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백인 중하류층, 이민자 문제 등 세계화 불만으로 브렉시트 지지
'어메리카 퍼스트' 트럼프 지지하는 미국 백인 중하류층도 같은 정서
영국 하원, EU 탈퇴 협정 통과 눈앞
스코틀랜드 독립 가능성 상승…’하나의 영국‘ 깨지나
브렉시트 나비효과, 정치적으로 강하나 경제적으로는 제한적

<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Get Brexit Done”

지난 12일 보수당의 대승으로 끝난 영국 총선의 화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브렉시트(Brexit)였다. 브렉시트란 영국을 뜻하는 Britain과 탈퇴를 뜻하는 Exit의 합성어다.

브렉시트는 2016년 6월 하원에서 가결됐지만, 영국 정치권에서의 여러 알력 다툼 끝에 시행이 계속 미뤄졌다. 이에 영국 정치권의 총체적 마비 상태인 ‘브렉시트 정국’을 끝내라는 영국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 이는 2019년 12월12일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하원 과반 기준(326석)을 훌쩍 넘는 365석을 확보하는 보수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지난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비슷하게, 브렉시트 추진을 대표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의 대승은 런던 외 지역 및 경제적으로 중하류층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의 지지 덕에 이뤄진 승리였다. 사회적 계급에 따른 투표가 공고화 돼 있는 영국에서 원래는 노동당을 지지했었던 경제적으로 중하류층에 속하는 유권자들이 보수당을 대거 택한 것이다. 흔히 말하는 ‘계급배반 투표“가 이뤄졌다.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 인구의 50% 정도에 해당하는 백인 중하류층들 사이에서 누적돼 온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분석된다. 온건한 국가주의 성향으로, 대규모 이주민들과 그들로 인한 경제‧문화생활상의 큰 변화에 큰 불편함을 느꼈던 영국의 백인 중하류층 유권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하지 않은 형태의 개방만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요구사항은 EU체제를 통한 세계화 기간 동안 번번히 좌절돼 왔고, 브렉시트 투표와 이번 총선으로 크게 표출된 것이다.

이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유사하다. 복지 정책의 수혜자가 돼야 할 중하류층인 미국 백인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뺏앗아간다고 여기는 이민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진보좌파를 외면한 것이 비슷하다. 그들은 또한 높은 EU분담금에 대한 불만으로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주의적 성격이 강한 브렉시트와 이를 추진하는 보수당을 지지했는데, 이는 타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을 줄이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America First’ 노선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과거 노동당을 지지하는 경제적 좌파와 보수당을 지지하는 경제적 우파로 나뉘어 있었던 영국 정치의 구조가 세계화 및 이민자들에 대한 개방 대 폐쇄라는 조건으로 상당수 대체되면서 영국의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어 가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올해 1월 새로 창당돼 제법 인기를 끌고 있는 ’브렉시트당‘은 영국 의회 내에는 의석이 없지만 유럽 의회 내에는 8석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브렉시트 문제의 일단락이 보수적 유권자들 사이에서 여론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보수당, EU 탈퇴협정 법안 개정으로 브렉시트 강력 추진

이러한 영국인들의 민심을 확인한 보수당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오는 2020년 말에는 브렉시트가 반드시 이뤄지도록 하는 EU 탈퇴협정 법안의 개정을 추진했다.

해당 법안은 브렉시트 전환기간을 2020년 12월 31일로 두고, EU에 연장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어떠한 연장 요청에도 정부가 동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 또한 포함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EU 탈퇴가 지연질 수 있다는 우려를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그렇게 영국 하원은 20일 하원에 상정된 EU 탈퇴협정 법안의 제2독회 표결에서 찬성 358표, 반대 234표로 EU 탈퇴협정 법안을 가결 통과시켰다. 현재 보수당 의석이 야당 모든 의석수를 합한 것보다도 80석이 많다는 점에서 가결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보다 더 큰 표차를 기록하면서 무난하게 통과됐다.

영국의 법안 심사과정은 3독회제를 기본으로 하는데, 제2독회를 통과했다는 것은 하원이 법안의 전반적 원칙을 승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U 탈퇴협정 법안의 최종 통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브렉시트 긍정하는 영국 중장년층…청년층, 브렉시트 반대가 우세

한편 보수당의 대승과 그에 따른 브렉시트의 본격 추진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보수당 지지율과 브렉시트 찬성 비율이 높은 영국의 중장년층들은 브렉시트가 미뤄진 것이 답답했다며, EU의 통제가 불편했기에 탈퇴의 대가를 치르겠지만 그래도 가야 할 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동당 지지 비율이 높았던 영국의 청년층들은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여론이 우세했다.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인 EU에서 떠나면 관세동맹, 면세 등 여러 금전적 혜택이 사라지고, 글로벌 기업들의 철수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생필품 물가 인상과 같은 단점을 꼽는 경우도 있었다.

스코틀랜드 정부, 분리독립 주민투표 개최 요구…’하나의 영국‘ 깨지나

’하나의 영국‘ 유지여부도 큰 관심사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영국이 쪼개질 수 있다는 우려가 영국인들 사이에서 크다. 실제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19일 영국 중앙정부에 분리독립 주민투표의 개최 권한을 공식 요구한 상태다.

스코틀랜드 국민당(SNP) 대표인 니콜라 스터 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총리는 ”스코틀랜드국민당의 승리는 독립을 위한 새로운 주민투표 실시라는 사명을 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스코틀랜드는 2014년 분리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반대 55.3%, 찬성 44.7%로 부결됐다. 그러나 브렉시트 결정 이후 스코틀랜드에서는 EU 잔류가 경제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분리 독립을 찬성해온 SNP가 이번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59개 지역구에서 48석을 차지한 것도 이런 여론이 반영된 결과라 해석된다.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의 통합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교류나 통행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통일 요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의 영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브렉시트로 인해 촉발된 스코틀랜드의 독립요구와 EU 잔류 주장은 EU에도 골치 아픈 문제가 될 것이다. 용인할 경우 스코틀랜드를 완전한 독립국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스페인에서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카탈루냐의 선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스페인의 반발도 각오해야 한다. 벨기에의 플랑드르, 이탈리아의 밀라노 등지의 독립 요구 또한 촉발할 수 있기에, ’브렉시트 나비효과‘는 당분간 유럽을 크게 휩쓸 것으로 예상된다.

브렉시트 경제적 영향, 제한적으로 나타나

다만, 브렉시트의 경제적 나비효과는 상당히 축소된 모양새다. 브렉시트 첫 가결 당시 세계 증시가 크게 움직였던 것과 달리, 이번 보수당의 대승과 브렉시트 추진은 한국 증시 및 세계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로는 브렉시트 이슈가 장기화하면서 민감도가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시장에 리스크 오프 재료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브렉시트 일정의 불확실성이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권시장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내년 말까지인 브렉시트 전환 기간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힌 부분에 주목하면서 이벤트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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