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남북·북미회담, 동북아 국제정세 패러다임 전환 초래"

[폴리뉴스 박예원 기자] 지난 4월 27일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데 이어 6월 12일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흐름으로 오는 7월 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폴리뉴스>는 조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과 만나 6.12 북미정상회담이 가지는 의미와 평가에 대해 들어봤다.

조 원장은 21일 <폴리뉴스> 김능구 발행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북미정상회담으로 북핵 협상 프로세스가 10년 만에 재가동됐고, 6.25전쟁 발발 후 68년 간 이어온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중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며 이를 '경천동지할만한 세계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번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으로 북한의 전략적 위상 변화와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원장은 "북한 핵문제 해결 전망 위에 동북아 국제정세의 패러다임 전환이 초래됐다"면서 "'1953년 체제'는 이제 막을 내렸다. 또 냉전체제 해체라는 점에서 보면 동북아 지역에서 1990년 이래 '지체된 냉전체제'가 종언을 고했다"고 설명했다.

센토사 선언에 대해서는 "낮은 수준의 합의로 비핵화 기대에 대한 실망과 우려를 낳았다는 비판적 평가가 많았지만, 어느 면에서 오랜 적대 관계의 정상 간 첫 회동에서 이뤄진 ‘톱다운’ 방식의 합의의 특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합의는 후속 합의에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북미협상에서 일단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어쨌든 과거에는 준비해본 적이 없는 전략적 변화나 근본적으로 다른 길 등의 표현을 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근본적으로 다른 길’은 분명 전략적 노선 전환을 의미한다. 즉 북한은 미국 측에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대중 전략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 된다"고 말했다.

조민 박사(정치학박사)는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으로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이며, 선문대학교 초빙교수로 강단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이하는 조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의 인터뷰 전문.

 

▲6.12 북미정상회담과 센토사 선언의 의미를 짚어보고,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말해달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 자체가 경천동지할만한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양국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손을 맞잡고 “수십 년 간의 긴장과 적대행위를 극복하자”고 합의한 순간 동아시아의 냉전체제는 마침내 허물졌다. ‘세기의 담판’을 계기로 향후 북․미 적대관계가 청산되면 한반도 전쟁의 먹구름이 완전히 가시면서 공고한 평화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의 최대 걸림돌은 북한 핵문제였는데, 북핵 문제는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이었다. 정상회담으로 북핵 협상 프로세스가 10년 만에 재가동 되었고, 6․25전쟁 발발 후 68년 간 이어온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중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사실 2018년 벽두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국제정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전쟁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한반도에서 치러질 평창 겨울 올림픽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불안을 샀는데, 북한의 참가로 평화 올림픽의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평화 올림픽 분위기 속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 아주 신중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는데, 그 결실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첫 인사말에서 “적대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러 왔다”고 했다. 결의에 찬 말이었다. 이어 “전쟁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새 시대를 열어나갈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에 ‘평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맞이했다. 마침내 ‘4․27 판문점 선언’이 나왔고, 남북정상회담으로 북․미 정상회담의 가교가 마련되었다.  

지금 ‘4․27’과 ‘6․12’로 북한(DPRK)의 전략적 위상 변화와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 전망 위에서 동북아 국제정세의 패러다임 전환이 초래되었다는 말이다. ’1953년 체제‘는 이제 막을 내렸다. 또 냉전체제 해체라는 점에서 보면, 동북아 지역에서 1990년 이래 ’지체된 냉전체제‘가 종언을 고했다. 1990년 독일 통일과 사회주의권의 외해로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체제가 붕괴되었는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서 냉전체제는 오히려 ’대륙세력 대 해양세력‘ 간 진영대결 구도로 변형되어 지금까지 지속되어왔다. 1990년 즈음 해체되었어야 했던 동북아 냉전체제 이를테면, ’지체된 냉전체제‘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방금 한반도 평화로 가는 열차가 출발했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북미가 만나기까지는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회담 파기까지 갔다가 겨우 봉합이 되었고, 그 과정에 5.26 남북 ‘깜짝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북미정상회담 성사에 남북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고 봐야 하는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아주 크다. 북한 핵문제의 최대 피해자인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아닌가. 여기서 지난해 7월 6일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새 정부는 한반도 평화구상으로 △6․14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이행 △북한체제 보장하는 비핵화 추구 △남북 평화체제 △‘한반도 신경제지도’ 본격화 △비정치적 분야 교류협력 확대 등 5대 정책과제를 내세웠다. 더욱이 불과 이틀 전에 북한이 대륙산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했음에도 “(오히려) 대화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고 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 후 북한이 이에 호의적으로 나왔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를 통해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와 함께 대남 화해 메시지를 보냈다. ‘베를린 선언’ 요지가 ‘4․27 판문점 선언’ 합의문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 후 일련의 사태 추이를 보면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가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추동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북․미 정상회담은 양측 모두의 절박한 상황의 산물이었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북한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역량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 수준과 역량 증대를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심각한 국면에 빠졌다. 그와 함께 김정은도 트럼프의 예측불가의 언행과 선제공격 위협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을 수 있다. 특히, 중국까지 동참한 대북 경제제재 국면을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어느 한 쪽이 먼저 손을 내밀 수 없는 교착상태 즉, 딜레마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중재자로 나섰다. 김 위원장의 미국과의 ‘대화용의’ 표명을 백악관에 전달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수용 의사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대북 군사적 위협 해소와 함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는 북한의 오래 동안 일관된 입장이다. 북한의 ‘조건부’ 비핵화 의사와 함께 정상 수준의 북․미 대화 제의를 트럼프 대통령이 선뜻 받아들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야말로 무모한 ‘치킨 게임’ 구도가 협상 모드로 바뀌는 국면 전환이 극적으로 이뤄졌다. 궁즉통(窮則通)이라고 했던가.

▲북미 정상회담 배경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관련한 미국 뉴욕타임스 6월 17일 기사가 매우 흥미롭게 주목을 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의 배경을 밝힌 기사(North Korea's Overture to Jared Kushner)를 헤드라인으로 내보냈는데, 기사 요지는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미국 금융인 게이브리얼 슐즈가 지난해 여름 트럼프 대통령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에게 ‘북한 정부가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이게 되었다”고 밝히면서, ‘쿠슈너는 북한의 요청을 폼페이오 CIA 국장에게 넘겼다’고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폼페이오(당시 CIA 국장)-김영철 라인이 가동되어 지난해 여름 첫 대화를 시작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제3국에서 수차례 만나 정상회담 가능성을 탐색했다고 얘기된다. 이즈음 CIA 내 북한전담 조직인 코리아미션센터(KMC)의 출범과 역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해 5월 KMC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북한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쪽과 새로운 라인을 만들고 싶다”고 했고, KMC 답신도 '오케이‘ 였고 곧 방금 지적한 양측 ’스파이‘ 최고 책임자 간 접촉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CIA 활동에 정통한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6월 7일자 보도도 관심을 끈다. 아사히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거래’에 적극 나선 데에는 지난해 가을 김정은 위원장의 사고방식, 성격 등에 관한 KMC 인물 분석인 ‘김정은 프로파일링 보고서’가 큰 작용을 했다고 한다. “KMC는 ‘김정은 위원장이 서구 문화에 강한 동경과 존경을 품고 있고, 북한의 역대 지도자보다 교섭하기 쉬운 상대이므로 미국이 포섭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를 전달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서서히 줄였다.  한 때 ‘북한 완전 파괴’를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12일에는 트위터에 “그(김 위원장)와 언젠가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CIA의 김정은 성향 분석 보고서가 정상회담의 물꼬를 텄다는 얘기도 가능하다. 사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중재 이전부터 북한과 긴밀한 접촉을 하면서 북한과 직거래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사건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우연과 필연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아니겠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압박과 경제제재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고 여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6․12’이 있기까지는 어느 한 요인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무엇보다 북․미 양측 상호 간 대화와 협상의 절박성이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 위원장 프로파일링 분석 보고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 전환과 협상 의지, 대북사업 경험이 풍부한 싱가포르 사업가의 주선, 대통령 최측근 쿠슈너의 존재, 여기에다 한국 정부의 역할 등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싱가포르로 가는 길을 크게 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관련 설득 방식이 아주 특이하다. 그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미 정부가 준비한 4분짜리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북한의 아름다운 해변 풍경과 고급스런 호텔이 줄지어 선 모습이었다. 비핵화에 따른 북한의 장밋빛 미래에 열변을 토하는 트럼프에게 김정은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물론 이 장밋빛 동영상은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비슷한 사업가의 아이디어이겠지만 설득 방식치고는 참으로 독특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 국가의 존망이 달린 외교전략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부동산 투자 형태인 비즈니스 모델을 협상과 상대방 설득 방식으로 활용했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고 과연 김 위원장이 감동했을까.

▲센토사 북미 공동성명 내용에 CVID가 빠졌다. 이에 대한 논란이 많다. 김정은 위원장의 승리라는 분석도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에서 비판 여론에 봉착했다. 

CVID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CVID는 원칙이다. 원칙은 원칙일 뿐이다. 이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북핵 문제의 본질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보자. 합의 내용 요지는,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지속․안정적인 평화체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전쟁포로 유해 송환․수습 등 4개 항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의 본질은 북한 비핵화 회담이다. 비핵화 회담에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했지만 비핵화 해법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동안 미국이 줄곧 강조한 ‘CVID’가 한층 구체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비핵화 로드맵이나 시한 문제도 전혀 합의되지 않았다. 공동성명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국내외 평가는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다. ‘과거 수준에 못 미친 합의' 또는 ‘낮은 수준의’ 합의로 비핵화 기대를 실망과 우려를 낳았다는 비판적 평가가 많았다. 

당장 미국 주류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 진영에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워싱턴포스트는 “의문의 여지없이 싱가포르 회담은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승리였다”고 밝혔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연습‘과 ’도발적‘이라는 북한의 비난 논리를 그대로 되뇌이면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희망까지 언급하여 북한에게 ‘선물’을 준 반면 북한의 약속은 정말 '빈약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연합군사훈련 중단이나 주한미군 철수 언급이 오히려 한반도 안보 불안을 한층 부추겼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향후 미국이 북한에 더 많은 양보를 해야 할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트럼프는 상호 간의 동등한 조치없이 ‘큰 양보’를 했다는 데에 모두 비판하고 나섰다. 이와 달리 펜스 부통령의 경우 당국자 입장에서, 북한 최고지도자가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한 ‘대담한 첫 단계’라며 지지를 당부하기도 했다. 어느 면에서 비핵화 프로세스의 포괄적 추상적 수준의 합의는 오랜 적대 관계의 정상 간 첫 회동에서 이뤄진 ‘톱다운’ 방식의 합의의 특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합의는 후속 합의에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북․미 협상에서 일단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의 합의 사항의 순서로 보면, 북한이 줄곧 주장해운 ‘선 체제보장(북․미 관계정상화 및 평화협정 체결), 후 비핵화’ 구도가 그대로 관철된 모양새다. 그런데 마침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 북한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행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11일자에서 회담 의제를 다음과 같이 적시한 점이 주목된다. 즉,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되는 조미수뇌회담에서는 달라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들을 비롯하여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의견이 교환될 것이다”고 보도했다. 회담이 열리기도 전의 <노동신문> 기사 내용이 12일의 합의문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다만 ‘공동의 관심사’는 ‘전사자 유해 발굴․송환’에 대한 합의로 나타났을 뿐이다.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의 통제아래 놓인 <노동신문>이 미리 공동성명 합의문 4개 항의 순서 그대로 보도했다면, 이 문제는 북․미 간 큰 틀에서 이미 합의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합의문을 보면 미국이 크게 양보한 것으로 보이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궁금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북한 김정은에게 그야말로 ‘통 큰’ 양보를 했다. 왜 이런 합의가 가능했을까. 북한의 억지와 집요한 주장을 미국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인가. 사실 북한은 미국 협상 팀이 협상 시한 마지막까지 CVID를 관철시키려고 했으나, 북한은 이를 ‘무조건 항복’을 의미한다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회담 직전까지도 굽히지 않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이 없어” CVID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그 결과 북한 협상 팀의 완강한 거부로 CVID에서 VI(검증가능하면 돌이킬 수 없는)가 빠진 절충적 문구인 ‘완전한 비핵화’로 나타났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환상적 회담, 기대 이상"이었다고 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껴안았다. 트럼프와 폼페이오는 김정은 위원장을 신뢰한다. 여기에는 두 요인이 주목된다. 하나는 미국에 위협이 되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로, 이는 매우 절박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핵․미사일 문제가 김정일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과 (ICBM)약속으로 사태가 수습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의 가닥이 잡혔다고 여긴다. 미국은 본토 위협 수준에 도달한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최우선의 협상 목표로 삼았다. 이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여러 차례 협상 목표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 핵․미사일 역량을 억제하는 데 있다”고 밝힌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당장 미사일(ICBM)만 억제시킬 수 있다면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서둘 필요가 없다. 폼페이오는 완전한 비핵화 요구에 대해 하루아침에 비핵화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이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도 미국의 이러한 입장과 전략적 목표를 충분히 꿰뚫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대중전략의 문제이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과 손잡는 이른바 ‘연미(聯美)’ 노선으로의 전략적 전환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김정은 껴안기’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뉴욕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의 회담 후 “북한이 전략적 변화를 숙고하고 있고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믿는다…그들은 수십 년간 걸어온 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하길 바란다”고 밝힌 점도 그렇다.

어쨌든 과거에는 준비해본 적이 없는 전략적 변화나 근본적으로 다른 길 등의 표현을 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근본적으로 다른 길’은 분명 전략적 노선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략적 노선 전환을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한 ‘핵 선 반출․폐기’ 등의 비핵화 조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는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침과 부합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노선 전환을 북한의 경제발전과 번영을 위한 개혁개방정책의 적극적 추진을 뜻한다고 보기는 더더욱 힘들다. 물론 미국이 대북제재로 매우 심각한 국면에 처한 북한이 경제를 위해 드디어 핵포기 결단을 내렸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대외전략 노선의 근본적 변화를 파악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북한은 미국 측에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대중 전략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된다.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불신을 자주 드러냈다고 한다. 이를테면 한미 동맹의 상호신뢰를 빗대 “중국엔 그런 걸 못 느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는 전언이 사사하는 바가 크다. 이 지점에서 북한 김정은의 새로운 생존․발전전략과 미국 트럼프의 대중전략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북한이 어디로 가겠다는 말인지, ‘친미국가화’ 노선으로 봐야 하는가.

향후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 새로운 북․미관계가 형성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전략 구도는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우선 북한의 전략적 위상의 변화가 예상된다. 북․미 관계개선으로 북한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의 폭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 그에 따라 북한의 미․중 간 ‘등거리 외교전략’ 방식을 구사하게 된다. 과거 김일성의 소련과 중국 사이의 ‘줄타기 외교’의 데자뷰로 나타나는 셈이다. 중국과 미국 양측으로부터 실리 추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기반을 둔 대외전략인 주체노선은 사실상 1960년대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김정일 시대에도 실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와 ‘거리두기’는 매우 신중하게 유지되어왔다. 이러한 등거리 외교는 북한이 바라는 바이며, 중국이 우려하는 측면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수교하고 중국과 거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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