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이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지급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불수용했다. 향후 장기적인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사진=한화생명>
▲ 한화생명이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지급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불수용했다. 향후 장기적인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사진=한화생명>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한화생명이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가입자에게 돌려주라는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결정을 거부하면서 장기적인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금감원은 약관 내용이 불분명할 경우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봤지만, 한화생명은 법리 해석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삼성생명도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 지급 권고에 대해 “법원 판단을 받겠다”며 거절의사를 밝힌 바 있다.

지난 9일 한화생명은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바로연금보험(즉시연금) 조정결정에 대해 불수용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화생명은 “다수의 외부 법률자문 결과 약관에 대해 추가적인 법리 해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불수용 이유를 설명했다.

논란이 된 즉시연금은 가입할 때 목돈(보험료 전액)을 내면, 보험사가 그 돈에서 일부 사업비 등을 뗀 돈(순보험료)으로 운용 수익(투자 수익 등)을 발생시키고, 가입자는 그 수익의 일부를 일정 이율에 따라 매달 연금처럼 받게 되는 보험 상품이다. 만기 시 처음에 낸 보험료 원금도 전액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이라고 불린다.

다만 보험사는 매달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금의 일부를 따로 빼서 모아둔다. 만기 시 가입자에게 원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처음에 원금에서 사업비 등을 떼어내어 돈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험사는 모자란 돈을 메우기 위한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논란의 쟁점은 가입자가 약관에서 매달 연금의 일부를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으로 적립한다는 사실을 파악 할 수 있는지 여부다. 가입자가 이 사실을 모르면, 매달 연금처럼 받는 돈이 당초 예상보다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분조위는 한화생명 즉시연금 약관에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위한 ‘차감’과 관련된 내용이 불명확하다고 봤다. ‘연금개시시의 책임준비금을 기준으로 만기보험금을 고려하여 이 상품의 공시이율에 의해 계산한 이자상당액에서 소정의 사업비를 차감하여’라는 대목에서 만기보험금을 ‘차감하여’라고 쓰지 않고, ‘고려하여’라고 썼기 때문에 가입자가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분조위는 불명확한 약관은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모양새다. 금감원은 분조위 조정 결정에 따라 한화생명에게 덜 지급한 연금을 모두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한화생명은 분조위의 판단과 달리 해당 대목에서 만기보험금을 ‘고려하여’ 소정의 사업비를 ‘차감’한다고 적었기 때문에 불명확한 약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소정의 사업비를 차감한다’는 말이 ‘소정의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차감한다’로 읽힐 수 있는지, 나아가 보험업계에서 통상적으로 ‘사업비’가 ‘만기보험금 지급재원’과 같은 말로 쓰이는지 등 규명되어야 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박혜진 한화생명 홍보실 과장은 “보험업계에서 쓰이는 ‘사업비’라는 단어에 어떤 항목이 포함되는지, 특히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포함하는지에 대해서 사실 구체적으로 약관에 정의해 두진 않았다”며 “다만 만기보험금 지급재원 관련 사업비라는 말이 보험료 산출서에는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보험료 산출서는 보험사의 내부문건이라 가입자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앞서 삼성생명은 즉시연금 가입자의 민원 1건에 대한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는 수용했지만, 전체 가입자 5만5000명을 일괄 구제해 4300억 원을 추가 지급하라는 권고는 지난달 26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거부한 바 있다. 한화생명의 경우 삼성생명과 달리 약관 해석 다툼의 여지가 있고(삼성 약관엔 만기보험금 지급재원 관련 내용이 부재), 섣불리 조정 결과를 받아들였다가 삼성처럼 일괄구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조정 결정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에 따르면 금융사가 금감원 분조위의 조정결정을 거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화생명은 다만 의견서에서 이번 불수용이 지난 6월 12일 분쟁조정 결과가 나온 민원 1건에 국한된 것이며, 법원의 판결 등으로 지급 결정이 내려지면 모든 가입자에게 동등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과장은 “우리는 삼성생명과 달리 즉시연금 보험 상품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약관에 대한 법리 해석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계속해서 법무법인에 법리 검토 의견을 구하고 있고, 향후 소송 발생 시엔 법원의 판단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달 27일 금융소비자연맹은 보도자료를 통해 즉시연금 가입 소비자들의 피해를 접수 받아 분석하고, 분조위 결정이 타당할 경우 공동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진행사항을 묻자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현재 공동소송 제기를 위해 소비자피해 신청을 받는 중이며, 이달 말까지 접수 받을 예정”이라며 “정확한 집계는 아직 못했지만 70명 정도 신청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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