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춘 국회입법조사처 팀장 “정치·경제·사회 모든 부문에서 국민적 합의 선행돼야”

최근 리디노미네이션을 둘러싼 논쟁이 증폭되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현재의 1000원을 1원으로 낮추는 등의 화폐단위변경을 말한다.  지난 20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한 적도,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 최근 리디노미네이션을 둘러싼 논쟁이 증폭되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현재의 1000원을 1원으로 낮추는 등의 화폐단위변경을 말한다.  지난 20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한 적도,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화폐 단위를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국회에서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언론에선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올 정도로 진화되지 않는 모양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한은 본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은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한 적도,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경제 대내외 여건이 매우 엄중한 상황인데, 국민적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이 지속되는 건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현재의 1000원을 1원으로 낮추는 등의 화폐단위변경을 말한다. 카페 등 민간에서 5000원짜리 물건 가격을 5.0로 표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1953년 2월에 100원을 1환으로, 1962년 6월에 10환을 1원으로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했었다. 이후 지금까지 57년 간 화폐단위가 유지돼 왔다.

최근 리디노미네이션이 다신 언급되는 건 그 사이 한국 경제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총 금융자산은 1경7148조780억 원이다. 경은 0이 16개나 붙는 단위로, 국가 통계나 기업 회계에 숫자가 너무 많아 불편하다는 지적을 불러일으킨다.

국가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가운데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이 4자릿수인 나라는 신흥국을 제외하면 한국 뿐이라서다. 중국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도 1자릿수다. 따라서 원화의 액면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고, 이로 인해 국가 위상도 나빠진다는 논리다.

정부와 한은은 이러한 리디노미네이션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론 최근엔 청와대까지 나서서 “검토한 바 없다”며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지난 13일 국회에선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고, 언론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의 장점과 단점, 필요성과 부작용 등을 앞다퉈 보도하며 관련 논쟁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에 국민들의 불안감만 커져가는 추세다. 실제로 실물자산인 금 거래량이 늘거나, 부동산값 폭등설·지하경제 양성화설 등의 불확실한 정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북한과 화폐단위를 통일하기 위해 정부가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황당한 음모론도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화폐단위를 바꾸려면 1원을 100전으로 규정한 한국은행법(27조)을 개정해야 하는 데다, 국회 의결도 거쳐야 해서다.

게다가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려면 거쳐야 하는 단계가 상당하다. 지난 13일 국회 토론회에서 임동춘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리디노미네이션은 공론화 및 제도 준비 기간이 4∼5년, 법률 공포 후 최종 완료까지 포함해 약 1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새로운 화폐 제조, 은행 자동화 기기 교체, 기업 회계 시스템 정비, 상점 가격안내문 재제조 등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지난 2004년 김효석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안을 보면 리디노미네이션 비용으로 화폐 제조 8200억 원, 현금 입출금기 등 교체 4400억 원, 전산 프로그램 수정 1조3500억 원, 유가증권 재인쇄 등 기타 비용 600억 원이 추산됐다.

이와 관련해 임 팀장은 토론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의 역기능으로 ▲자동화기기 교체와 전산시스템 수정, 회계 장부 변경 등 많은 직접 비용의 유발 ▲화폐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노출과 재산상 손실 등에 대한 우려 등 불안 심리 발생 ▲소액단위 가격 표시 절상에 따른 물가상승 유발 가능성 등을 언급했었다.

그러면서 “리디노미네이션은 장점도 있지만 부작용 또한 상당하기 때문에 중앙은행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충분한 사전 논의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정치·경제·사회 모든 부문에서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의뢰로 지난 17일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리디노미네이션 실행에 찬성한다(32%)는 답변보다 반대한다(53%)는 답변이 많았다.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4명 대상으로 진행됐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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