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윤청신 기자]

원로가수 현미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현미(玄美, 본명: 김명선)는 7일 밤 방송된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화제 선상에 올랐다.

현미는 과거 함께 활동했던 남석훈을 찾기 위해 출연했다. 현미는 남석훈을 찾는 이유에 대해 "한 사람 두 사람 하늘 나라로 가니까 옛사람이 그립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이에 현미의 나이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 윤정수는 "현미가 역대 게스트 중 가장 나이가 많다"고 소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미는 1957년 미8군 무용수로 처음 활동하다 1962년 정식 가수 데뷔한후 1966년 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에서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했다.

1938년 1월 21일에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현미는 그는 출생지였던 평양에서 살았으나 한국전쟁이 한창 전개되던 1951년에 1.4 후퇴를 계기로 월남했다.

월남 후, 1957년 미 8군 무대에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펑크가 난 가수의 대타로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1958년 미8군 SHOW 무대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얻으며 1962년에 이봉조가 개사/편곡한 '밤안개'라는 곡으로 가요에 정식 데뷔했다. 이 곡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1963년에는 '보고싶은 얼굴'이라는 곡을 불러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던 당시 그들의 아픔을 노래로 달래주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패티 김, 이미자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 여성 가수로서 인지도를 넓혀갔다.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을 줬고 그때부터 팝과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불렀다.

당시 이봉조의 노래만 불렀던 현미는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등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봉조와 결혼 했으나 당시 이봉조가 유부남 상태로 두집 살림을 한 사실을 알고 헤어져 홀로 두 아들 이영곤과 이영준을 키운다.

1938년생으로 올해 여든 한살이지만 아직도 활발한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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