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 대한민국 정책컨벤션의 주요 행사로 국회의정관에서 개최된 '정책 만민공동회' 참가자들이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하는가, 다음 정권에 기대하는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토의 중이다.
▲ 2012 대한민국 정책컨벤션의 주요 행사로 국회의정관에서 개최된 '정책 만민공동회' 참가자들이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하는가, 다음 정권에 기대하는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토의 중이다.

19세기말,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권쟁탈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웠던 시기, 일반 백성들이 스스로 나라 구할 길을 찾고자 개최된 대중 집회가 있었습니다. ‘만민공동회’라 불리던 이 집회는 1898년 3월과 10월 한양에서 1만 여명이 운집하여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나라의 살 길에 대해 자발적으로 정치적 소견을 발표하고 대표자를 뽑기도 했습니다. 비록 조정의 탄압으로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한양의 인구가 17만명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의 대중집회였습니다.

100여년 전의 만민공동회를 모델로 한 집회가 21세기 서울에서도 몇 차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6, 7일 양일간 국회에서 열렸던 ‘2012 대한민국정책컨벤션’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정책 축제 개념인 행사로 일반 시민, 민간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현재 한국의 문제점을 타계해나갈 다양한 정책 방향과 실천 방안을 토론하는 장이었습니다. 대의정치에 기대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해 보는 장이라고나 할까요.

이 행사의 첫날 ‘정책 만민공동회’라는 시간에 참석한 경험은 신선했습니다. 각 테이블별로 7~8명씩 둘러앉은 참가자들 앞에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대주제가 던져집니다. 각자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2분씩 발의하고, 각 팀별로 이를 토론하여 요약한 의견을 중앙 스크린에 올립니다. 그 다음 작은 리모콘 기기가 참가자들에게 쥐어지고 중앙 스크린에 나타난 공동 의제의 선호도에 대해 기기를 활용해 실시간투표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차기정권에 필요한 리더십’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냅니다.

이날 참가자들 중에 ‘통일’에 대한 화두를 꺼내는 사람은 제가 유일했고 또 미국에서 온 덕분에 전체 발언 기회를 얻었습니다. “현재 국내의 여러 당면 현안에 가려서 통일문제가 주목을 못 받고 있지만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통일 이슈이다. 20대 젊은이들의 직업 창출과 조직을 떠나야 하는 50대에게 휴전선 너머 무한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라는 취지의 통일에 대한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자는 발언과 특히 탈이념과 상생을 추구하는 새로운 풀뿌리 통일운동, 해외동포와 국내인이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통일운동이라는 제안에 통일 문제가 참석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 뒤 만민공동회가 끝나갈 때는 차기 정권에 기대하는 리더십에 통일문제가 3번째 우선 순위로 올라갔습니다. 통일에 대해 미처 생각지 못하던 사람들이 제 발언에 의해 비로소 눈을 뜰 때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달 10.4선언 5주년 기념 해외동포 통일토론회에 미주언론인대표로 처음 북을 다녀온 L.A.의 기자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막연히 ‘북의 인민들은 우리와는 다른 점이 더 많은 것이다’고 생각해온 것이 얼마나 큰 편견이었는지를 깨닫고 그동안 언론에서 남, 북을 화합시키는 역할이 아니라 이념의 잣대와 색안경을 끼고 서로 분열하고 반목하게 했음을 절감하고 앞으로 언론인부터 변화해야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들려주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변화를 갈망하면서 만민공동회에 참석한 분들조차 통일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까닭은 국내의 통일 논의는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서 극명하게 갈려왔기 때문에 은연 중 피하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분단조국이 67년을 넘어가도록, 이념의 잣대로 서로를 구분하고 내 생각과 다르면 상대방의 의견이 무조건 옳지 않은 것으로 배격하는 배타적인 토론문화가 끝없는 분열을 낳고 있습니다. 

21세기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 분단을 극복하는 최우선 과제는 대한민국 내부의 이념의 장벽으로 막힌 불통의 문화를 소통과 상생의 문화로 바꾸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우리 스스로 소통도 하지 못하면서 밖으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되겠다고 지구촌을 설득해 나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잠시 좌익, 우익이라는 단어가 생긴 근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프랑스대혁명 때 이야기 입니다. 당시 국가의 재정은 바닥나 있었는데도 왕실은 흥청망청 돈을 쓰고 있었고, 세금은 오로지 평민인 농민들만 부담해야 했습니다. 새로 등장한 신흥 시민계급 브르주아의 힘을 받아 농민들이 봉기하고 평민들이 세상을 뒤엎고 맙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였고, 프랑스인들은 왕을 그대로 둘 것이냐, 아니면 왕을 없애고 공화정으로 할 것이냐, 이 문제를 가지고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급진파와 왕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보수파가 대립하게 됩니다. 이때 급진파는 주로 베르사이유궁전의 왼쪽 날개(wing, 건축 용어)에서 모였고 보수파는 오른쪽 날개에 모였다고 해서 급진적인 사람들을 좌익, 보수적인 사람들을 우익이라고 칭하는 단어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20세기 극단의 시대에 사상과 이념이 서로 죽고 죽이는 도구로까지 변질되었던 좌익 우익의 구분. 그것은 서양사의 한 발전 과정에서 태동된 개념이었습니다. 21세기는 더이상 서양이 세계사의 중심 축이 될 수 없습니다.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글로벌 시대를 꿈꾸는 한국인들이라면 서양의 잣대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이제 세계사를 구분지을 만한 중요한 개념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수꼴, 좌빨, 이러한 단어를 쓰시고 계신지요? 서양사에서 만들어진 좌익, 우익이라는 말, 이제 우리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립시다. 남과 북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까지 치르고도 전쟁상태를 지속시키는 도구인 이념에 옥죄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21세기에 우리가 통일로 가는 희망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2012 정책컨벤션 ‘만민공동회’ 참여를 뜻깊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시민들 스스로 이념의 잣대를 벗어던지고 통일에 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서 내년도에는 통일을 논의하는 만민공동회가 개최될 것을 기대해 봅니다.
 

정연진 바른역사 정의연대 대표 / 폴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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