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선거 앞두고 ‘북미협상의 더딘 진전’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지지층 결집 선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8월 말 북한 방문을 취소해 9월 유엔 ‘종전선언’ 가능성은 다소 멀어졌다. 연내 종전선언을 통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발걸음도 무거워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24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폼페이오 장관 방북을 취소한 이유로 “한반도 비핵화에서 충분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 “중국과의 무역에서 미국의 입장이 훨씬 더 강경해졌기 때문에 중국이 이전처럼 비핵화 절차를 돕고 있지 않다”며 ▲북미 비핵화협상 교착 ▲중국의 북한 비핵화 비협조 두 가지를 들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은 조만간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라며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해결된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미중 무역협상 문제를 먼저 푼 뒤에야 북미협상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결정은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해도 기대한 정도의 비핵화 진전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야기될 미국 내부 비판을 회피하겠다는 스탠스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미국의 소리>에서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를 두고 “창피를 당하거나 실패하는 것을 피하려는 (결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 볼 대목은 중국을 북미협상의 ‘방해자’로 지목해 끌어들인 대목이다. 단골메뉴 ‘중국 탓’은 과거부터 반복된 것이란 점에 비춰볼 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16일에도 “북한과의 관계는 좋아 보이지만 중국에 의해 아마 다소 상처를 입었다”며 “중국이 미국의 무역 관련 조치를 정말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 탓’을 눈 여겨봐야 할 이유는 ‘북한 핵문제’를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 나아가 미국 정부의 전통적 인식에 기인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등 미국 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중국 견제와 압박’의 수단이었던 전례가 여기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또 11월 중간선거에 사활을 걸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도 중요하지만 ‘미중 무역협상’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로 탄핵 위기로까지 몰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미 핵협상의 ‘불투명한 성과’보다는 미중 무역전쟁에서의 진전이 더 의미 있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 결정은 북한에 대한 압박이기도 하지만 보다 큰 틀에서 보면 중국에 대한 압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의도를 감추지도 않는다. ‘중국 탓’을 하면서 매번 ‘미중 무역전쟁’ 언급을 빠뜨리지 않는데서 드러난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세전쟁에서 미국이 ‘승기(勝機)’를 잡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 전에 마무리 되든 그렇지 않든 미국 내 여론을 붙잡으면서 지지층 결집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폼페이오 방북 결정과 이어진 방북 취소는 사전에 기획된 각본일 가능성도 있다.

중국, 미국의 무역전쟁과 비핵화 연계를 ‘중간선거 전략’으로 인식

중국은 외무부 루캉(陸慷) 대변인은 26일 미국의 ‘중국 탓’에 “미국의 주장은 기본 사실에 위배될 뿐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라며 “한반도 관련국들이 적극적인 소통과 협상에 나서야 할 시점에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려선 안 된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도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북한 정권수립일(9·9절)을 계기로 시진핑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것이 골치 아픈 문제로 떠올랐다. 세 번이나 중국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성의를 생각하면 답방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비핵화’와 연계해 무역전쟁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선 뾰족한 수가 없다.

중국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백악관이 무역전쟁과 비핵화 문제를 연계한 건 국내 비판여론을 잠재우고 중간선거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기 위한 것”이라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결정을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중간선거 전략으로 바라봤다.

文대통령, 9월 3차 남북정상회담 통해 ‘중재자’ 역할 강화 모색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행동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것은 문재인 정부다. 폼페이오 장관 방북과 연계해 9월 3차 남북정상회담, 9월말 유엔에서의 남북미 정상회담 또는 남북미중 종전선언까지 욕심냈지만 이러한 로드맵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8월26일 정례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 소식에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은 더 커진 것이 아닌가 싶다”며 “북미가 경색된 상황에서 막힌 곳을 뚫어주고 북미 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촉진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더 커진 것이 객관적인 상황”이라고 담담한 입장을 보였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다음날인 27일 김 대변인은 8월내 열겠다고 공언했던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에 대해 “폼페이오의 방북, 남북정상회담 등 순조로운 일정 속에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며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북미협상과는 무관하게 개소하겠다는 입장에서 후퇴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지만 당장 마땅한 ‘수단’이 없다. 북미협상이 교착되면 미국이 반대하는 한 남북경협을 돌파구로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북미협상에 끼어들 수도 없다.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한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푸는 문제다. 협상 창구가 없던 평창 동계올림픽 전후 시점과는 다르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 방북 무산으로 9월 3차 남북정상회담의 역할과 무게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폼페이오 장관 방북과 연동되거나 규정된 위치에서 벗어나 한반도 정세변화의 중대한 계기점이 됐다. 미국과 북한도 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협상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 본인 또한 3차 남북정상회담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의지가 강하다. 6.12 북미정상회담 후 한반도 정세가 북미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3차 회담을 통해 애초 본인의 주장대로 남북·북미 2개축이 선순환하도록 하도록 만들려고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26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와 통화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 때 여야가 함께 갈 수 있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 방북 무산에도 3차 정상회담에 대해 어느 정도 방향과 가닥을 잡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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