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보고서 의도 의심 “‘北 기만 주장’, 협상 저해하려는 것”, 美 내서도 비판

CSIS가 공개한 디지털 글로브의 ‘삭간몰 기지’ 위성사진
▲ CSIS가 공개한 디지털 글로브의 ‘삭간몰 기지’ 위성사진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개한 북한의 미신고 미사일 운용기지가 확인됐다는 보고서가 한국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새롭거나 충격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보고서가 나온 배경과 진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CSIS가 운영하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비욘드패럴(Beyond Parallel :분단을 넘어)’이 12일(현지시간) “약 20곳으로 추정되는 북한 내 미신고 미사일(undeclared)  운용기지 중 최소 13곳을 확인했다”고 이 중 황해북도 삭간몰 미사일 기지를 분석한 내용을 공개했다.

CSIS는 “해당 미사일 기지들은 북한 외곽 산간 지역에 흩어져 있으며 미 본토 어디든 타격 가능할 만큼 규모가 큰 탄도미사일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휴전선과 가까운 황주군 삭간몰 일대 미사일 기지가 잘 운영되고 있으며 원활하게 유지·관리되고 있다고 했다.

보고서를 집필한 버뮤데즈 연구원은 “미사일 운영기지는 발사시설이 아니다. 비상 상황에서는 발사할 수도 있지만, 북한 인민군 작전 절차에 따르면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들은 사전 준비된 발사지로 분산 이동하게끔 돼 있다”며 “북한은 서해 미사일 기지 해체로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미국과 남한을 향한 군사적 위협을 감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미국이 자신의 대외안보전략에 따라 정보를 입맛에 맞게 ‘마사지’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내년 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양보를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용 보고서’란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보고서 내용 공개 후 진행상황을 보면 북한용이라기보다는 ‘미국 내 여론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美언론, ‘트럼프 대통령 北 기만에 놀아났다’는 프레임 사용

보고서 내용만 보면 북미 비핵화 협상의 쟁점들들 자세히 알지 못하는 미국 국민들을 겨냥한 여론몰이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 사실관계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의 미사일기지 존재는 미국 여론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소재다. 이에 반(反) 트럼프 성향의 주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북 여론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협상을 비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그동안 북한이 대규모 기만전술(great deception)을 펼쳐왔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속여 왔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기만에 놀아났다’는 프레임이다. 미국 민주당 측 인사들은 보고서를 미국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졌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발언들을 공격하는 재료로 사용했다.

오마바 정부의 척 헤이글 전 국방부 장관은 CNN에 “트럼프의 (지난) 언급들이 거짓말”이라며 “북한은 비핵화를 위해 어떤 단계를 밟을지 그 계획을 보여주는 어떠한 문서에도 서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진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트럼프를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주류언론들도 CSIS의 보고서를 대북 압박용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성과를 비난하는 소재로 적극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보고서는 북한을 겨냥한 ‘대외용’이라기보다는 미국 여론을 겨냥한 ‘대내용’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이 보고서가 ‘대내용’을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미국 내부의 ‘한반도 냉전 유지’, ‘한반도 현상유지’를 원하는 세력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무렵 본격 물꼬를 튼 ‘한반도 평화’의 세찬 물결에 지금까지는 휩쓸려왔지만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그 물살을 되돌리려는 기도가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향후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주한미군 주둔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에도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우월한 군사적 지위가 훼손될 수 있다고 보는 미국 내 일각의 우려가 이러한 CSIS 보고서 공개라는 방식으로 표출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靑 “이미 파악된 정보 이용한 ‘北 기만 주장’, 북미협상 저해하려는 것”

한국 정부도 이러한 상황전개를 우려하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CSIS 보고서에 대해 “보고서의 출처는 상업용 위성인데 한미 정보당국은 군사용 위성을 이용해서 훨씬 더 상세하게 이미 파악을 하고 있는 내용”이라며 “면밀하게 주시 중인데 새로운 건 하나도 없다”고 내용이 과장되고 부풀려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삭간몰 미사일 기지에 대해서도 “단거리용이다. 스커드와 노동, 단거리용으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IRBM(중거리탄도미사일)과는 무관한 기지”라며 “정부가 매년 국방백서를 낼 때마다 공개하는 (북한 보유 미사일) 1,000기 안에는 이런 삭간몰 분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새로운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보고서 내용보다 실제 강조점을 둔 것은 뉴욕타임스의 ‘대규모 기만(Great Deception)’이라는 표현이었다. 김 대변인은 “북한이 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는 게 의무조항인 어떠한 협정도, 어떠한 협상도 맺은 적이 없다. 그래서 ‘기만’이라고 하는 건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울러 “(보고서에서) ‘미신고’라고 하는 표현도 나오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신고를 해야 될 어떠한 협약도, 협상도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신고를 받을 주체도 없다”며 “이것은 북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 북미 대화를 비롯해서 협상과 대화의 필요성을 더 부각시키는, 필요성을 더 보여주는 그러한 사실 관계”라고 북미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나아가 “미신고, 기만 이런 내용들이 북미 간에 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 대화를 가로막고 협상 테이블이 열리는 것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공개 브리핑을 한 배경도 설명했다. 미국 내 여론전이 북미협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CSIS 보고서 내용 비판

또 실제 미국 내부에서도 CSIS 보고서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CNN도 보고서에 언급한 미신고 시설들은 미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들이 오래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설명처럼 ‘새로운 사실’이 아닌 군사당국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새로운 것’처럼 포장했다는 얘기다.

핵 비확산 전문가인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이건 기만이 아니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탄도 미사일 대량생산을 명령했다”며 “김정은이 (북미)협상이 타결되기 전에 (미사일 기지를) 파기하고 개선 작업을 중단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라고 북한이 ‘속이고 있다’는 해석을 비판했다.

미 정부 싱크탱크가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한 것은 북미협상 교착국면에서 북한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이날 미국 언론들과 정치권이 ‘트럼프 때리기’의 재료로 사용함에 따라 상황은 복잡하다. 미국 중간선거 후 하원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쟁점으로 삼아 트럼프 행정부 공격에 나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