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실적 스트레스로 직원 숨져…노조 “실적 아닌 국민 위해 일하고 싶다”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KB국민은행 총파업 전야제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KB국민은행 총파업 전야제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19년 만의 총파업에 돌입한 KB국민은행 노사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 온 안건은 ‘페이밴드(미승진자 임금 동결)’ 제도다. 노조는 페이밴드가 사내 무리한 경쟁과 성과주의를 부추긴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국민은행 직원은 과도한 실적 압박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는 지난 8일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총파업 선포식을 열고 하루 동안의 경고성 파업에 돌입했다. 박홍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이날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열 차례 넘는 교섭과 주말, 오늘 새벽까지 (협상에서도) 사측은 주요 안건에 대한 별다른 입장 변화 없이 본인들의 입장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노조의 총파업은 지난 2000년 있었던 주택은행과 국민은행 합병 반대 파업 이후 19년 만이다. 노사는 파업을 앞둔 전날 밤 11시부터 새벽까지 막판 밤샘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현재는 2차 파업 시작일인 이달 30일 전까지 실무교섭과 대표자 교섭을 하기로 하고 접점 찾기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 8일 오전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 지부 조합원들이 총파업 선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8일 오전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 지부 조합원들이 총파업 선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은행 노사가 현재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은 페이밴드 제도다. 이는 연차(호봉)가 쌓여도 일정 기간 내 직급 승진을 하지 못하면 임금도 오르지 않도록 한 일종의 ‘성과연봉제’다. 국민은행은 지난 2014년부터 신입 행원에 대해 페이밴드를 적용중이며, 이를 전 직원에 확대 적용하고 싶어 한다.

현재 국민은행의 직급 체계는 L0(비정규직), L1(대리), L2(과장·차장), L3(부지점장·지점장), L4(지점장·지역본부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페이밴드가 적용된 L0직원과 L1직원의 연차에 따른 기본급 상한은 각각 7등급과 5등급이다. 만약 L0, L1직원이 직급 승진에 실패하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기본급은 그 이상 오르지 않는다.

국민은행은 페이밴드가 직원들의 승진 유인을 극대화해 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조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제도 중 하나이며 국민은행이 지점 수를 줄여가고 있어서 직급 승진은 갈수록 어려워 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페이밴드에 막혀 기본급이 동결되는 직원은 이르면 2024년부터 생겨난다. 어쩌면 ‘만년 대리’에 ‘만년 임금 동결’인 직원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8일 오전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KB국민은행 총파업 선포식. <사진=연합뉴스>
▲  지난 8일 오전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KB국민은행 총파업 선포식. <사진=연합뉴스>

페이밴드를 도입할 경우 사내 무리한 경쟁과 성과주의를 부추겨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이 성과를 요구하는 임금체계를 만들면 행원은 실적을 내기 위해 고객에게 최대한 많은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 이는 고객에 대한 불완전 판매, 직원의 실적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노조는 파업 전 각 영업점에 붙인 대고객 안내문에서 “2018년 한 해 동안 실적 스트레스와 심혈관 질환 등으로 재직 중 돌아가신 직원이 10명”이라며 “실적을 채우기 위해 가족과 친구의 이름으로 대포통장을 만들고 동문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카드 가입 신청서를 들고 간다”고 밝혔다.

이어 “무리하게 실적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위험성 높은 상품에 대해서는 충분히 안내하고, 가급적 낮은 대출 금리로 국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파업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국민은행 영업부 직원은 과도한 실적 압박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보다 앞선 4월엔 IBK기업은행 부지점장이 같은 이유로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금융노조가 지난해 발표한 ‘은행권 과당경쟁 근절을 통한 금융공공성 강화 및 금융소비자 보호 방안(국내 14개 은행 설문조사)’을 보면 직장 생활을 힘들게 하는 주요인으로 과도한 실적달성 경쟁(65%)이 꼽혔다. 장시간 노동(11%)은 실적 경쟁의 5분의 1수준 이었다.

총파업 현수막이 붙은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사진=연합뉴스>
▲ 총파업 현수막이 붙은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사진=연합뉴스>

노조는 또한 국민은행이 2014년부터 신입 행원에 페이밴드를 적용한 것을 두고 선후배 간의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노사협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 신입 행원들에게 강제적으로 적용한 것이라며 은행이 임금결정 권한을 행사해 노조를 무력화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따라 사측은 파업 전 당일 새벽 협상에서 페이밴드의 모든 직원 확대 적용에서 현행 유지로 한 발 물러섰지만 노조는 완전폐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현재까지 허인 국민은행장은 페이밴드 사안에 대해 “시간을 두고 논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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