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재조정 계기 된 ‘무역전쟁’, 美 방위비 증액요구로 전통적 한미동맹에 금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8월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와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조치에 대응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을 발표했다.
▲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8월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와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조치에 대응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을 발표했다.

2019년 한 해를 달군 외교적 이슈는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로 촉발된 한일 무역전쟁이다. 한국은 이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대응카드로 대응하면서 안보이슈로 확산됐다. 이 와중에 미국은 주한미군 방위금 분담금 증액 요구가 겹치면서 전통적인 한미일 관계는 난맥상에 빠져들었다.

11월 22일 한일 양국은 한일 국장급 무역대화 개시와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결정함으로써 마지막 파국을 막았지만 12월 24일 중국 청두 한일 정상회담에서 ‘대화를 통한 해결’ 원칙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돼 이러한 미봉적인 상황은 내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 한미 방위비 협상도 한국의 반발과 미국 내 여론 악화로 내년으로 협상의 ‘화약고’는 넘어가게 됐다.

일본은 7월 1일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발표했고 같은 달 4일 고순도 불화수소(HF), 포토리지스트(PR), 플루오린폴리이미드(FPI)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단행했다. 그리고 일본은 8월 2일 전략물자 관리 우방국 목록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다고 발표했고 이 개정안은 8월 28일부터 발효됐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수출규제조치에 대해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걸었고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때에는 ‘안보상의 이유’를 들었다. 강제징용을 둘러싼 한일 간의 현안문제를 무역에다 연계시킨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도발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조치를 취했고 8월 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에 대해 “지소미아는 양국간 고도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민감한 군사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것인데, 일본이 이미 한·일 간에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훼손되었다고 하는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유지할 명분이 상실됐다”고 밝혔다.

이렇게 격화된 ‘한일전쟁’으로 국민들은 한일 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관계의 변화를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 무역보복조치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겨냥했지만 6개월이 지난 현 시점까지도 별 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 것이 드러났고 한국경제가 오랜 ‘일본 의존구조’에 벗어나고 있음을 실감했다. 

오히려 일본에 의존하던 소재·장비·부품산업에 대한 국내 생산기반 확충과 수입선 다변화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한국의 ‘기술경쟁력’이 일본에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한일관계도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재조정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됐다. 이에 일본 내에서조차도 ‘실패한 무역보복’이란 평가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것이 미국의 압박과 함께 일본이 11월 22일 한국과의 잠정적인 타협에 나서게 한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 국민들의 자신감은 일본상품 불매운동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부터 6개월 동안 지속된 국민들의 자발적인 불매운동을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조차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한일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욕구의 발현으로 해석됐다. 

일본은 결국 한일 정상회담을 앞둔 12월 20일 일부 규제완화 조치를 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 조치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며 7월 1일 이전으로 원상회복되지 않으면 지소미아 종료를 단행한다는 입장이다. 한일 양국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데 대해 공감하고 있으나 해법을 마련하기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강제징용 문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한국 법원은 개인에 대한 배상은 한일협정과는 별도라고 판결했고 한국 정부는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결국 이에 대한 외교적 접점을 찾아야 한일 갈등도 해결될 수 있다.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 전통적인 한미동맹에 금

한일 무역대화 개시와 지소미아 종료 유예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이 주목된다. 애초 미국은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에 대해 한일 간의 현안이라며 방관자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한국의 8월 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한일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지소미아 종료일인 11월23일이 다가오면서 미국의 한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와 함께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5조7천억원) 증액 압박도 병행했다. 미국은 방위비 증액을 달성하기 위해 ‘지소미아’를 압박수단으로 적극 사용했다.

마크 에스퍼 장관은 11월 15일 한·미 안보협의회(SCM) 양국 국방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는 한·미·일 3국의 효과적인 정보 공유와 안보 협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며 “지소미아 종료로 득을 보는 것은 결국 중국과 북한”이라며 일본 입장을 대변했다. ‘한일전쟁’을 기회로 방위비 협상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복심이었다.

지소미아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열린 11월 19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분담 협상 대표는 회의 10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곧이어 ‘주한미군 감축 내지는 철수’까지 언급하며 한국을 겁박했다. 여기에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여야 의원들을 만나 방위비 인상 압박을 하는 모습까지 드러났다.

그러나 한국의 완강한 태도가 이어지면서 ‘한일 무역대화-지소미아 종료 유예종료’라는 미봉적인 타협책이 나왔다. 또 미국의 무리한 방위비 압박은 한국 내 반발여론을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외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게 하는 배경이 됐다.

결국 내년부터 적용해야 될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 18일 5차 회의까지 진행했지만 협상을 내년으로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의 방위비 5배 인상 요구로 전통적인 한미동맹에 금이 갔다. 미군 주둔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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