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강필수 기자] 학교에 희망이 있을까.

이 책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습관적으로 손목을 긋는 아이가 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아 정신과 약을 먹는 아이도 있다. 몸은 고등학생인데 정신은 유치원생보다 못해 하나하나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섞여 하루 8시간을 생활한다. 아이들이 실내화를 신고 급식실에 들어가게 하는데 교사들은 진을 뺀다.

학교는 교육보다 돌봄의 기능이 강화됐다. 복도와 교실은 늘 평온함과 위태로움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 있다. 그 경계 이쪽저쪽에서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혼자만의 토굴에 자신을 가두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밥조차 혼자 먹는다.

고등학교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중3 학부모들의 관심은 온통 상위 10% 대학뿐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겪는 아이들의 변화와 학교생활에 대한 질문조차 없다. 학창시절을 대학 입학을 위한 통과의례로만 여긴다. 그리고 비가 오면 “선생님, 비가 오니 우리 아이 우산 좀 구해서 씌어 주세요.”라고 전화를 한다. 게다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선생님, 왜 우리 아이가 열심히 했는데 금상이 아니고 동상인 거죠?”라고 따진다.

교육 당국은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온갖 지침과 규정을 만들어 교사의 손발을 옭아맨다. 지침은 규정을 만들고 규정을 지키기 위한 규정을 만든다.

윤영실의 신간 ‘그래도 학교가 희망이다’는 학교의 민낯과 학생들의 아찔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학생·교사·학부모들이 부딪히며 만든 갖가지 사연과 일상을 촘촘한 그물로 건져 올렸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책은 학교 현실에 대한 고발과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은 저자 자신의 변화와 성장이다. 저자는 비판의 시선을 밖이 아닌 자기 안으로 갈무리해 선배와 동료 교사, 그리고 아이들을 보면서 달라진다.

아이들의 자활을 위해 사비를 털어 심부름 교육을 하는 J선생님을 보며 학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녀 가장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동생을 지키는 어린 학생의 집을 다녀온 뒤 ‘공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두 아들의 질풍노도를 겪으며 성장기 아이들의 일탈과 좌충우돌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진다. ‘아이들은 크면서 백번도 더 변한다’고 믿게 된 학부모의 넉넉한 시선까지 얻었다.

책의 백미는 저자의 교육실험에 있다. 수업 시작 10분 만에 거의 모든 학생이 책상 위에 기절하는 모습을 보고 혁신적인 기획을 한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티칭’을 버리고 ‘코칭’으로 수업을 바꿨다. 50분 수업을 10분·15분으로 나눠 과제를 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한 후 확인하게 했다.

능력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옆에 가서 개인지도를 하는 방법으로 참여도도 높였다. 해결이 삐른 학생은 늦은 학생을 돕게 했다. 그 이후 저자의 교실에서 자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급우들 간의 소통과 교감의 시간을 만드는 강강술래 수업, 일명 ‘워킹’ 수업 또한 주목을 끈다. 자는 아이들을 깨우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시도가 뜻밖의 소통 기적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이 같은 교육 실험과 다른 동료 교사들의 치열한 노력을 보며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엄마와의 갈등으로 자퇴를 결심하는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교사, 지각 결석을 줄이기 위한 동료 교사들의 ‘행복 프로젝트’ 추진들을 보면서 그래도 학교가 희망이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성실한 기록으로 학교의 민낯을 드러낸 정직한 보고서이자 비판서다.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선생님들을 보며 변화한 저자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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