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지나치게 방어적, 安 ‘포용 이미지’ 유지 쉽지 않아, 李 ‘文의 보수화’ 공격

[폴리뉴스 정찬 기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이 비로소 막이 오른 느낌이다. 점잖고 맥 빠지게 갈 듯 하던 경선이 22일 선거인단 현장투표 돌입 2~3일 남겨둔 시점부터 비로소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이날 전국 250개 동시투표소에서 현장투표가 진행되면 주말인 25일에 경선의 분수령인 호남에서 자동응답(ARS)투표가 시작되고 27일에는 호남 순회투표가 마무리되면 이후 충청, 영남, 수도권 등에서 투표가 줄줄이 진행된다. 무엇보다 호남에서의 승부가 4개 권역 대선후보 경쟁의 시작이 아닌 귀결에 가깝기에 후보자 간의 경쟁은 날이 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선거’도 아니다. 특히 민주당 경선이 본선과 진배없는 상황이라면 더하다.

문재인 후보와 안희정, 이재명 후보가 펼치는 3각 경쟁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안희정 후보의 ‘대연정’을 두고 설전을 벌이는데 그쳐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이었다. 치열한 검증과 상대후보 정책과 가치에 강도 높은 공격보다는 서로 품격을 지키려는 점잖 빼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 19일 방송토론 중 문재인 후보가 특전사 근무시절 받은 ‘전두환 표창’ 발언을 계기로 경쟁은 불이 붙었고 여기에 문 캠프 부산 선거대책본부장의 ‘부산 대통령’ 발언, 문재인 전 대표 아들 2006년 한국고용정보원 취업 의혹 등도 같이 제기되면서 당내 경선의 긴장감이 살아나는 분위기다.

후보자 간 정치적 지향의 갈등 지점을 명확히 드러내야만 제대로 된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후보자 본인과 후보자를 받히고 있는 지지층이 끓어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도전하는 안희정, 이재명 후보의 정치력을 국민들이 볼 수 있고 대세론에 안주하는 문재인 후보의 수비능력과 위기관리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

품격과 배려가 있는 정치경쟁은 도덕적 기준에 맞춘 식자층의 당위적인 요구사항일 뿐이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김대중, 김영삼 두 야당 지도자의 경쟁이나 2002년 민주당 당내 경선 노무현-이인제 간의 경쟁,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안철수 간의 경쟁에서 ‘품격’과 ‘배려’를 찾기란 쉽지 않다. ‘경쟁’이 다른 도덕적 가치 위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보수진영이 사실상 붕괴됐기에 민주당 경선이 본선과 진배없다. 과거 같으면 보수진영의 강력한 후보와 치를 본선을 걱정해 당내 경선을 최대한 아름답게(?) 혼탁하지 않도록 애를 써야하지만 지금은 그렇지만도 않다. 지금 벌이는 문재인, 안철수, 이재명 3명의 후보가 펼치는 날선 싸움은 오히려 늦은 감도 있다.

문 후보가 대세론을 형성하며 다자구도에서 1위를 달리고는 있으나 안 후보 역시 2위를 달리고 있고 이 후보도 2~3위권이다. 본선에서 맞붙을 보수진영의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아 안희정,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면 본선에서의 승산도 충분하다는 여론조사 지표도 있다. 이에 안 후보와 이 후보는 당내경선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만 한다.

그러면서 각 후보 뿐 아니라 지지세력 또한 같이 충돌하면서 서로의 가치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민주당 선거인단 참여자 수가 214만 여명이다. 이미 ‘전쟁’은 시작했고 민주당 경선에 관심 있는 국민들의 감정도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 선거인단 참여열기로 보면 국민들과 각 후보 지지층은 이전부터 끓어오른 상태라 해도 무방하다.

문재인 ‘네거티브 반대’ 주장, 수성에 골몰해 지나치게 방어적

지금 문재인-안희정-이재명 3명의 후보가 벌이는 날선 싸움은 이러한 배경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대세론을 바탕으로 해 수성(守成)하려는 문재인 후보에 대한 격렬한 공세가 주된 흐름일 수밖에 없다. 1위 후보가 공격받는 것은 당연하고 누가 제대로 공격하면서 국민 마음을 훔칠 것인지의 여부와 함께 도전자의 공격에 1위 후보가 어떻게 대응하는 지도 보고 싶어 한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대선 때보다는 강한 체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전두환 표창’ 논란 등에 대한 안 후보나 이 후보 쪽의 문제제기를 ‘네거티브’로 규정한 것은 ‘정치 경쟁’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네거티브’라고 주장해 상대방의 공세를 차단하려는 의도만 도드라지며 지나치게 방어적이란 느낌만 준다. 진짜 네거티브라면 이를 되받아칠 수도 있다.

이러한 문 후보의 태도는 지난 2012년 민주당 경선을 두고 “한마디로 지나치게 소모적이었다”고 한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손학규-김두관 후보와의 경쟁과정을 두고 “우리끼리 던진 공격의 언어가 더 처참하고 아팠다. 그런 언어는 본선에서 새누리당 측의 공격소재로 고스란히 재활용 됐다”며 “이래저래 잃은 게 많고 상처가 큰 경선이었다(1219 끝이 시작이다)..”고 했다.

당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란 큰 산을 넘어야 할 본선을 고려할 때 문 후보의 말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진영 내의 정치경쟁’이 비수처럼 더 날카롭다는 기본적인 정치경쟁의 시장논리를 생각하면 다소 답답한 면모다. 문 후보가 5년 동안 많이 변했다지만 이 지점만은 큰 변화가 없는 듯하다.

또 문 후보는 자신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야권세력 중 가장 큰 세력으로 평가되는 대중정치세력인 ‘친노(무현) 세력’을 업고 있다는 최대 이점에 대한 고민도 약해 보인다. 그것이 2012년 대선경선에서 ‘친노 패권주의’란 용어가 나왔고 이후 야권재편과정에서 줄곧 시빗거리가 됐으며 지금 안희정, 이재명 후보 쪽에서 나오는 ‘문재인 지지층’에 불만이다.

대중정치세력을 얻은 문 전 대표로서는 자신의 지지층을 향하는 안 후보나 이 후보의 공격이 섭섭할 수도 있고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선은 후보 간의 경쟁이 아닌 지지세력 간의 ‘전쟁’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안희정 친문 지지층 공격, 장점인 ‘견결함’과 ‘강인한 인내와 포용’ 이미지와 안 맞아

안희정 후보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후보가 자신을 향해 ‘네거티브’ 말라고 하자 “자신들이 비난당하는 것은 모두가 다 마타도어이며 부당한 네거티브라고 상대를 역공한다”며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 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성공해왔다”고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문 후보에 대한 공격도 있지만 밑바닥에는 민주당의 주류인 친문 지지층에 대한 불만이 깊게 베여 있다. 그러면서 “문 후보는 끊임없이 나의 발언을 왜곡하거나 왜곡된 비난에 편승해서 결국 교묘히 공격했다. 심지어 나의 침묵까지 공격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자신의 대연정 주장에 대한 문 후보 지지층의 비난과 공격을 두고 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그동안 안 후보의 장점으로 비쳐진 ‘견결함’과 ‘강인한 인내와 포용’ 이미지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대연정 주장이 옳다면 문 후보의 ‘적폐세력 청산’ 주장에 맞서 끝까지 밀어붙이는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지 문 후보와 함께 그 지지층까지 싸잡아 공격한 것은 선을 넘은 것이다.

정치인이 같은 진영 내부의 경쟁자가 아닌 당의 지지기반이 되는 국민을 공격하는 것은 금기다. 정치경쟁은 지지층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정치인과 하는 것이다. 친문 지지층의 적극적인 행동방식은 비판받을 부분이 있지만 정치인은 이를 공개적으로 공격할 경우 ‘불화’만 쌓는다.

이 같은 안 후보의 언급은 새롭게 유입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지만 당내 경선 후 각 후보 지지층이 힘을 제대로 모으지 못할 것이라고 후유증까지 언급한 것은 문 후보 지지층에게는 짜증으로 와 닿을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의(善意)’를 언급하고 대연정까지 주장한 안 후보의 이러한 태도는 성숙하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이재명의 ‘문재인 중도보수화’ 공격, 문재인을 돕는 현상

경선에 돌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재명 후보의 파이팅이 주목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다지 큰 파괴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촉박한 대선일정과 경선일정이 이 시장에게는 큰 족쇄가 됐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반복된 방송토론 또한 쟁점현안에 대한 후보들 간의 차이점만 보여줄 뿐 어느 후보의 주장이 더 나은지 또는 더 좋은 지에 대한 변별력을 갖추는 데는 한계도 있다. 기존의 관성이 지배하는 경쟁구조에 파열구를 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후보의 지지층은 민주당 내에서 진보색이 강한 층이라 문 후보와 일정 겹치는 부분이 있어 문 후보의 중도화, 보수화를 집중 추궁하는 것이 일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중도와 보수지형으로 향해야 하는 문 후보는 돕는 역학구조다. 특히 안희정 후보와의 날선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는 더하다.

그렇다고 민주당 핵심지지층을 선점한 문 후보를 공격해 이들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만들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부족하다. 안희정 후보는 비민주당 지지층을 동원하는 능력을 발휘해 당내외의 논란을 주도하면서 이 후보는 최근 정체현상까지 빚고 있다. 재벌개혁을 제외하면 문 후보와 상당부분 겹친다는 이미지가 강해 이 후보로서는 차별화가 최우선 과제이나 지금까지 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후보가 직접 나서진 않았지만 이 후보 캠프 쪽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층을 공격한 것은 이러한 정체현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캠프 대변인인 제윤경 의원과 정성호, 유승희 의원은 22일 국회정론관 기자회견에서 문 후보의 네거티브 반대 주장을 공격하면서 문 후보 지지층들의 행동들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질린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공감을 표하며 문 후보에게 “네거티브 하지 말라는 말을 타 후보를 향해서 했어야 하느냐. 먼저 자신의 캠프와 지지자들에게 더 강하게 요구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문 후보의 ‘네거티브 반대’ 주장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문 후보 지지층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것은 조급함의 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고 비판한다고 자기 당의 지지층에게 매를 드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에 가까운 행위다. 이들은 영원히 문 후보 지지층으로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시점에서 문 후보를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안 후보나 이 후보는 경선과정에서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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