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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폴리뉴스>창간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60년>한화갑(2)

한 전 대표가 말하는 한국현대 정당사,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정치-전문수록

지난 7월 30일 <폴리뉴스> 창간 9주년 기획으로 마련한 특별프로젝트 <한국 정당 60년사>에 한화갑 전 민주당대표를 초대하여 인터뷰를 가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소위 POST DJ시대를 이끌어 갈 정치인에 대해서 대중의 눈이 쏠리고 있다. 한 전 대표는 스스로 밝혔듯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 곧 DJ라 말할 정도로 DJ와 한화갑은 공동운명체와 같다.

본 인터뷰에는 포스트 DJ를 대표하는 정치인 중에 한명인 한 전 대표가 생각하는 한국정치와 정당사,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회고, 앞으로 정치 비전이 담겨있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시절 한화갑 대표
Ⅲ. 2002년~2008년 국민경선, 대선, 분당, 광주의 쓴맛

2002년 민주당 광주경선의 비화

김 : 2002년도 민주당 대선 후보경선에서 한 대표도 정치인의 꿈이라는 대통령에 도전하는 시점이었는데 그때 사실 하이라이트는 광주경선이었습니다.

광주경선에서 당연히 대표님이 1위가 되면서 박빙의 3강구도가 되지 않았을까 예상 했는데...결과는 노무현 후보가 1위가 되면서 판이 바뀌었습니다.

한 : 그건 2가지에요 첫째는 제가 제주도서 1등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마이너스였어요. 제주도서 1등 할 때 세칭 동교동은 나를 안 도왔어요. 이인제를 도왔지요.

그리고 심지어 그쪽에서는 한화갑이는 조직의 배신자다라고 그런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대통령 후보 나온 것도 저가 나왔지 대통령한테 허락받고 나온 그런 것 아니다.

그러니까 대통령 후보로 나선 건 한화갑 저 혼자 한 것이지 우리하고는 상관없다는 거다. 그런 논리였던 것 같습니다.

근데 제가 제주도 1등을 해버렸거든요. 한화갑이가 후보가 되면 전라도 사람이 또 대통령 되겠냐? 저건 정권재창출에 도움이 안된다. 되도 안할 것이 저런다. 이런 평가를 내린 것 같아요.

그래서 거꾸로 광주에서 우리 세력이 나를 조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봐요. 그리고 또 전라도 사람이 대통령 되겠냐. 그러니 요번에는 동서화합하고 다음에 한화갑이가 나오면 밀자.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었어요. 그렇게 된 겁니다.

예전에 민주당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에서 내가 1등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근데 그 때 당헌에는 1등이 대표가 되게 돼있었어요.

근데 내가 대표하면 지들끼리 다 해버린다 이럴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대통령에게 가서 당헌을 바꿉시다 그랬어요. 1등이 대표로 되는 것을 최고위원 중 총재가 대표를 임명한다는 식으로 바꿨어요. 당헌당규를. 그래서 서영훈 대표가 그때 대표가 된 겁니다.

그 때 한화갑은 노무현 대선후보를 흔들었는가.

김 : 그런데 또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표님께서 흔들었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한 :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후보가 되고 나서 내가 적극 밀었어요. 후단협에서 막 탈당하고 그렇게 할 때 제가 지방에 갔더니 단일화되면 투표하러 가고 단일화 안되면 안간다 이러더라구요. 어떻게 하면. 단일화를 실현시키느냐, 좋다 내가 중립을 서겠다 그랬어요.

그래놓고 단일화 이전에 2가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지금 현재 민주당의 유일한 후보다 이것을 내가 발표했고 두 번째는 노무현 후보 측에서 추석 전에 선거대책기구를 구성해달라고 해서 해줬어요.

당내의 반대를 물리치고, 선거대책기구를 구성하면 당헌당규에 의해서 모든 당의 권한이 선거대책기구로 가요. 그러면 당대표는 로봇입니다. 왜 흔들었냐고 하냐? 당의 재정권을 후보에 주라 이겁니다.

그리고 후보경선 때 선거운동했던 사람 전부 당의 부장대우해서 월급을 주라 이겁니다. 그러면 당에서 감당을 못해요 그래서 못하겠다 그랬어요.

재정권 안준다고 난리치고 그랬어요. 돈이 있으면 후보가 필요한 것을 주는데 돈이 없는데 그래서 흔들었다 이겁니다.

당시 12월 18일이 마지막 유세날이었습니다. 그 전날 17일에 유세 마지막 피날레를 노무현 정몽준 한화갑이 명동에서 유세를 하자고 정몽준 측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군요.

다음날 당사에 나갔다니 유세가 취소됐다고 했어요. 나하고 유세하기 싫은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날 명동에서는 노무현후보와 정몽준과 마지막 유세가 진행되었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정치적 미숙

김: 그렇게 하고 나서 당이 분당되는 아픔을 겪지 않습니까?

한 : 저는요. 이렇게 봐요. 그건 정치적 미숙입니다. 국회는 1당이냐 2당이냐를 의석수로 따지고 과반수도 넘고 당의 덩치가 커야 법안도 통과시켜요

그러니까 국회의원이 좋고 나쁘고를 따질 필요가 없어요. 수가 많으면 돼요. 근데 그걸 포기 하다시피 하고 코드에 맞는 사람들끼리 해요. 정치미숙이에요. 누구를 탓하고 할 필요가 없어요.

김 : 분당으로 민주당의 지지기반이 흔들렸고, 수도권의 호남향우회가 상당수 분열되고 와해되었다고 하든데.

한 : 저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봅니다. 하나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분열하였고, 아무래 여당으로 힘이 쏠리면서 전북 중심으로 새로운 향우회가 만들어지면서 호남향우회가 분열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전라도민의 염원이던 김대중 정부의 출범 이후에 조직이 많이 느슨해졌습니다. 호남향우회의 응집력이 과거보다 없어진 건 사실입니다.

2003년 분당, 그리고 또다시 닥친 시련

분당시절 연설하는 한 대표
김 : 당시 2004년도에 분당 이후에 미니민주당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때 민주당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재보선에서 전남도지사로 민주당의 박준영 지사가 되고 그 이후에 민주당이 광주전남에서 부활하였습니다. 당시의 감회가 어떠셨는지?

한 : 총선에서 졌을 때 저는 정치자금법으로 기소 당했죠. 우리가 교섭단체라도 만들었다면 기소를 못했을 겁니다. 형평에 어긋나니까. 비참하지.

내가 그런 말 했지요. “내가 여당의 대표일때는 늦게 가도 내 자리 남겨놨고 아무리 늦게 가도 먼저 얘기하고 일찍 떠났는데 지금은 어디가면 말석에 앉고 일찍 가도 맨끝으로 말하고” 비참하지요.

내가 정치자금법으로 기소만 안됐다면 민주당이 확실히 살아났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확신해요. 수도권은 모르겠는데 호남은 확실히 살아나요 그건 확실해요.

2006년 지방선거에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

김 : 당시의 2006년 지방선거 때 선거 때 압승을 했지 않습니까?

한 : 압승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열린우리당을 호남에서 우리가 이긴거죠.

김 : 그러고 나서 당시 유력했던 대통령후보였고 호남과도 인연이 깊은 고건 후보와 막후 교섭이 없었습니까?

고건선배, 우리 손잡고 민주당 한번 키워봅시다.

한 : 2006년 2월 달에 고건선배랑 저녁에 술 한잔 한 적이 있었어요. 신중식 의원도 있었고 돌아가신 동아일보 출신 남중구 선생도 계시고, 그 때 내가 고선배 우리 손잡고 민주당 키웁시다.

들어오시오. 지방선거 이기면서 승리로 이끕시다. 고선배에 대한 예우를 하겠습니다, 그랬어요. 답이 없었어요.

그 후에 또한번 그런 일이 있었어요. 고건 선배를 민다는 국회의원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 보고 내가 그랬어요. 고건선배를 민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두 가지를 해라.

첫째 민주당을 탈당하든지 두 번째는 고건 선배를 모셔오라. 내가 민주당 대표인데 민주당 사람이 딴 집 가장을 따르고 이렇게 한다면 내 꼴이 뭐냐, 난 그건 용납 못하겠다. 탈당을 하던지 모셔오라 내가 그렇게 얘기 했어요.

김 : 두 가지 다 안했던 것 같은데

한 : 그 사람들이 안 한 거지요. 그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자기가 개척해서 열매를 공유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그늘에 섰다가 어느 쪽이 유리하나 보고 있다가 줄 설 연구를 하거든요. 여기 작지만 키워 볼려면 소신대로 당당히 하고 안 할려면 말아라 이겁니다.

왜 정당이 대통령 권한만 끝나면 없어지느냐, 한나라당은 경상도라는 무조건 지지기반이 있기 때문에 존속이 되요. 그거 없어지면 국회의원 못되니깐 야당이 돼도 깨버릴 수가 없어요.

2008년 대선 패배후 다시 합쳤지만 감춰진 균열
-구민주계와 열린우리당계


김 : 그런데 광주에서 금년 초만 하더라도 대표님 중심의 신당 추진등 이런 움직임이 상당히 많았고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려서 이전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처럼 다시 분당 되는 게 아니냐 하는 그런 말이 많았었거든요

한 : 그게 그 전례 없이 그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왜냐면 저번 지방선거 때 전남 광주에서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에 이겼거든요. 근데 민주당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지금 공천 받는다고 보장이 없어요.

그러니깐 자기네들이 4년간 의정활동 열심히 했는데 공천 안되면 입후보를 못하지요. 그러니깐 한화갑이 니가 나서서 우리랑 손잡고 민주당 재건하자 이겁니다.

나한테 엄청난 압력이 와요. 그런데 내가 거기에 그렇게 하자는 말을 안합니다. 못합니다. 이제 나는 그런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면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도 내가 할 일중 하나에요. 그렇지만 정치는 쌍리공생이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한화갑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정말 급하니 우리를 구제해달라는 겁니다.

내가 작년 4월에 광주 간 것은 정상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저는 정치인으로 입후보해서 낙선 해본 적이 없었어요. 김대중 대통령 모시고 공천이나 당선 걱정해 본 적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어떤 지도자도 낙선경험이 없는 정치인이 없어요. 저한테는 이게 약인 겁니다. 엉뚱한 판단을 한 건 사실이지만, 패배를 경험한 건 앞으로 정치 방향 설계하는데 엄청난 플러스입니다.

저도 이제 주위 사람에게 기여하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기여하는 건 큰 기여가 아니에요. 그래서 정당 만들자는 말을 안해요.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이야기 했어요. 나는 지금의 민주당에 들어가야 겠다고

김 : 그 때 광주에서 처음으로 조직의 쓴맛을 봤다 그런 말을 했는데 그 말 뜻이 그런 뜻입니까?

한 : 나는 내가 전라도 사람으로서 전라도 사람들의 명예 소신 지조 이것을 대변해왔다고 자부합니다.

또 김대중 대통령을 만드는 것을 평생 과업으로 해서 성공했기 때문에 전라도 위상이나 차별철폐에도 보탬을 줬다고 생각해요

광주는 전라도의 수도입니다. 내가 광주에서 한번 평가를 받아보자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가 물정을 몰랐구나. 후회하고 돌아왔죠.

어쨌든 광주가면 그래도 나를 알아 줄 것이다, 인정해 줄 것이다, 이게 못난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광주 간 것은 내가 광주 민주화운동 국가유공자입니다.

죽으면 망월동 묘지에 내 자리가 있어요. 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망월동을 내 고향으로 정하고 간 것입니다.

Ⅳ. DJ, 노무현에 대한 회고, 그리고 남은 정치적 가치

나의 모든 정치적 자산은 DJ의 덕택

대통령 dj와 한 대표
김 : 대표님께서 김대중과 정치인생을 같이 해오시면서 성장하시고 이제는 본인 정치하시는데 좀 소회 몇 마디를 하신 다면 어떻습니까?

한 : 오늘 제가 있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김대중과 함께한 저의 수난은 전부 제 정치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감옥가고 반체제 인사라고 수난 받고 전부 제 재산이 됐어요. 그리고 심지어 국립묘지에 묻힐 권한 권리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묘소 이것을 자식들보고 돌봐달라고 할 필요가 없어요. 사실 특권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공천에 있어서 걱정해본적도 없었지요.

이것이 모두 김대중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대통령을 모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지요. 오늘날 한화갑 나의 모든 정치적 자산은 김대중 대통령의 덕택입니다.

김 : 그리고 대표님께서 지난 2002년에 인터뷰한 걸 보니깐 동교동내에서도 구파와 신파가 있고, 자신은 리틀 김대중라고 해서 국민의 정부시절에 모든 영화를 누렸다고 국민들은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한 대표께서 동교동 내에서도 사실은 조직이나 자금이나 이런데서 오히려 소외되어 왔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동교동의 역사와 함께 설명을 부탁합니다.

한: 지금 생각해보면 짧은 생각이고. 지혜롭지 못한 표현이었어요. 그 때 그런 말들이 있어서... 그렇지만 사실입니다.

난 김대중 대통령한테 정치자금 이런 거 1원짜리 한 장 만져본 적 없고, 그러고 집권해가지고도 내가 누구를 대통령한테 청와대나 내각의 자리 추천해본 적 없고, 내 친동생이 둘이서 초등학교 교사하다 놀고 있어도 취직도 못시켜줬어요.

동교동 출신이라고 해서 무슨 일이 있으면 모여서 토의하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나를 부르더니 나중에는 나한테는 연락도 없었어요.

김 : 그동안 당에서 많은 중책을 맡으시지 않으셨습니까?

한 : 근데 제가요. 원내총무할때는 대통령의 배려가 있었고 사무총장도 그렇고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고위원 선거에 나올때 제가 대통령한테 ‘제가 나가겠습니다’ 라고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바로 나와요. 그리고 대표경선 나왔을 때도 제가 나와요. 대통령 승낙 받고 이런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저 사람은 지가 맘대로 하는 거야 그랬어요.

김 : 최근에 권노갑 고문하고는 자주 연락 하시고 그렇습니까?
한 : 권고문하고는 오늘 점심도 같이 했습니다. 건강합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권노갑 고문은 한화갑을 견제하는 것 같았고, 권고문 입장에서는 한화갑은 자기 고집대로만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내가 처세를 위해서 권고문과 잘지냈다면 좀 달라졌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어요.

김 : 김홍일의원과 자주 통화하시던데
한 : 요즘 통화를 못했습니다. 김홍일 의원 문병을 갈 생각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한화갑이 탈동교동하려고 한다고 말하고 다닌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시절이 좋아서 잘나갈 때는 모두 동교동이라 하고, 시절이 어려울 때는 동교동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난 잘되도 못되도 동교동입니다. 나는 시작도 끝도 동교동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한화갑이 말하는 신화가 된 노무현식 정치

김 : 일전에 정치는 노무현식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한 : 그건 내가 했어요. 노무현식 정치는 맨손을 가지고 후보가 된 것을 말한 것이에요. 남한강 연수원에 가서 한 말로 기억을 해요.

노무현처럼 해서 대선후보가 된 것은 노무현이 처음이에요. 처음부터 가능성이 있고 계보를 가지고 한 게 아니라

혼자 뛰어들어서 전국 바람을 일으키고, 결국 대선 후보가 된 것입니다. 노무현이 처음 시도해서 성공한 과정이었습니다.

김 : 그 이후에 노무현식 정치를 하셨습니까?

한 : 못했죠.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노사모와 같은 다른 방식의 조직적 접근도 있으며, 활동 자금이 뒷받침이 됐던 거라 봅니다.

김 : 활동자금부분에서 대표님께서 조사까지 주장하신 적이 있지 않았나요?

한 : 그건 그 때 내가 정치자금법에 기소를 당하여 나 역시 방어차원에서 압력을 넣는다는 표현이었지 나의 속뜻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김 : 어떻습니까? 이번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

한 : 저는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좋은 점을 말하고 싶어요.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봉화마을 갔을 때 대한민국 역대 정권 중에서 정체성을 시작부터 끝까지 가지고 쭉 지켜왔던 정권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집권했을 때 5공 사람이 비서실장 하고 국정원장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노무현 주변사람들은 청와대 들어갈 때 그 사단을 데리고 들어가서 끝날 때도 같이 나왔어요.

봉하마을 장례식장도 가보면 전부 그 사람들이 와서 있는 거에요.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한국적 의리를 지킨 거다. 정체성을 지킨 거다 라고 보는 거죠.

그리고 나는 노무현이 신화라고 표현했어요. 좋게 표현해서 다른 대통령이 없는 것이 있다. 첫째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그 역경을 딛고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에 약자 편이었고, 가난한 사람 편에서 일해 왔습니다. 죽어서도 많은 사람들의 애도를 받고 노무현이 처음 아니냐, 노무현 신화로 표현을 하자 라고 제가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김 : 친노신당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십니까.

한 : 신당이 출범하지 않아서 확실한 거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관계를 가지고 논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성공하면 역사적 필연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잘못된 판단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모르는 겁니다.

통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김 : 한 대표는 외교문제나 통일문제에 대해서 DJ에 비견하는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고착 우려되는 것이 많은데 대표께서 생각하시는 방향이거나? 지금 남북문제 현황과 관련해서

한 :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그것이 바로 기본 마그나카르타(13세기영국헌법의 기초) 같은 정책입니다.

저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 아니면 통일을 이루는 데 전쟁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세계는 국익위주로 나가고 있습니다. 국익을 위해서 민족이익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북한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나아갈 수도 없어요.

우리의 최대의 과제는 남북문제 해결입니다. 통일이 최대의 과제가 아닙니다. 통일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통일은 우리가 더 잘살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최대과제가 우리 남북문제 해결입니다.

우리가 무역으로 먹고 사는데 수출입을 하는 것이 바다와 공중으로 밖에 못 합니다
그러니까 물류비용이 많이 들어요. 육지로 이용하는 것은 북한을 관통하지 않으면 단 한 뼘도 못 갑니다.

우리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북한과 협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5자회담이니 뭐니 하며 북한을 압력해서 안 되는 겁니다. 미국 등 뒤에 서서 북한을 향해 야~너 이런 빽 같은 게 있어 하는 식은 안 됩니다.

미국이 북한하고 수교하는 건 미국의 이익때문이지 우리 민족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일본이 지금 북한하고 수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처럼 남북대결구도로 가면 결국 한국이 닭 쫓던 개의 처지가 될 염려가 있습니다.

북한에 돈을 퍼줬다고 하는데 미국도 중유도 주고 식량도 주고 주자나요. 미국시민이 공짜로 줬는데도 퍼줬다고 합니까? 그런 건 없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것을 느껴야 됩니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교류하면 그것이 경제통합 아닙니까? 언어가 문자가 등 똑같은 문화적 배경을 활용해서 통합의 과정을 자꾸 넓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가 남북교류를 차단하는데 이것은 큰 룰을 범하는 것입니다. 남북문제는 지금이라도 빨리 선회해서 햇볕정책을 중심으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약속한 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남한 사람의 돈벌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전환이 빨리 올수록 좋습니다.

한화갑의 三和주의

한 : 김대중 대통령 모시고 터득한 정치적인 사상과 철학 이것을 어떻게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느냐 이것이 저의 과제입니다. 이것은 제가 꼭 무엇이 돼야 하는 건 아닙니다.

지금 현재의 우리 과제에 대해서 제가 거창하게 삼화주의를 주장했었어요.

제가 2000년도 책에도 썼습니다. 국민화합은 동서화합이고 민족화합은 남북통일이고 세계화합은 세계평화입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제 이름을 갖고 한국에서 화합으로 으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새는 내가 뱃지를 만들려고 그래요. 한마음으로 화합하여 갑시다 라는 문구를 넣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배우고 터득한 것을, 그분의 철학과 정치사상을 확대발전시키고 우리 국민들에게 그것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역사의 주역이 못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역사에 기여했다는 말을 듣지 않겠느냐 이것이 앞으로의 제 과제입니다.


정치의 요체란 ‘가난을 구제하는 것'

dj서거 전 병문안을 온 한 대표
김 : 끝으로 한화갑의 정치는 무엇이며, 네티즌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 정치의 요체는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정치의 요체는 간단해요
잘사는 사람에게는 잘사는 거 간섭하지 말고 못사는 사람은 잘살게 이끌어 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주고 어떤 사람은 작게 주는 게 아니라 공정하게 하면 됩니다.

옛날에는 가난을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지금은 국가가 가난을 구제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정치가 최고의 정치입니다. 부자는 가만히 나둬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에 가만히 나둬도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국가가 구제하여 가난을 없애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정치입니다.

네티즌 여러분
저도 컴퓨터를 가까이 하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좋은 제안이 있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고 있습니다. 100세까지 사는 시대도 금방 옵니다. 이제는 누가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올바르게 사느냐 그런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네티즌 여러분이 건전하게 성장해야 대한민국의 장래가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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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일 보궐선거가 23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故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성산’을 놓고 자유한국당과 정의당 간의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내달 3일 치러지는 보궐선거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의미는 남다르게 작용한다. 故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성산’의 경우 더욱 그렇다. 정의당에 ‘창원·성산’은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인 만큼 반드시 사수해야한다는 사명감과 함께 평화·정의 교섭단체를 다시 꾸릴 수 있는 중요한 1석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당에게 이번 선거는 황교안 대표 체제의 첫 과제이자 첫 성적표다. 때문에 황 대표 역시 최근 일정을 ‘창원·성산’에 몰입하며 성과내기에 나섰다. ▲황교안, 첫 성적표 ‘창원·성산’ 황 대표는 11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두산중공업 후문에서 4·3 보궐선거 창원·성산 강기윤 예비후보와 함께 출근길 인사에 나서며 표심 모으기에 나섰다. 황 대표는 이날 “규모는 크지 않지만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실정과 민생 파탄, 안보 불안을 심판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그는 취임 후 첫 현장 최고위원회를 경남 창원 경남도당 사무실에서 열고 “우리 한국당이 반드시 두 곳(경


[스페셜인터뷰] 조민① “30년 핵협상 줄다리기 패배…하노이 회담, 북한에겐 참사다”
한반도 평화시대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국 협상 결렬로 성과없이 끝나면서 북한 비핵화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에 <폴리뉴스>는 조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을 모시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 평가와 향후 과제 및 전망을 들어봤다. 조민 원장은 8일 <폴리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본지 김능구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북미협상 결렬에 대해 “북한 입장에서는 하노이 참사“라고 평가했다. 그는 30년에 걸친 북한과 미국의 핵협상에서 “북한이 핵무기 한 방으로 승리하는 듯 했지만, 하노이 결렬로 (승리)문턱에서 넘어지고 말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렬로 미국은 행정부와 여야정치권, 언론 등 모두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소리를 내며 국론통일을 이루었지만, “북한은 내상이 깊다”고 말했다. 이번 협상의 결렬 요인으로는 싱가포르 회담 수준의 합의로는 조야를 설득하기 힘들어진 미 국내정치 상황의 변화와 이를 간파하지 못한 ‘평양팀의 협상전략 실패’를 꼽았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미국이 협상테이블에 올린 ‘북한 비밀 핵시설의 폭로’를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기의 담판이 ‘우발적’ 또는 특정

[카드뉴스] 현대차-카드사, 수수료율 인상 갈등…신한·삼성 등 가맹계약 해지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현대자동차와 카드 수수료율 인상 갈등을 겪은 신한·삼성·롯데카드가 결국 가맹점 계약을 해지 당했다. 현대차는 11일 자사 영업점에 신한·삼성·롯데카드를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고객이 해당 3개사 카드로 결제를 요구하면 거부당한다는 뜻이다. 앞서 대부분의 카드사는 지난 1일 현대차의 카드 수수료율을 현행 1.8%대에서 1.9% 중반대로 0.1∼0.15%포인트 인상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카드수수료 종합개편방안에 따른 조치다. 금융위는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이 주로 대형가맹점에 쓰이는데 이를 중소가맹점과 공동 부담해왔다”며 대형가맹점이 돈을 더 내는 방향으로 수수료 체계를 개편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카드사들이 내놓은 수수료율 인상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동결에 가까운 0.01~0.02%포인트 인상으로 맞섰다. 동시에 카드사들에 가맹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카드사와 현대차 간 협상의 물꼬가 트인 건 지난 10일이다. 현대차가 0.05%포인트 인상으로 한 발 물러서면서 KB국민·현대·하나·NH농협·씨티카드와의 협상이 타결됐다. BC카드도 11일 현대차가 제시한 0.05%포인트 인상, 즉 1.89% 수준의

[카드뉴스] 깊어져만 가는 르노삼성 노사 갈등

[폴리뉴스 김기율 기자] 르노삼성자동차 노사 갈등이 깊어져가고 있습니다. 28일 르노삼성 노조는 민주노총·금속노조와 공동투쟁을 결의했습니다. 노조는 “르노그룹이 ‘기술사용료, 연구비, 용역수수료, 광고 판촉비’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자금을 요구했다”며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무리한 고배당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난해 6월 시작한 르노삼성의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은 해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노사는 16차례 본교섭을 벌였으나 임단협 협상 세부 안건조차도 논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은 부산공장을 직접 방문해 “파업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며 조속한 합의를 촉구했습니다. 도미닉 시뇨라 르노삼성 대표 역시 “3월 8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시한을 언급했습니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해 6월 임단협 협상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42차례에 걸쳐 160시간의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르노삼성 협력사들과 부산상의는 “임단협 지연과 파업으로 협력사와 부산·경남 지역 경제가 모두 타격을 받고 있다”며 르노삼성 노사에 조속한 합의를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이 상황이 계속


전두환, 첫 재판서 혐의 전면 부인...재판관할 이전 신청도
[폴리뉴스 이지혜 인턴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11일 첫 재판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이날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에서 진행된 공판에 출석한 전씨는 변호인,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출석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전씨가 회고록에 허위 내용을 적시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국가기록원 자료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등으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씨의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전씨 측은 특히 조 신부가 주장하는 5월 21일 당시 헬기 사격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5·18 당시 광주에서 기총소사는 없었으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해도 조 신부가 주장하는 시점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면 공소사실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본인의 기억과 국가 기관 기록, (1995년) 검찰 수사 기록을 토대로 확인된 내용을 회고록에 기술했다”고 말하며 전씨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정 변호사는 또 형사소송법 319조를 근거로 재판 관할 이전을 신청하는 의견서도 제출했다. 전씨는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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