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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DJ 평생 동반자 이희호...여성·민주주의·통일 헌신한 ‘큰 별’ 지다

10일 오후 11시 37분 숙환으로 별세
학생 시절 여성운동 최전선...DJ와 결혼하며 ‘가시밭길’ 견뎌
‘퍼스트레이디’ 되며 여성 인권에 노력...통일 이슈에도 헌신

[폴리뉴스 이지혜 기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 여사는 최근 앓고 있던 간암 등이 악화해 지난 주부터 위중한 상황이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의 동반자 이 여사에게 언제나 존경과 고마움을 표시했다. 서울 동교동 자택에 ‘김대중’, ‘이희호’ 문패가 나란히 걸려있는 것도 이를 보여준다.

1983년 샌프란시스코의 강연에서 김 전 대통령은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오늘 내가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내 아내 덕분이고, 나는 이희호의 남편으로서 이 자리에 서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서전에서는 “아내가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가족의 믿음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나는 20년 넘게 지속된 고난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 사람의 사회운동가로, DJ의 동반자로 여성인권과 민주주의에 헌신한 이 여사의 별세에 애도가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애도성명을 내고 “여사님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민주주의자”라고 추모했다. 

강인한 사회운동가 이희호

이 여사는 1922년 서울에서 6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나 어머니의 교육열에 힘입어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거쳐 1946년 서울대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재학 당시 이 여사의 별명은 독일어 중성관사 ‘다스(das)’였을 만큼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독립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사범대 대표를 맡기도 했으며, 기독교청년학생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1950년 졸업한 이 여사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한국전쟁을 맞았다.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대한여자청년단을 만들고 여성 권익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1952년에는 여성계 지도자였던 황신덕·이태영·박순천 등과 함께 여성문제연구원을 창립하고 2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54년부터 4년동안 미국 램버스대학과 스카렛대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1958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 여사는 모교였던 이화여대 기독교사회사업학과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 겨울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총무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여성 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주변 반대 무릅쓴 DJ와의 결혼...40년 가시밭길

김대중과 인연이 닿은 것은 1962년이었다. 부산 피란 시절 이 여사와 처음 만났던 김대중은 당시 첫 부인 차용애 씨와 사별하고 5.16 쿠데타로 의원직을 잃은 ‘정치 낭인’이었다. 

이 여사는 김대중과 정치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졌다. 고인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대중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이 여사는 “이 사람을 도우면 틀림없이 큰 꿈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박정희 정권의 ‘눈엣가시’ 김대중과의 결혼은 약 40년간의 가시밭길이었다. 이 여사는 결혼 열흘 만에 남편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정권의 서슬퍼런 압박에 사회운동가로서의 삶도 접어야했다. 이 여사는 모든 시련을 묵묵히 이겨내며 헌신적으로 김대중을 지지했다.  

김대중은 1970년 처음으로 대선에 나갈 결심을 했다. 이 여사 역시 전국을 돌며 남편 곁에 있었다. 이 여사는 찬조연사로 나서 시민들에게 “제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지 열파는 뜨거웠지만 제7대 대선은 결국 박정희의 승리로 끝났다. 가장 위험한 인물이 된 김대중은 1972년 ‘10월 유신’이후 이어지는 납치·구금·연금 속에서 생사를 넘나들었다. 이 여사는 매일 가슴 졸이는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강인했다. 이 여사는 국외 망명을 택한 김대중에게 쓴 편지에서 “한국을 대표해 더 강한 투쟁을 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직후 남편과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이 여사는 이 자리에서 “민주회복을 위해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이 곳을 거쳐가는데 나도 동참할 수 있게 돼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신념을 드러내기도 했다. 2년 10개월동안 투옥된 남편을 위해 이 여사는 석방운동을 벌이고 ‘양심수가족협의회’를 만들며 투쟁했다. 

박정희 정권은 끝났지만 신군부의 등장 속에 김대중은 내란음모조작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선고받았다. 장남 김홍일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 여사는 이때에도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헌신적인 옥바라지를 하며 김대중에게 편지와 책을 보냈다. 1982년 12월 출감 때까지 그가 보낸 편지가 649통에 이른다.

‘영부인’이자 ‘정치활동가’ 이희호

오랜 고난의 연속 끝에 김대중은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영부인의 삶을 시작한 이희호 여사는 여성 권익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2001년 여성부가 들어서고, 여성 장차관 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이 여사의 노력의 결과였다. 남녀차별 금지법 제정, 한국여성재단 발족 등도 이 여사가 주도한 활동이었다. 

이 여사는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에도 함께해 장상 이화여대 총장, 성인숙 청와대 제2부속실장 등과 함께 남북 여성좌담회를 열기도 했다. 2002년 5월 이 여사는 유엔아동특별총회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해 임시의장을 맡아 여성 최초로 기조연설을 했다.

2009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이 여사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에 선임돼 활동했으며,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떠나자 상주 김정은을 만나기도 했다. 2014년 10월에는 청와대를 방문해 박 전 대통령에게 북한 아동돕기를 위해 방북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해 2015년 3박 4일 방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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