원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겠구나’라고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연진 바른역사 정의연대 대표/ 폴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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