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와 ‘대북제재 해제’ 이견으로 결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28일 종료됐다.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소련 우전노동문화궁전에 마련된 국제미디어센터에서 취재진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28일 종료됐다.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소련 우전노동문화궁전에 마련된 국제미디어센터에서 취재진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역사적인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다. 이유는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와 ‘대북제재 해제’에 대해 북미 간의 인식 차에 있었다.

미국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영구적 폐기’ 상응조치로 ‘대북 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했기에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북한은 상응조치로 ‘대북 제재 부분 해제’를 요구했지만 미국이 이를 받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결국  ‘영변 플러스 알파’와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이견 때문에 결렬됐다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8일 정상회담 합의 결렬 후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유에 대해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해체에 동의했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추가가 필요했다. 고농축 우라늄 시설 아니면 기타 시설 해체도 필요했지만 김 위원장은 준비 안 돼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상응조치로) 완전한 제재 해제를 원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며 “북한은 핵 프로그램의 상당수를 비핵화 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미국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는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 만으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기 때문에 회담이 결렬됐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장에 함께 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며 “미사일도 빠져 있고, 핵탄두 무기 체계가 빠져 있어서 우리가 합의를 못했다. (핵)목록 작성과 신고, 이런 것들을 합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플러스 알파’에 해당하는 비핵화 조치를 않은 것이 결렬 원인이란 얘기다.

그러나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결렬 설명에 반박하고 나섰다. 리 외무상은 하노이정상회담 결렬 12시간 만인 3월 1일(현지시간) 0시30분 숙소인 베트남 멜리아 호텔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유엔 대북제재 부분 해제를 제안했지만 미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다고 했다.

리 외무상은 “(상응조치로)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까지 채택된 5건, 그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반박했다.

이어 회담 결렬의 이유에 대해 “그러나 회담 과정에 미국 측은 영변 지구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며 미국의 플러스 알파 요구 때문이라고 했다.

북미 양측의 주장을 보면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가 결국 회담의 장벽이 됐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한 것이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는 ‘경제 제재 해제’는 없다는 것이 핵심이었고 북한은 ‘영변 플러스 알파’는 수용할 수 없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대북제재 이견, 北 ‘부분 해제 요구’를 美 ‘전면 해제 요구’로 받아들였을 가능성 커

또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미국의 주장과 상응조치로 ‘부분적인 제재 해제’를 제안했다는 북한의 주장 간에는 서로 배치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북미가 ‘대북 제재’를 바라보는 인식차를 감안하면 양쪽이 모두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의적인 주장을 할 여지는 존재했다.

북한이 ‘부분 해제’를 제안했다고 했지만 2016년부터 2017까지 채택된 5건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해제 요구에 대해 미국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 요구’로 받아들였을 개연성이 높다. 북한의 요구는 금강산·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에 대한 제재완화를 넘어 유엔 제재의 틀을 건드려 중국과의 교역도 복원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생각하는 완전한 비핵화 단계 전의 ‘제재 완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 내지는 유인·촉진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한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가동 정도까지 검토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2월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나눈 대화의 핵심 골자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요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남북경협 재개와 함께 북중 교역 복원까지도 노렸을 것은 분명하다. 이에 미국은 이를 비핵화 진전 촉진조치라기보다는 ‘대북 제재의 무력화’, ‘비핵화 협상의 지렛대 상실’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말했을 개연성이 높다.

2016년~2017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5건은 석탄 등 북한의 주요 수출품목과 대북 원유 공급 제한이 핵심이다. 이들 조치의 여파로 2018년에 북중 무역이 약 90%가 감소했다. 북한으로선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부분 해제’인 것을 분명하지만 미국은 이를 ‘전면 해제’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리용호 외무상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온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에 대해 “5건 가운데서도 100%가 아니고 군수용을 제외한 민생과 관련된 부분만 제재를 해제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미국은 ‘유엔 대북제재 틀’을 허물어 자신의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이에 미국은 예외로 인정할 수 있는 남북경협을 넘어 유엔 대북제재 틀을 깨기 위해선 북한의 추가적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을 것이며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가 물러설 수 없는 최종 제안이라며 물러서지 않음에 따라 회담 결렬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北美, 회담 결렬에도 ‘판 깨기’보다는 지속적인 대화 입장 유지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3월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3월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노이 정상회담이 ‘영변 플러스 알파’와 ‘대북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결렬됨에 따라 북미는 당분간 냉각기를 거칠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가 ‘비핵화 협상판’을 깨지 않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에 대해 “아주 생산적인 시간이었다”며 “굉장히 좋았다. 우호적이었다. 그냥 갑자기 일어서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호적으로 마무리 했다”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을 거두지 않았다. 또 추가적인 대북 제재나 한미연합 군사훈련 재개도 하지 않겠다는 말로 협상을 계속 끌고 가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것이 시작점이고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제 북한팀을 잘 알고 있고, 무엇이 제한적인지,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수일, 수주 동안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협상의 돌파구를 다시 마련하겠다고 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에 아쉬움을 표하는 한편, 향후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타결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냈다. 나아가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회담 결렬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로 체면을 구겨 서먹서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에게 ‘중재자’로 나서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북한도 일단 차분하게 대응했다. 이번 회담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서 베트남 동당역까지 전용열차로 66시간에 걸친 ‘대장정’을 펼쳤다. 그럼에도 ‘빈손’을 귀환할 상황이지만 북미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는 3월 1일 “하노이 상봉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더욱 두터이 하고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됐다”며 “조선반도 비핵화와 조미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위하여 앞으로도 긴밀히 연계해나가며 하노이 수뇌회담에서 논의된 문제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통신>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해 결렬됐다는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 내부에서의 남북 또는 북미 관계 개선에 회의적인 입장이 대두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도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리용호 외무상의 베트남에서의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에서도 ‘제재 해제’ 부분과 비핵화 조치에 대해 자신들 입장에서의 자세한 설명에 치중했고 미국 측을 비방하거나 비난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또 자신들은 이번 회담에서 내놓은 카드가 마지막 카드라고 강조한 대목은 오히려 앞으로 있을 협상에 대비한 발언으로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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