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 증선위 판단 의견서 형태로 대법원 제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지난 14일 정례회의에서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 혐의를 인정하고 지난 20일 검찰에 고발했다. 증선위의 이같은 조치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고심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지난 14일 정례회의에서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 혐의를 인정하고 지난 20일 검찰에 고발했다. 증선위의 이같은 조치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고심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금융당국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고의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현재 대법원에 계류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또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무효소송,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등도 금융당국의 판단에 영향을 받을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는 지난 14일 정례회의를 열고 삼성바이오가 4조5000억 원 규모의 고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삼성바이오가 지난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단독지배)에서 관계회사(공동지배)로 회계 처리기준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회계부정을 저질렀다고 본 것이다.

증선위가 이러한 판단을 내린 데는 삼성그룹의 내부문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내부문건에는 삼성바이오가 지난 2012년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데도 종속회사로 처리해 왔으며, 2015년이 돼서야 특정한 의도를 갖고 회계처리 기준 변경을 논의한 정황이 담겨있다.

지난 7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문건을 언론에 공개하고 “삼성의 내부 문서를 통해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가 제일모직 주가 적정성 확보를 위해 고의로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며 “분식회계의 목적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이 그동안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 처리기준을 변경한 것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과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해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는 지난 2017년 2월 고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고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변경은 고의 분식회계가 아니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과도 연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증선위의 고의 분식회계 판단이 나온 현재까지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의 지난 2015년 회계처리가 고의 분식회계라고 결론 내렸다. <사진=연합뉴스>
▲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의 지난 2015년 회계처리가 고의 분식회계라고 결론 내렸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증선위가 지난 20일 삼성바이오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앞서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등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선 심의를 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심의 대상을 지난 2015년 말 분식회계 혐의로 한정한 것이다.

다만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은 고의 분식회계 판단 당일 삼성그룹 내부문건에 대해 “금감원이 재감리를 하고 새로운 조치안을 만들 때 매우 중요한 근거로 제시됐다. 광범위한 내용이 포함됐고 증선위 논의에도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즉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동기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뒷수습이었다는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이 증선위 판단의 '스모킹 건'(결정적 역할)이었다고 밝힌 셈이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두 회사의 합병과 연관이 있다는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선 두 회사 합병 당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수월하게 하려고 제일모직이 최대 주주로 있는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참여연대는 증선위가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결론을 발표한 직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과정 전반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적절성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입장문에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불공정한 합병비율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불순한 동기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증선위가 이를 고의 분식회계로 판단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라며 “이번 증선위의 분식회계 결론은 삼성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과거 두 회사의 합병 당시 주식 교환비율을 살펴보면 제일모직은 1, 삼성물산은 0.35였다. 삼성물산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로 평가받았던 만큼 주주들의 반발은 거셌다.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도 지난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손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8000억 원대 ISD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증선위의 고의 분식회계 판단과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동기가 담긴 내부문건의 등장으로 그 후폭풍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정황과 동기가 담긴 삼성그룹 내부문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정황과 동기가 담긴 삼성그룹 내부문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우선 이목이 쏠리는 지점은 이번 증선위 판단이 대법원에 계류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다.

앞서 이 부회장은 2심 재판에서 제3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린 건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줄 당시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즉 경영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 자체가 없었으므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네며 암묵적으로 청탁할 일도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고 뇌물죄 혐의를 인정한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판결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하지만 이번 증선위 판단과 삼성 내부문건 공개로 당시 삼성에 이 부회장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이 존재했다고 해석할 만한 여지가 생겼다. 이는 2심 무죄 판단의 근거와 배치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각에선 대법원판결을 앞둔 이 부회장 입장에선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대법원은 항소심판결이 법리에 맞는지만을 판단하는 곳이기 때문에 증선위의 판단이나 삼성 내부문건을 새로운 증거로 채택할 순 없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뇌물수수 혐의 무죄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제기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증선위의 판단을 의견서 형태로 대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만약 대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을 파기환송 할 경우 증선위 판단과 삼성 내부문건이 향후 유력한 재판 증거로 쓰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또한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무효 소송에도 관심이 쏠린다. 해당 소송은 삼성물산의 주주인 일성신약 등이 합병 당시 두 회사의 가치 평가가 잘못됐다며 낸 것이다.

1심은 삼성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증선위가 두 회사 합병 비율의 근거가 된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가 분식회계로 뻥튀기되었다는 결론을 내놓은 만큼 향후 항소심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8000억 대 ISD 소송에 증선위 판단이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과거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하고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반대표를 던졌다. 합병이 성사된 후에는 일성신약과 함께 소송을 진행한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삼성물산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고 한국 정부와 ISD 소송을 벌이고 있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ISD 소송의 쟁점은 국민연금이 합병에 관여해 엘리엇이 손해를 봤다는 내용이므로 이번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문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