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네번째, 아시아 최초'를 자랑한 EGS, 즉 '인공저류층지열방식'의 포항지열발전소는 대한민국 최초의 촉발지진 사례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하지만 넥스지오를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과 대한민국정부는 대 국민, 대 포항시민 사기극이나 다름 없는 전 세계 최악의 지열발전소 촉발지진을 유발했다는 오명까지 얻게 됐다. 대규모 아파트촌이 인접한 부지, 이암층인 포항의 그 연약한 지반에 쏟아부은 수압과 본진에 앞선 63회의 유발지진을 은폐한 내막을 들여다 본 입장에서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노천 지열이 풍부한 화산지대 국가와 달리 지열빈국인 한국이 지하를 1km씩 내려갈 수록 온도가 25도 상승하는 원리를 이용한 이 발전방식에 주목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스위스 바젤 등 지열발전소 유발지진 피해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포항지열발전소의 수압과 63회 지진 은폐 사실을 전하자 'incredible'(믿을 수 없다)을 연발했다. 이를 전하는 포항의 방문자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어떻게 쇠를 절단하는 워터제트가공기의 25%에 이르는 수압을 지하 파쇄층에 쏟아붓고 진동이 계속 되는데도 이를 은폐한 채 사업을 강행했느냐를 반문한 것이다. 하기야 발전소의 물 주입 과정에서 규모3.4 지진이 발생하자 즉각 사업을 중단하고 검찰이 20분만에 현장에 출동해 자료를 압수한 선진국의 입장에서야 한국은 당연히 '믿을 수 없는 후진적 위험사회'로 보였을 것이다.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정부조사단의 포항지진 원인조사 결과 발표를 현장에서 지켜보는 내내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현지에서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29분31초 규모5.4 강진의 공포와 전율을 경험한 입장에서 그렇지 않은 타자에게 어떻게라도 실감을 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게 지진의 뼈 아픈 기억보다 더 큰 트라우마는 재난을 억울하게 겪은 같은 피해자인 지역사회의 일그러진 권력구조로부터 비롯됐다. 사업 시작에서 지진 발생 이후까지 거짓과 변명, 은폐를 반복한 정부와 사업자에게는 추호의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상처받을 일이 없었다. 오히려 미증유의 사회적 재난을 경험한 지역에서 이런저런 고리로 얽힌 권력 토호들이 지진사태의 원인과 수습, 그 책임을 둘러싸고 보신하기 위해 보여준 행태는 실망을 넘어 충격과 분노를 유발케 했다. 

오랜 기간 함께 활동해온 시민단체의 일원으로서 지진의 원인 규명을 위해 사태 발생 3개월만에 행사장 대관을 요청했지만 넓은 강당을 가진 시와 대형교회는 모두 등을 돌렸다. 이는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재난의 위험을 인식한 피해주민들의 분노가 정치세력화할 것을 우려한 정치인들의 정략적 계산이 낳은 결과였다. 한편 이해해보면 'all or nothing'(올 오어 낫싱) 구조인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절박한 선출직들이 지진 발생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물론 지열발전 컨소시엄에 참여한 지역 기반의 대기업에게 여러 이해관계로 그물처럼 얽힌 지역 유지들이 보여준 행태는 아직까지 참담한 기억을 남기고 있다.

다행히 당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정부 측 다국적조사단이 포항지진을 '지열발전소에 의한 촉발지진'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으니 시민과 정치인 모두 한시름을 놓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열발전소 포항촉발지진 사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나 다름 없다. 정부와 시행사의 책임 규명과 처벌, 지진 피해의 배상과 특별법 제정에 따른 국가재정 복구사업 등 어느 것 하나 전례가 없어 미답의 길을 헤치는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10만원을 내면 1500만원 배상받을 수 있다'는 율사들의 상혼이 판치고 느닷 없이 지진대응 시민지도자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벌써 부터 화면을 채우는 현실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조국 광복이 한민족의 자력이 아닌 국제 정세 아래 외세의 개입 덕택이라는 판단에는 패권주의적 자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포항지진도 마찬가지다. 지진 사태에 대응하는 포항지역사회는 지난 16개월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침착하게 유발지진의 근거를 정부와 조사단에 제시하고 진실 규명을 위한 시민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는 이진한 교수를 비롯한 국내에서 비주류인 양심적 학자들이 자연지진론자들의 주류적 과시와 방해, 조롱에도 불구하고 학술적 성과를 관철시킨 결과와도 비교할 수 있다.

사회적 재난을 경험한 시민들이 아무리 뭉치더라도 지진의 원인조사 결과를 뒤바꿀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닥쳐온 위기에 얼마나 총의를 모아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노력들이 모여 포항지진의 진실이 은폐되지 않았듯이 지진의 피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돈'과 '권력'에 매달리지 않는 시민의식이 지진의 잔해 위에 피어나길 간절히 빈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