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아름다운 평화’라는 뜻의 ‘레이와(令和)’ 새 연호로 선택
‘평화헌법’ 개헌 추진하는 아베 총리 ‘우경화’ 제동 걸 수 있을지 ‘주목’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이 1일 오전 도쿄 지요다구 고쿄(皇居) 규덴(宮殿) 내의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린 즉위 행사의 하나인 '조현 의식'(朝見の儀)'에서 마사코 왕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첫 소감(오코토바·お言葉)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이 1일 오전 도쿄 지요다구 고쿄(皇居) 규덴(宮殿) 내의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린 즉위 행사의 하나인 '조현 의식'(朝見の儀)'에서 마사코 왕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첫 소감(오코토바·お言葉)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이지혜 기자] 아키히토 전 일왕의 퇴위 후 아들 나루히토가 지난 1일 제126대 일왕으로 즉위하면서 헤이세이(平成)의 시대는 가고 레이와(令和) 시대가 막을 올렸다. 일본 정부는 ‘레이와’가 ‘아름다운 조화(beautiful harmony)’라는 뜻이라고 설명했으며, 고안자 나카니시 명예교수는 ‘와(和)’가 평화의 뜻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전 즉위 행사 후 가진 ‘조현식’에서 “국민에게 다가가면서 헌법에 의거해 국가 및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왕이 ‘헌법 수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 국내에서는 우려가 있기도 했다. 일본의 현행 헌법은 태평양전쟁 종전 후인 1946년 11월 공포된 것으로,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육해공군과 그 밖의 전력을 갖지 않는다고 명기해 ‘평화헌법’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나루히토 일왕이 헌법 수호와 평화 노선을 견지한 아키히토 전 일왕의 길을 따르겠다고 언급한 것을 미루어 보아 호헌 입장을 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는 “30년 이상 세계 평화와 국민 행복을 바라며 국민과 고락을 함께했던 상왕(아키히토 전 일왕)폐하가 보여준 모습에 경의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며 “황위를 계승함에 있어 상황 폐하의 지금까지 행보를 깊이 생각하겠다”고 언급했다.

또한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발전,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밝히며 아키히토 전 일왕이 퇴임식에서도 강조한 ‘평화’를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일왕은 왕세자 신분이었던 2014년 기자회견에서도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 헌법을 기초로 삼아 쌓아 올려졌고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며 “헌법을 지키는 입장에 서서 필요한 조언을 얻으면서 일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일 도쿄 지요다구 일왕 거처인 고쿄(皇居) 규덴(宮殿) 내의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린 '조현 의식'(朝見の儀)'에서 국민대표로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를 축하하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일 도쿄 지요다구 일왕 거처인 고쿄(皇居) 규덴(宮殿) 내의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린 '조현 의식'(朝見の儀)'에서 국민대표로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를 축하하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경화’ 아베의 개헌 시도, 새 일왕이 ‘제동’걸 수 있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전력과 교전권 보유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평화헌법 9조 개헌을 추진 중이다. 현 일본 정부와 여당은 9조에 전력으로서의 자위대 조항을 넣으려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헌법 기념일인 3일에도 개헌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며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해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퇴임한 아키히토 전 일왕은 아베 정권의 이러한 시도에 ‘브레이크’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왕은 헌법에 따라 국정개입이 금지되지만, 아키히토 전 일왕은 여러 차례 평화헌법에 애착을 드러내며 은근한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아키히토 전 일왕은 지난 2015년 신년 당부에서 “올해는 종전 70년이라는 역사적인 해”라며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향후 일본의 본연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이 지금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일본 정부의 개헌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12월에도 아키히토 전 일왕은 “제2차대전에서 많은 인명이 손실되었음에, 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이러한 많은 희생과 국민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세워진 것임을 잊지 않고 전후 태어난 사람들에게도 이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버지의 역사관을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아직 헌법관 등이 알려진 바 없는 나루히토 일왕이 개헌을 최대 숙원으로 삼고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아베 총리를 견제할 수 있을지는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한편 아사히신문이 3일 발표한 지난 3~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헌법 9조를 바꾸지 않는 편이 좋다’고 응답한 일본 국민이 64%로 바꾸는 편이 좋다는 의견(28%)보다 훨씬 우세했다. 또한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해야한다는 아베 총리의 개헌안에 대해선 반대(48%)비율이 찬성(42%)보다 다소 높았다. 

일본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90)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 <사진=연합뉴스>
▲ 일본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90)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 <사진=연합뉴스>


‘레이와(令和) ’, 평화에 대한 염원 담겼다

새 연호 ‘레이와’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나카니시 스스무 오사카여자대학 명예교수 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레이와’에는 평화를 위한 염원이 들어있다고 밝혔다.

나카니시 명예교수는 지난 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레이와는 ‘아름다운 평화’라는 의미”라며 “첫째도 평화, 둘째도 평화인 평화론자가 고안한 연호”라고 말했다.

나카니시 교수는 특히 “연호의 두 글자 중 평화를 의미하는 ‘와(和)’는 7세기 쇼토쿠 태자가 만든 17조의 헌법에 등장한 것”이라며 “한반도에서 건너온 백제 출신 지식인들이 태자와 헌법을 함께 만들었다. 그러니 ‘와’는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사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카니시 교수는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평화헌법’의 수호와 ‘반전(反戰)’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1일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이란 건 완전한 개인의 말소”이며 “평화헌법 9조는 진주와 같은 빛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퇴위한 아키히토 전 일왕과 새로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이 강조한 것도 바로 ‘평화’였다. 아키히토 전 일왕은 지난 30일 가진 퇴위식에서 “내일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레이와’의 시대가 평화롭게 많은 결실을 보기를 왕비와 함께 진심으로 바라고, 아울러 우리나라와 세계인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30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고쿄(皇居) 내 영빈관인 '마쓰노마'에서 열린 퇴위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30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고쿄(皇居) 내 영빈관인 '마쓰노마'에서 열린 퇴위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려운 한·일 관계에도 ‘레이와’ 올까


문재인 대통령은 1일 나루히토 일왕에게 축전을 보냈다. 외교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즉위를 축하하며 퇴위한 아키히토 천왕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위한 굳건한 행보를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역시 지난 1일 나루히토 새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축전을 보내고 “아키히토 상황이 평생 주창해 온 평화의 가치체현과 국민통합을 잘 이루어 나가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새로운 레이와 시대를 맞이해 레이와가 의미하는 아름다운 조화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북아 및 전세계에서도 이뤄지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적절한 시기에 대한민국을 방문하실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레이와 시대’의 첫 날인 1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대법원으로부터 배상명령을 받은 일본 기업들의 국내 주식에 대한 매각 신청등의 철차에 돌입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일본 기업의 자산이 매각되는 사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관방부 부장관은 위성방송 BS닛테레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좋은 날에 현금화하는 절차에 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최근 한일 관계는 초계기 갈등,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문제 등과 더불어 위안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가 얽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의 새 국왕이 즉위한 만큼 관계 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키히토 전 일왕은 일왕 재위 중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강조했었다. 그는 지난 2001년 12월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쓰여있는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적 있다. 

이후에도 2005년에는 사이판을 방문해 한국인 전몰자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에 참배한 바 있으며, 2017년에는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사이타마현의 고마신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히토 전 일왕이 방한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나루히토 일왕에 대해서도 일본 내 극우들의 반발 등으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 방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레이와 원년인 올해 말까지 세계 각국 정상과 주요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두 일본을 찾도록 하는 정상외교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오는 2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을 시작으로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8월에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등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 오는 10월 22일 열리는 즉위 축하행사에는 전 세계 195개국 정상 전부를 초청해놓은 상태로, 문재인 대통령과 나루히토 일왕의 조우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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