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CLRTAP’, 미국-캐나다 ‘AQA’, 아세안 ‘AATHP’
구체적 목표와 지속적 모니터링이 실효성의 ‘키’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리간지에 중국 생태환경부 장관이 26일 대기질 예보 정보 및 기술교류를 위한 이행 규정 합의문에 공동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리간지에 중국 생태환경부 장관이 26일 대기질 예보 정보 및 기술교류를 위한 이행 규정 합의문에 공동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폴리뉴스 이지혜 인턴기자]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해 약 1주일간 ‘매우나쁨’ 상태의 하늘이 계속됐다. 정치권은 중국과의 협의, 또는 강경한 항의로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방법을 고심 중이다. 

중국발 미세먼지처럼 한 나라에서 발생한 환경문제가 국경을 넘어 인접 국가에 영향을 주는 것을 ‘월경성 환경문제’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의 산성비, 동남아시아의 연무 등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앞서 진행된 해외의 대기오염 관련 국제 협약 사례를 살펴보면, 앞으로 중국과 효율적으로 ‘미세먼지 외교’를 진행하는데 참고할 점들이 보인다. 정부 또한 유럽과 미국-캐나다의 대기질 협약 모델을 바탕으로 중국과 협력체제 구축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성공적인 ‘월경성 대기오염’에 대한 협약은, 과학적 조사를 기반으로 구체적 목표와 실행방안을 가지고 진행돼야하고, 대상국들 사이에서 지속적 모니터링을 통해 실효성을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세 개의 국제 협약의 배경, 그리고 성과와 성공요인을 자세히 짚어본다.


국제관계를 지혜롭게 이용한 유럽 '월경성 장거리이동 대기오염 협약(CLRTAP)'

1950년대 후반, 스웨덴·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은 산성비로 큰 환경문제를 겪었다. 숲이 사라지고, 호수가 강산성으로 변해 물고기의 수가 급감했다. 

스웨덴 과학자 스반테 오덴(Svante Oden)은 산성비의 원인이 외국으로부터 유입된 아황산가스(SO2)라는 것을 밝혀냈다. 북유럽국가들은 OECD에게 과학적 실태조사를 요청했다. 1971년, OECD는 SO2가 영국과 서독으로부터 왔다고 결론내렸다.

해당 국가들은 연구결과를 부정하며 반발했다. 스웨덴은 1972년 자국 스톡홀름에서 열린 ‘UN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산성비 피해를 호소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회의 개최 시점에 맞춰 산성비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를 계기로 유럽 국가들은 1972년 OECD 주도 아래 11개국이 참여하는 ‘대기오염물질 장거리 이동 측정에 관한 협동 기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소련은 정치적인 이유로 1975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회의(CSCE)’에서 유럽차원의 에너지·운송·환경 등의 다양한 의제를 내놓았다. 미국과 서유럽이 제기한 인권 문제로부터 관심을 분산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소련의 제안에 힘입어 ‘월경성 장거리 대기오염물질’ 문제를 주요 협의 대상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가 축적되면서, 이후 ‘UN유럽경제위원회(UNECE)’ 차원에서 협력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1979년 11월 13일, UNECE 34개 회원국 가운데 31개국이 ‘월경성 장거리이동 대기오염에 관한 협약(CLRTAP)’에 서명했다. 처음 체결된 협약은 최소한의 의무규정만 담았다가, 향후 8개의 의정서를 통해 차츰 비중을 키웠다. 

협정의 내용은 오염물질과 그 이동 및 확산에 대한 자료수집, 국가별 오염물질 감축기술 및 전략에 대한 정보 공유 등에 초점을 맞췄다. 처음엔 감축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 대신, ‘유럽감시평가프로그램(EMEP)’에 대해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국가가 비용부담을 더 많이 진다거나 상호 협력 및 합의 규정을 다수 둠으로써 실효성을 높였다. 

제네바의정서(1984)·헬싱키의정서(1985)를 통해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을 핵심적으로 감축했다. 1980년을 기준으로 1993년까지 방출량과 국경 이동량을 30% 줄인다는 내용의 헬싱키의정서에 서명한 21개국은 모두 목표 달성에 성공하였다.

이후 소피아의정서(1988)·제네바의정서(1991)·오슬로의정서(1994)를 통해 단계적으로 오염물질을 감축해나갔으며, 아르후스 의정서Ⅰ·아르후스 의정서Ⅱ(1998)에서는 중금속과 16개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을 관리했다. 

예테보리의정서(1999)에서는 황, 질소산화물, 휘발성 유기화합물 및 암모니아에 대한 상한선을 결정했다. 2012년에는 수정안을 통해 미세먼지(PM2.5) 신규 기준을 도입하기도 했다. 

스웨덴·노르웨이 등 직접적 피해국가들은 오염물질의 피해를 설득력 있게 입증하고, 결과를 모든 당사국에 공유하며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았다. 비록 법률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국제적 관계를 적극 활용하고 다양한 협의로 실효성을 갖췄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다. 


양국 간 지속적 협정이 관건, '미국-캐나다 대기질 협정(AQA)'

<사진= 연합뉴스 제공>
▲ <사진= 연합뉴스 제공>

 

1970년대 당시 캐나다 동부와 미국 동북부 지역의 산성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두고 논쟁이 시작됐다. 조사 결과 캐나다에서 발생하는 산성비의 50%는 미국이 원인이었고, 미국에서 발생하는 산성비의 15%는 캐나다가 원인이라고 알려졌다.

캐나다는 미국정부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지질학상 산성비에 대한 토양 생태계가 취약하고, 산림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국의 소극적 태도로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1978년, 미국 의회는 대기질 협정에 관한 캐나다정부와의 교섭을 국무성에 요구했다. 대기오염물질의 장거리 이동에 관한 정보교환과 연구 활동 협의를 위한 그룹이 만들어졌고, 1980년 ‘월경성 대기오염에 관한 의향각서’를 조인해 여러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1984년이 되어서야 미국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간에 극동 7개 지역의 황산화물 배출 수준을 1994년까지 1980년 기준 50%로 줄이는데 합의했다. 구속력이 강한 의정서 체결 교섭에서는 여전히 미온적이던 미국이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국내 여론 확대 및 무역 때문이었다.

1991년 양국은 ‘미국-캐나다 대기질 협정(AQA)’를 채택했다. 이 협정의 서문에는 1972년 UN에서 합의된 스톡홀름 원칙21, “타 국가의 환경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책임”을 재확인했다. 또한 2개의 부속서(Annex)를 통해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휘발성유기화합물 배출을 관리할 것을 합의하고, 국가별 배출 관리구역을 지정하기로 했다.

또한 적절한 감축조치를 시행하고, 조치를 확정하기 전 상대 국가에 통보하는 등 협력과 공동연구, 상호 평가를 교환하기로 했다. 양국은 2012년 기준 1990년 대비 아황산가스 배출량을 각각 78%, 58% 감축하며 의미있는 결과를 얻었다. 

미국과 캐나다는 여러 협정을 통해 양국이 공동관리 할 대기오염물질을 규정하고, 구체적인 기준과 목표를 제시했으며, 이행과정을 정기적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이후 지표면 오존에 관한 내용을 협약에 추가하는 등 협의를 발전시켜왔다. 

환경분쟁해결에 국제법의 원칙을 적용하고 교섭 및 국제공동위원회, 타 분쟁해결기구를 적극 이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연무’ 피해 못 참겠다... 동남아시아 '월경성 연무오염 아세안협정 (AATHP)'

 

작년 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보르네오 섬에 산불과 연무 피해가 확산되며 자카르타 시내가 스모그성 안개에 뒤덮여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 작년 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보르네오 섬에 산불과 연무 피해가 확산되며 자카르타 시내가 스모그성 안개에 뒤덮여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2002년 ‘아세안(ASEAN)’회원국들은 ‘월경성 연무오염 아세안협정(AATHP)’를 체결했다. 화전(火田)이나 농장 조성을 위한 산림 개발 도중에 발생한 화재로 연무가 발생했고, 이것이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런 산불들은 쉽게 꺼지지 않기도 했고, 이탄지대를 만나면 불이 꺼진 후에도 지하의 마른 이탄이 타들어가면서 수개월동안 연무를 발생시켰다. 

1990년 아세안 회원국들은 제 4차 환경회의에서 ‘쿠알라룸프르 합의서’를 채택하고 처음으로 ‘월경성 대기오염’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지속적 협의를 통해 기술 TF를 창설하고, 화재 및 연무 예방, 감축, 모니터링을 실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도네시아에서 대형화재가 일어나는 등 발전은 없었다.

연무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도네시아의 의회는 10년이 넘도록 AATHP를 비준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연무를 국내 문제로 봤고, 아세안의 내정불간섭 원칙을 내세우며 비준을 거부했다. 

2013년에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거대한 산불이 났고, 이로 인해 발생한 연무가 편서풍을 따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로 유입됐다. 말레이시아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싱가포르는 야외활동이 전면 금지될 정도였다. 

싱가포르는 선박·물류·항공·관광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받았다. 싱가포르 의회는 이에 2014년 8월 ‘초국경 연무 오염법’을 의결하여 다음 달 공포하였다. 이 법에 따르면 외국에서 대기오염이 발생하더라도 피하자가 손해배상 청구를 싱가포르 법원에 제소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주권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의 설득과 계속되는 화재의 영향으로 2014년 10월에서야 AATHP가 비준됐다. 

이 협정에 의거하여 아세안 회원국들은 아세안센터를 설치·운영해 감시체계 수립 및 예방활동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나라 별로 화재 진압을 시행하고, 긴급대응 및 원조 제공을 하게 됐다. 

이 협정으로 아세안은 연무 오염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법적 권한 및 의무를 처음 제시하였다. 또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기간 및 지역에 대해 국제적 관리와 모니터링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각 정부의 부실관리나 협정 위반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없고, 의무도 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이는 회원국의 주권을 최우선시하는 아세안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지만, 참여국들의 공동 대응이 어렵다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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