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180석, 가보지 않은 길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 부터 이인영 원내대표, 이해찬, 박주민 최고위원. 2020.4.20
▲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 부터 이인영 원내대표, 이해찬, 박주민 최고위원. 2020.4.20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의석수를 합해서 180석이 되었다. 1987년 개헌 이래 처음있는 대사건이다. 오죽하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감격했을까. 21대 국회에서 여당은 개헌을 빼고는 거의 모든 일들을 뜻대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야당이 아무리 반대하는 법안이라도 패스트트랙으로 길어도 330일 이내에는 통과시킬 수 있게 되었다. 국무총리,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에 대한 국회 임명 동의안도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물론 예산안도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야당의 반대 때문에 못하는 일은 사실상 없게 된 것이다. 과거 1987년 이전에는 국회가  ‘통법부’ (通法府) 소리를 듣던 시대가 있었지만, 진보적 성격을 가진 여당의 판단에 따라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해진 상황은 헌정사에 처음있는 혁명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처음 맞는 환경이기에 앞으로 국회가 어떤 모습으로 운영될지 좀처럼 구체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게 사실이다. 과연 여당은 180석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야당의 견제가 무력화된 국회는 어떤 모습으로 평가받게 될 것인지, 이러한 국회는 우리 사회 각 분야 법과 제도의 얼마만한 변화로 연결될 것인지, 앞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지켜봐야 가늠이 되는 궁금증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여당은 야당의 반대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국회를 운영하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호시절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앞으로는 국정의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정부와 여당이 져야하는 무거운 책임을 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에 무엇을 못했다는 변명은 더 이상 성립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180석 여당은, 아니 집권세력 전체는 본격적인 능력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일단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능력을 인정받는 새로운 출발을 했다. “보수는 부패하지만 유능하고, 진보는 깨끗하지만 무능하다”는 말이 있었다. 부패와 깨끗함에 대한 평가는 논쟁이 따를 수 있으니 논외로 하고, 21대 총선은 ‘보수=유능, 진보=무능’의 관념을 깬 선거로 기록될 만하다. 여당이 압승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처 능력이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은 상황이었다. 집권 이후 경제 불황이 지속되면서 국정의 성과가 뚜렷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능력에 불신도 많이 대두되었지만,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코로나 대처 능력은 이를 일거에 반전시켰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단계로 들어간다.  '코로나 방역'에 이어 '코로나 경제'라는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시기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무엇보다 혹독한 경제환경에 처한 국민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절박한 과업을 부여받고 있다. 이런 마당에 여당이 국회에서 챙겨야 할 국정의 우선 순위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잘 정해나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21대 국회 초부터 자칫 정치적 대결이 재연되어 민생과 직결된 문제들이 뒤로 뒷전으로 가버리는 일은 없도록 여당의 지혜로운 유연함이 요구된다. 21대 국회의 임기가 4년이니, 많은 개혁과제들의 경중과 완급을 조급하지 않게 잘 판단하며 조절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 점은 이미 민주당 지도부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대표는 “우리는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며, 이낙연 전 총리도 “그때(열린우리당 때)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면서 다시는 오만으로 인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단독 과반을 확보했지만, 4대 개혁 입법 추진 과정에서 선명성만 내세운 강경파들의 여야 합의 반발로 모두 무산되고 순식간에 당이 추락하여 돌이킬 수 없던 기억이 있다.

이번 총선의 지역구 투표에서 정당별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이 49.9%, 미래통합당이 41.5%이다. 180대 103이라는 의석 차이에 비하면 막상 득표율 차이는 그렇게 압도적인 것은 되지 못한다. 미래통합당의 잇따른 자멸 행태에 등을 돌리고 여당을 지지한 중도성향 부동층의 태도 변화에 따라서는 언제든 다시 승자와 패자가 뒤바뀔 수도 있는 정도의 격차이다. 21대 총선이 만든 1.5당 체제는 이제 진보가 주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얘기들을 하지만,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는 언제나 가변적인 것이기에 불변의 것은 되지 못한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국민이 갖고 있는 여러 생각까지도 헤아리며 국정을 운영하는 절제된 포용력이 여당에게는 필요하다.

민주당, 아니 한국정치는 가 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그 길에서 야당의 반대가 심했을 때보다 더 낫더라는 국민의 평가가 있을 때 진보 우위의 정치지형은 안정적으로 정착될 것이다. 반대로 야당의 견제가 없으니 결국에는 더 나빠지더라는 평가를 받을 때 이내 정치지형은 반전될 것이다. 16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180석 여당이 국민의 마음을 다시 잃지않는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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