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 안 되면 서훈도 못 받나, 친일파들 때문에 올라간 줄 알면서도...”

의열단과 민족혁명당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약산 김원봉 선생
▲ 의열단과 민족혁명당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약산 김원봉 선생
[폴리뉴스 정찬 기자]영화 ‘암살’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약산 김원봉 선생의 막내 여동생 김학봉 씨는 정부가 역사교과서에서 김원봉 선생 내용을 뺄 것으로 전해진 데 대해 “못됐다, 어디서 그렇게 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남북통일이 안 되면 서훈도 못 받는가”라고 원통해 했다.

김원봉 선생의 형제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학봉 씨는 19일 오전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에서 김원봉 선생이 주도적 역할을 했던 민족혁명당 활동을 제외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하고 “북한에 갔다고,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자기들이 (오빠가) 친일파들 때문에 올라간 줄 알면서 그렇게 말하면 죄받는다. 죄받습니다”고 억울함 감정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오빠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민족주의자였다. 해방되고 (고향에) 오실 때 그렇게 환영을 받고 대청마루에 올라가서 인사를 하고 이렇게 했는데. 그런 훌륭한 오빠를 갖다가 그렇게 몰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학봉 씨는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 “해방되기 전에는 훌륭한 오빠가 있는지도 몰랐다. 해방 되고 나서 내가 알게 됐다”며 “해방 후 (오빠가) 밀양까지 오는데 학생들이 전부 다 나와서 태극기 들고 ‘만세’하고 그렇게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고향에서 환영 받을 당시는 김원봉 선생이 임시정부의 군무부장(국방부 장관)이었다.

그러나 김원봉 선생이 친일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한 뒤 월북한 후 가족사에 대해 “제가 경남여고 2학년 1학기에 전학을 갔는데, 그 이듬해 형사가 데리러 와서 물고문을, 팔도 묶어놓고 다리도 묶어놓고 얼굴에 수건을 덮고 계속 주전자 물을 부어서… 내가 손도 못 쓰고 이렇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고 나서 일어나라고 하면서 뺨을 때리면서 정신 차리라고 하면서…그래가지고 내가 나중에 학교로 돌아왔다”며 “그리고 나서 밀양에 있었던 오빠, 누이는 다 잡혀가서 암살당했다. 오빠, 누이가 다 암살당했다”고 회고했다. 그런 고통을 겪게 된 것이 김원봉 선생의 월북 때문이라 이를 원망하진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학봉 씨는 “제일 훌륭한 오빠인데, 오빠를 원망하는 것도 할 줄 모르고 그랬다”고 말했다.

김원봉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김학봉 씨는 “(정부에서) 편지가 날아오기로, 북한에서 뭔가를 했기 때문에 그래서 (독립유공자서훈을) 못 받게 됐다, 이렇게 편지가 날라왔다”고 설명했다.

최근 김원봉 선생의 활동이 묘사된 영화 ‘암살’을 관람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7월에 봤다”면서 해방 직후 김원봉 선생이 고향에 왔을 때가 기억난다며 “너무너무 내가 울고 안 그랬습니까? 말만 하면 내가 눈물이 난다. 몸이 좀 안 좋으니까 더구나 더, 서훈받는 것도 보지 못하고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원봉 선생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지에 대해 질문에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서 동상도 세우고,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고 그렇게 해야 된다. 그래야 한이 없다. 여한이 없다. 그걸 내가 고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