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국내정치 뒷수습이 당면난제, ‘중재방안 마련’ 숙제 안은 文

문재인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북미협상 타결을 이루겠다는 말로 북미 중재자 역할에 나설 뜻을 나타냈다.[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북미협상 타결을 이루겠다는 말로 북미 중재자 역할에 나설 뜻을 나타냈다.[사진=청와대]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이틀째인 2월 28일 단독회담과 확대회담 직전까지의 회담 전망은 낙관적이었다. 확대회담 전 취재진의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관련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사실상 합의된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해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합의문 서명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다.

앞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대표와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가 잠정 합의문 작성을 마쳤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상회담의 속성상 정상회담 합의문은 여러 상황과 시나리오에 맞춰 미리 준비됐을 것이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막판 쟁점이 있다면 이를 제한 수준에서 최종 합의문에 서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상회담의 관행이다.

즉 ‘플러스 알파’가 없는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경협사업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선의 합의문 서명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것은 미국 국내 정치상황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1일 차인 2월 2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미국 하원 공개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을 “협잡꾼, 거짓말쟁이”라고 증언한 것이 미국 언론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을 제치고 전면을 장식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3월 1일 tbs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 결렬 배경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의 청문회 내용이 묻히게 필요하다면 판을 깨서 헤드라인을 장악하겠다는 생각한 것 같다”며 “판을 깨기 전까지는 하노이 기사가 하나도 안 나왔다. 그런데 (합의문) 서명을 못하게 되면서 헤드라인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미국 주류언론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부분도 인식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의 과감한 추가적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지 못한 상태에서의 합의문에 서명할 경우 국내 정치적으로 불리할 것이란 판단에 의도적으로 ‘하노이 핵 담판’을 결렬시켰다는 추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로 떠나기 전부터 “서두를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핵화 협상을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될 사안이라는 언급도 했다. 심지어 27일 김 위원장과의 첫 회동장에서도 “서두르지 않겠다(No rush). 중요한 것은 옳은 합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러스 알파’ 없는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남북경협사업을 허용하는 이른바 ‘스몰딜’ 합의에 그칠 경우 미국 주류언론들로부터 ‘실패한 협상’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미국 주류언론의 ‘잘못된 협상’이라는 선제 규정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노딜’을 회담 전부터 상정했을 개연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핵협상도 중요하지만 발등의 불은 ‘국내 정치적 위기’이다. 

김정은 66시간 ‘열차 대장정’에도 ‘빈 손’, 뒷수습 난제 맞아 

회담 결렬로 가장 당혹감을 느낄 당사자는 김정은 위원장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남달랐고 회담에 임하는 내내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생각해보면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던 그런 기간이었던 것 같다”며 “이번에 모든 사람들이 반기는 그런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거라고 확신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회담 성공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이어 “불신과 오해의 적대적인 낡은 관행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했지만 우린 그것들을 다 깨버리고 극복하고 우리는 이렇게 마주 걸어서 260일 만에 여기까지 왔다”며 남다른 각오도 밝혔다. 회담 2일차 확대정상회담 중 취재진의 질문에 “1분이 중요하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로 협상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이 확대정상회담 과정에서 회담은 결렬됐다. 이에 따른 낙심도 클 것 또한 분명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월 23일 오후 4시 30분에 특별열차로 평양을 출발해 26일 오전 8시14분에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했다. 열차로만 무려 66시간의 ‘대장정’을 했다. 동당역에서 차량으로 갈아타고 하노이까지 약 3시간 이동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69시간의 대여정이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3박 4일의 고되고도 기나긴 여정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경호와 안전’ 때문만은 아니다. 이보다는 김 위원장 자신의 정치적 결단과 선택을 북한 내부와 국제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북한을 거쳐 중국을 종단해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열차 1만리 대장정’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 캡션 4]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1∼2면에 걸쳐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고, 생산적인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전날 양측이 합의문에 서명하지 못한 채 회담이 결렬됐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 [사진 캡션 4]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1∼2면에 걸쳐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고, 생산적인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전날 양측이 합의문에 서명하지 못한 채 회담이 결렬됐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하노이 정상회담 성공을 바탕으로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북한 내부를 향한 정치적 메시지의 성격이 강했다. 이에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들은 2월24일 이후부터 연일 김 위원장의 ‘대장정’ 소식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회담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대북제재 완화’라는 성과를 얻어내 경제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와 함께 정치적 지도력을 강화하려 했지만 회담 결렬에 따른 뒷수습이란 당장의 과제를 안게 됐다. 나아가 회담 실패에 따른 지도력 훼손까지 우려해야 될 상황이다.

김 위원장에게 있어 북한 내부의 적은 ‘대남, 대미 적대세력’이다. 미국과 한국 내 대북 적대세력이 뿌리 깊이 존재하듯이 북한 사회를 떠받혀온 세력도 이들이다. 이들은 북미대화와 남북화해에 회의적이며 ‘비핵화 노선’에 대해선 불안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월 19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및 한국과 대화하는 자신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부유층 50~70명을 대거 숙청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열차 대장정’과 관영매체의 대대적인 선전보도는 바로 이들 세력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번 하노이 회담 실패는 김 위원장에게 큰 정치적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은 자신이 천명한 ‘비핵화’와 ‘경제발전’ 노선을 폐기할 수도 없다. 이미 호랑이 등을 탄 형국이기 때문이다. 정책노선을 변경하면 더 큰 정치적 상처만 입는다.

북한이 회담 결렬에도 차분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김 위원장이 1~2일 베트남 공식방문 일정도 무난하게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빠르게 수습하고 다시 북미협상의 모멘텀을 마련할 것인가가 과제다.

北美 중재자로 나선 文대통령, 핵심은 ‘플러스 알파’와 ‘대북제재 완화’ 조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중요해졌다. 냉각기의 북미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선 문 대통령이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 위원장에게 문 대통령은 서로에 대한 의사타진 창구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중재 역할 요청을 받은 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사를 통해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해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상호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특히 두 정상 사이에 연락 사무소의 설치까지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성과”라고 먼저 평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지속적인 대화 의지와 낙관적인 전망을 높이 평가한다. 더 높은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며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 정부는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여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중재자로서 역할을 다할 것임을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북미가 다시 비핵화 협상 재개 여건 조성 방안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신한반도 체제’를 얘기하면서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시대를 열어나가겠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유엔 제재 틀의 예외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미국이 허용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핵심적 원인은 북한이 비핵화 ‘플러스 알파’ 조치 없이 성급하게 ‘유엔 대북제재 틀 깨기’의 욕심을 부린 것에 있음을 은연중 확인한 것에 가깝다. 아울러 이는 미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에 따른 적절한 보상 없이는 다음 단계의 비핵화 진전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신호도 된다.

북미 양측이 인정하듯 이번 회담에서 북한 핵의 중심은 ‘영변 핵시설’이고 비핵화의 출발점이란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그래서 북한은 이 지점에서 ‘대북제재 완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다음 단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전략적 수단’을 놓을 수 없다고 하면서 협상은 어그러졌다.

문 대통령은 북미가 부딪힌 그 지점을 다시 이어붙이기 위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거의 항복하듯이 플러스 알파’ 비핵화 조치를 제시하면서 북미대화에 나서기 어려운 입장을 반영한 것이지만 북한에게는 ‘영변 핵시설 폐기’에 따른 기대수준을 낮추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또 이는 ‘플러스 알파’가 없이는 대북제재 완화는 없다고 한 미국에게도 명분을 제공한다. 국제적인 유엔 대북제재 틀을 건드리지 않고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기반한 ‘예외조치’ 인정으로 북미 대화 재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여론의 저항도 크지 않을 것이란 점도 감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은 여기서 머물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노이 이후의 북미회담은 이른바 ‘스몰딜’을 건너뛰어 ‘빅딜’에 근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 미국 여론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가야한다.

‘영변 핵시설 폐기+알파’가 해법이다. 여기엔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 언급한 다른 지역의 핵시설 폐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등 여러 조치들이 포함될 수 있다. ‘영변 플러스 알파’에 대한 상응조치는 이번에 북한이 요구한 민생과 관련된 유엔안보리 제재의 일부 해제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여론의 수용성도 높을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이 ‘플러스 알파’로 과연 어떤 비핵화 조치를 내놓지 여부가 최대 관건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내놓는데도 매우 힘든 ‘여정’을 거쳤다. 여기에 추가적인 조치를 내놓는 데는 북한 내부적으로 많은 진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지도력의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에게는 이러한 상황까지 감안한 ‘중재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중재방안’을 마련해 북미 양쪽을 ‘설득’해내야하는 고단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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