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펑 ‘남순강화(南巡講話)’ 연상돼, 北 <노동신문> ‘애국헌신 대장정’ 명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2차 북미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평양역을 출발하기 전 환송식을 갖는 모습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2차 북미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평양역을 출발하기 전 환송식을 갖는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오전 11시에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에 마침내 도착했다. 특별열차로 지난 23일 오후 4시 30분에 평양을 출발해 베트남 동당역에는 66시간만인 이날 오전 8시14분에 도착했고 곧바로 차량으로 갈아타고 약 3시간 이동해 무려 69시간의 대장정을 펼쳤다.

23일 평양을 떠난 김 위원장의 전용 열차는 중국 단둥(丹東), 선양(瀋陽), 톈진(天津), 스자좡(石家莊), 우한(武漢), 창사(長沙), 헝양, 구이린(桂林), 류저우, 난닝(南寧)을 거치며 중국 내륙을 종단해 26일 0시께(현지 시간) 류저우(柳州)에 이어 오전 3시께 난닝(南寧)을 거친 뒤 베트남 접경지역인 핑샹(憑祥)에 오전 7시 15분에 도착했다.

이 노선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를 거치지 않은 채 중국과 베트남의 접경으로 가는 최단 경로이지만 열차 이동거리로만 4,500km, 1만 리(里)가 넘는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3박 4일의 고되고도 기나긴 여정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경호와 안전’ 때문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보다는 김 위원장 자신의 정치적 결단과 선택을 북한 내부와 국제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북한을 거쳐 중국을 종단해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열차 1만리 대장정’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정치적 결단은 다름 아닌 경제발전을 향한 ‘북한의 개혁·개방’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1만리 열차 대장정’은 이러한 개혁·개방의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이 1992년 1월 18일부터 2월 22일까지 우한(武漢),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상하이(上海) 등을 시찰한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연상하게 했다.

등샤오핑 주석의 남순강화는 천안문 사태 이후 개혁개방정책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을 정리하면서 경제개방의 속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김 위원장도 ‘열차 대장정’을 통해 지난해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에서 밝힌 비핵화 의지를 재차 확인하면서 북한이 개혁과 개방, 경제건설의 길로 나아갈 것임을 천명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는 북한 내부를 향한 정치적 메시지란 점도 주목된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열차 이동을 ‘애국헌신 대장정’으로 명명했다. <노동신문>은 24일 전날 김 위원장의 평양 출발을 전했고 25일과 26일에도 ‘대장정’에 대한 북한사회 내부의 결의가 전했다. ‘대장정 선전전’의 양상이다.

박태성 부위원장은 25일 1면 기고문에서 “온 나라는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 있다”며  김 위원장의 ‘대장정’을 ‘애국애민의 대장정’, ‘력사적인 사변’이라고 했다. <노동신문>은 26일 사설에서 “온 나라는 불도가니 마냥 끓고 있다”며 “전체 당원과 근로자들이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 돌아오실 날을 기다리며 총진군속도를 비상하게 높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정치체제 유지에 성공한 ‘중국·베트남 모델’ 절실하다는 메시지도

북한 관영매체는 지난해 6.12 북미정상회담 당시에는 이 사실을 회담 후에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이번에는 회담 이전부터 분위기를 잡아나가고 있다. 게다가 북한 고위인사의 결의문을 잇달아 게재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비핵화-경제개발을 향한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면적인 ‘선전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자신의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결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사들에 대한 숙청을 단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비핵화’와 ‘개혁·개방’이라는 북한사회의 대변혁을 앞두고 ‘북한 내부의 결속’을 도모하기 위해 ‘열차 1만리 대장정’을 감행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김 위원장은 조부인 김일성 주석이 1964년 베트남을 방문한 길과 유사한 경로를 밟은 것도 북한 내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25일 tbs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열차편으로 베트남 하노이로 이동하는 것을 두고 “북한에서는 항일투쟁 관련해서 학생들한테 배움의 천리 길이라고 하는 행군을 시키는데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라며 “개혁개방 배움의 만리길을 가면서 북한 주민, 그다음에 북한 내부 회의론자들한테 확실하게 우리는 개방개혁으로 간다(는 북한 내부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베트남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할 테니까 그리 알고 준비하라는 뜻”이라며 “이번에 수행원 중에도 지금 몇 사람들이 그쪽에서 현장에서 열심히 메모하고 돌아와서 그걸 정책으로 개발하려는 사람들이 좀 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개방개혁 배움의 만리 길”이라고 했다.

‘1만리 열차 대장정’이 던지는 메시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을 종단해 베트남에 입성하는 것 자체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개방에 성공한 중국-베트남에 대한 ‘사회주의국가 연대’라는 또 다른 의미로 있다.

이에 대해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지난 25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중국, 베트남 아시아 공산주의 3국인데 사회주의 국가들끼리의 협력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혁·개방을 하면서도 사회주의 정치체제 유지에 성공한 중국·베트남 모델이 절실하다는 메시지란 얘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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