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故 김용균 태안화력 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아버지 김해기씨. <사진제공=연합뉴스>
▲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故 김용균 태안화력 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아버지 김해기씨. <사진제공=연합뉴스>

“비록 아들은 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들한테 고개를 조금이라도 들 수 있는 면목이 생겨서… 정말 고맙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에 대한 여야 합의가 발표되자 고(故)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정말 고맙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무엇이 그리 고마웠던 것일까.

김미숙씨는 산안법 개정에 대한 여야 합의가 난항을 겪자 지난 며칠 동안 국회를 찾아 환노위 회의장 주변에서 내내 기다리곤 했다. 어머니는 각 당 지도부 앞에서 잇따라 고개를 숙이고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우리 아들이 또 죽는 거나 마찬가지"라 흐느끼며 법안의 통과를 호소했다.

아들 잃은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와 항의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산안법은 당초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 처리에 대한 여야 합의가 있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연내 통과가 무산될 상황이었다. 자유한국당은 원청의 책임이 무한정 확대되면 기업 경영 존립 기반이 와해된다며, 산안법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미숙씨의 호소와 행동은 여론의 큰 반향을 낳았고 환노위에서의 여야 합의를 압박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민정수석에게 31일 국회 운영위 출석을 지시함으로써 자유한국당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산안법이 통과될 길을 열어주었다. 그 결과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산업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안법 개정이 28년 만에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당초 정부 원안에 비해 처벌 규정이 약화되는 등 후퇴한 내용들도 있지만, 위험 작업의 도급을 금지하는 조항이 처음 도입되는 등 사실상 법 제정 수준의 획기적 개정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용균은 죽었지만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구하게 된 것이고, 어머니는 아들은 잃었지만 다른 자식들을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아들은 죽었어도 다른 사람 자식들은 살리고 싶다." 아들을 잃은 개인의 슬픔에 갇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자식들은 살리고자 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켜보던 우리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

마치 화가 케테 콜비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로 갔던 18세 아들 페터가 전사하자 콜비츠는 “어머니로서의 삶은 이제 다 끝났다”고 절망하며 슬픔에 젖었다. 그러나 콜비츠는 자기 아들에 대한 애도에 머무르지 않고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그렸다. <비통한 부모>에서 무릎을 꿇은 어머니의 눈은 수많은 무덤들을 주시하고 있고 두 팔은 그 무덤 속에 누워 있는 모든 아들들을 향해 뻗고 있다. <씨앗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에서는 전쟁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아이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가 있고, 아이들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는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렇게 콜비츠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젖어있는 대신, 더 이상 아이들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나섰던 것이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가 그러했다. 내 아들은 죽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자식은 더 이상 그렇게 죽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다른 많은 자식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죽은 용균이와 하나가 되었다.

다시 한번 고 김용균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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