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 비핵화’의 새 이름 ‘스몰딜(Small deal)’, 실제내용은 ‘스몰’이 아닐 수도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이 19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과 집무실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게시했다.[출처=댄 스캐비노 트위터]
▲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이 19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과 집무실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게시했다.[출처=댄 스캐비노 트위터]

북한과 미국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2월 말에 열기로 합의했다. 구체적 장소와 시간은 추후 발표키로 했지만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느리게 흐르던 ‘한반도 평화의 시계’도 다시 빨라지게 됐다.

싱가포르 회담 직후 북한의 비핵화 실천과 이에 대한 반대급부인 북한 체제안전 보장을 향한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듯 했으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둘러싼 북미 간의 이견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 자리 걸음만 한 지 8개월 만에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 자체는 지난해 7월 이후 장기간 교착국면으로 빠져들게 한 핵심 장애요인을 어느 정도 제거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CVID(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란 말로 단 번에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미국이 한발 뒤로 물러섰고 이에 북한도 미국이 원하는 쪽으로 좀 더 과감한 비핵화 실천조치를 제시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미국이 CVID원칙에서 북한의 핵 신고와 검증 절차에 따른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대북 제재완화’와 ‘종전선언’은 어렵다는 입장으로 북미협상에 임했고 북한은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핵 신고’ 절차는 미국에게 공격 타깃리스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고 난색을 표했다.

대안으로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며 ‘구체적 비핵화 행동 단계’를 설정해 이에 따른 단계적 상응조치를 요구하면서 8개월이란 장기 교착국면을 낳았다.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합의는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는 의미다.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발표 이후 이른바 ‘스몰딜’ 논의가 나오는 것은 ‘단계적 비핵화 조치와 이에 따른 상응조치’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원하는 최종지점인 ‘FFVD빅딜’로 가기 위한 단계에서의 ‘스몰딜’이다.

또한 이번 합의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친서를 주고받으며 탑다운(Top down) 방식으로 진행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 신고 여부를 두고 장기간 교착된 협상을 북미 정상이 나서 정리한 것으로 9월 평양정상회담 이후 북미협상 진전을 기대해온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이미 핵동결’ 천명한 김정은 신년사가 출발점, 북미 실무협상도 본격화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의 출발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1월 1일 신년사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미 두 나라 사이 불미스러운 과거사를 계속 고집하며 떠안고 갈 의사가 없으며 하루빨리 과거를 매듭짓고 두 나라 인민들의 지향과 시대 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관계 수립을 향해 나아갈 용의가 있다”고 북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그는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왔다”며 북한이 지난해부터 이미 실질적인 핵동결을 이행하고 있다고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 발표 후 7일 곧바로 중국을 방문해 다음날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재차 확보했다. 지난해 6.12 북미정상회담 전과 비슷한 행보다. 북미 비핵화협상이 ‘단계적 실천과 상응조치’로 가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을 중국이 뒷받침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18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고위급회담을 한 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했다. 이어 곧바로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과 90분간 비핵화와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다”며 “2차 정상회담은 2월 말께(near the end of February) 열릴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 과정에서 북미 정상 간의 친서 교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백악관은 2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았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한 답신을 보냈다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4일 김정은 위원장이 김 부위원장에게 미국 방문 결과 보고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고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믿고 인내심과 선의의 감정을 가지고 기다릴 것”이라며 “조미(북미) 두 나라가 함께 도달할 목표를 향하여 한발 한발 함께 나갈 것”이라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 실무준비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발표 직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1월 19~21일까지 2박3일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휴양시설 하크홀름순트 콘퍼런스에서 ‘합숙 담판’을 벌인 것도 이례적이다. 북미 정상의 탑다운 방식이 실무협상을 이끈 동력이 됐음을 알 수 있다.

비건 대표는 지난해 8월에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됐지만 북미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져들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카운트파트인 최 부상과 만나지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 얼굴을 마주보며 대면했고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등 한국 대표단도 실무협상에 합류했다.

협상이 비공개로 진행돼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공개되고 있지 않으나 조선중앙통신의 24일 김 위원장의 2차 북미정상회담 실무준비 지시 보도와 폼페이오 장관의 실무협상 관련 발언을 보면 일단 순조롭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스웨덴 북미 실무협상 결과에 대해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사항 성사를 위한 몇몇 복잡한 의제 중 일부를 논의할 수 있었다”며 “약간 더 진전된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다만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제시한 비핵화를 성취하고 두 정상이 동의한 한반도 안전과 안정, 평화를 달성하는 과정에 여전히 많은 단계들이 남아 있다”며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There remains an awful lot of work to do)”고 2차 정상회담 때까지 북미 조율 의제가 만만치 않음도 알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2월 말에 우리는 (비핵화 달성을 향한) 길에서 또 다른 좋은 이정표를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낙관적 입장을 유지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나 실무협상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은 후속 실무협상이 진행돼야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미 양측은 조만간 다시 만나 후속 실무협상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12정상회담 당시에서 정상회담 직전까지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수차례에 걸쳐 실무협상이 진행된 점에 비춰볼 때 비슷한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회담 일자와 장소에 의견접근을 이뤘다 하더라도 의제 조율과 경호·의전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미고위급회담대표단을 만나 워싱턴 방문 결과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미고위급회담대표단을 만나 워싱턴 방문 결과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단계별 비핵화’의 새 이름 ‘스몰딜(Small deal)’, 실제 내용은 ‘스몰’이 아닐 수도

최대 관심사는 비핵화 협상이다. 회담 개최 발표 후 미국과 북한이 ‘핵동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와 ‘대북 인도적 지원 해제 또는 일부 남북경협 재개’를 맞바꾸는 이른바 ‘스몰딜’에 의견 접근했다고 언론들은 분석했다. 그러면서 CVID 또는 FFVD 원칙에 따른 합의를 ‘빅딜’로 보면서 이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로 이러한 합의를 ‘스몰딜’로 명명했다.

분명한 것은 북미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단계 설정’ 공감대를 형성한 점이다. 이 단계적 이행을 ‘스몰딜’로 부를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이 원하는 FFVD 로드맵에 따른 ‘빅딜’의 한 과정, 또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완전한 비핵화’란 목표 지점으로 가기 위해 ‘스몰딜’ 단계라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일정 수용한 측면이 있다. 미국은 최근까지 FFVD 로드맵을 강조하면서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는 대북 경제제재 완화는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음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전체 핵시설과 핵무기 신고를 마땅찮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미연합 군사훈련 일시적 중단조치에 기대 자신의 모든 전력을 노출해야 하는 위험성 때문이다. 또 설사 신고하더라도 이후 그 내용을 두고 끊임없이 ‘거짓말’ 시비가 벌어지면서 협상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한 것은 핵 신고를 우선시하는 미국의 전략을 돌파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에 가까웠다. 핵 신고 단계서 북한이 과연 정직하게 신고했는지 여부를 두고 빚어질 신경전과 이로 인한 각종 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에 이은 영변 핵시설 폐기는 핵동결을 넘어 현재 핵의 핵심까지 포기하는 것으로 사실상은 ‘불가역적 폐기’ 단계 진입을 의미했다. 북한의 결단을 두고 ‘대북제재 완화’를 얻기 위한 북한의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여기에 동창리 실험장 폐쇄를 통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도 넘겨줄 의사도 내비쳤다.
 
그러나 CVID를 고집해왔던 미국은 핵 신고 절차 없는 영변핵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를 내놓는데 어려움을 맞았다. 북한의 ‘영변핵 폐기’에 맞는 상응조치가 ‘종전선언’에다 인도적 지원을 넘어선 ‘경제제재 완화’를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이는 CVID까지 제재 완화는 없다고 한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평양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활발한 중재에도 미국은 ‘한미워킹그룹’ 구성 등을 통해 대북제재를 허물 수 없다는 입장을 강화하면서 북한을 압박했고 북미 교착은 더 깊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을 기점으로 이른바 ‘스몰딜’이 수면에 오른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21일 라디오인터뷰에서 “영변을 내놓으면 사실은 북한의 핵 80%는 불가역적으로 비핵화가 되는 셈인데, 그건 큰 걸 달라는 뜻”이라며 “미국이 그걸 받으려면 내놔야 될 것이 크기 때문에 이제 입장을 바꿔서 ICBM을 내놔라”는 쪽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스몰딜’이 부상한 배경을 얘기했다.

즉 ‘스몰딜’은 ‘단계별 비핵화’의 다른 이름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과거처럼 ‘단계’를 세분화하지 않고 빠르게 ‘완전한 비핵화’로 이행하겠다고 한 부분을 감안할 때 ‘스몰딜’의 내용이 ‘스몰’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계를 급진적으로 설정할 경우 ‘빅딜(Big deal)에 근접할 가능성도 있다.

‘스몰딜’의 경우 ‘핵동결 +ICBM 폐기 대 인도적 지원 해제 + 일부 남북경협 재개’로 모아지지만 이 경우 북한이 9월 평양선언에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는 빠지게 된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 폐기가 거래대상이 된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추가적인 대북제재 완화, 평화협정을 위한 다자회담 문제도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돼 ‘빅딜’에 근접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스몰딜’이 될 경우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한국 모두가 이에 반대하는 한 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이번 ‘스몰딜’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文대통령 “2차 북미정상회담, 두 번 다시 없을 기회”, 강한 기대감 표현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북미가 2월 말 경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키로 한 것과 관련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미리 알지 못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1953년 정전 이후 65년 만에 처음 찾아온,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다. 우리는 이 기회를 무조건 살려야 한다”고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끝까지 잘될까’라는 의구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끝까지 잘되게끔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다.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다”며 “끝까지 잘되도록 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몫이 크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리에게 더욱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목표로 한 ‘연내 종전선언’과 9월 평양선언에서 기대했던 ‘연내 김정은 서울 답방’ 모두가 무산되면서 ‘한반도 평화 시계’가 늦춰졌지만 2월 말 북미정상회담 개최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진도가 빨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3~4월 중 ‘김정은 서울 답방’ 여부가 가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미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종전선언’이 나오면 곧이어 남북미중 4개국이 참여하는 정전협정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한반도 평화의 장’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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