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북한이 속임수를 쓰거나 시간 끌기를 해서 도대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미국이 강력하게 보복할 텐데 그 보복을 북한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믿어달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이다. 너무도 솔직한 얘기이다. 과거의 북한 지도자 같으면 어떤 경우에도 미국의 보복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미국의 보복을 감당할 수 없다는 식의 말을 했다. 그가 북한을 이끌었던 자신의 선대(先代)들과 다른 점이다.

그가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과 다른 솔직 화법은 자주 나타난다. 1, 2차 남북정상회담 때도 북한 도로사정의 불편함을 말했던 김 위원장은,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에게 숙소를 안내하면서 "대통령께서는 세상 많은 나라를 돌아보시는데 발전된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 숙소는 초라하다"며 자신들의 부족함을 먼저 말했다. 언제나 북한이 최고라고 말해왔던 이전의 북한 지도자들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라 할 만 하다. 이제는 한국의 언론과 국민들도 김 위원장의 솔직함을 참모습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게다가 그가 문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연장자에 대한 예의가 깍듯함이 나타난다. 비핵화를 매듭짓고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노선 등 근래 들어 그가 내린 주요 결정들을 돌아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타당한 내용의 것들이다. 그동안 김정은 하면 무자비한 독재자의 모습만 떠올렸던 우리 국민들에게는 ‘뉴 김정은’이 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그런 모습은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닐 게다. 화면에 비친 그의 피부는 햇볕에 그을린 구리 빛이었다. 현지 지도를 워낙 많이 다닌 이유로 짐작된다. 구중궁궐에 들어앉아 편하게 호의호식 했으리라던 짐작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 위원장이 어느 날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한 것이 아니라, 원래 갖고 있던 모습을 이제야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악마도 천사도 아닌, 한 국가를 책임진 합리적인 지도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서방과 한국의 언론들은 두 측면을 균형있게 보려하지 않은채 ‘악마 김정은’만 전달하는데 급급했던 것이 불과 10개월 전 까지의 광경이었다.

물론 북한에 대한 부정확한 보도에는 그동안 외부로의 노출과 공개를 꺼려온 김 위원장 자신의 탓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북한의 멀쩡한 지도자를 괴물과 악마로만 보도해온 한국 언론의 반성이 따라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그러한 성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채 변화된 광경들을 쫓아가는데 급급하다. 독자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부정확한 보도를 자성하는 단계를 건너뛴 채, 이제 언론들은 김정은의 솔직함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북한은 변하고 있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 쪽에 더 많은 것이 아닐까.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