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 이후 해외진출 여건 불안
한국, 한일 무역분쟁에서 국산화 승리 경험
코로나 장기화로 국내 생산 절실
리쇼어링 빌미, 법인세율 인하 요구일수도

[폴리뉴스 박상주 기자]코로나19 이후 제조업 기반 국가를 중심으로 리쇼어링(reshoring, 제조기업의 본국 회귀)이 부각되고 있다. 리쇼어링은 낮은 비용, 넓은 시장을 쫒아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댓말이다. 떠났던 기업이 본국으로 복귀한단 것으로 한국에선 ‘기업 U턴'이 같은 의미로 쓰였다.

바이러스가 전대미문으로 전세계에 확대되면서 세계 각국이 빗장을 걸어잠그면서 부터다.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던 중국이 수개월째 봉쇄되면서 중국에 공장을 둔 글로벌 제조업체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한국도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주력사업부문에서 공급 차질을 빚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에서 본격화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리쇼어링에 대한 논의는 시작됐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중간 무역 분쟁 양상이 시작됐다. 이로 인해 글로벌 공급체인이 끊어질 조짐을 보이자 주요 산업국이 리쇼어링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자유무역 시대가 저물고 과거처럼 무역 장벽이 높아지면 중국에 부품 생산을 의존하기 힘들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중국의 빠른 성장세도 주요 산업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중국이 더이상 패스트팔로워가 아닐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제조업 전 분야에 걸쳐 중국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 등을 통해 패스트무버를 자처하고 있다. 중국이 더이상 부품 생산기지 수준에 머물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에서 부품을 받으려던 기업에겐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자국 산업 보호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며 해외에 나간 기업의 국내 복귀를 장려하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법인세 실효세율 인하와 함께 입지규제 완화 등을 카드로 내밀어 자국에 공장이 남거나 해외에 진출한 자국기업이 돌아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 일 무역분쟁이후 국산화 절감

세계적인 자국 산업 보호주의 상황에서 한국 역시 리쇼어링 필요성을 절감한 바 있다.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 분쟁을 겪으며 핵심 품목에 대한 국산화 중요성을 경험한 것이다. 지난해 7월 4일 일본 정부는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동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일본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신속히 국산화하면서 무역 분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선 경험이 있다. 과거처럼 일본으로 부터 부품을 공급받아야만 제조를 할 수 있다는 게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코로나19는 자국 산업 보호주의를 가속화하고 있다. 당초 잠시 지나치는 유행병정도로 예상했지만 1분기를 넘기며 장기화 국면에 들어갔다. 인력과 물자 이동이 중단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실제 툭툭 끊어지고 있다.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더라도 엔지니어 등 기술 인력이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생산이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상당기간 동안 국경이 폐쇄되면서 기존 부품의 품질 저하, 신규 제품 양산 중단 등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산업국은 포스트코로나 이후 다시 글로벌 공급체인이 복구될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은 계속될 것이고, 미국과 일본 등이 리쇼어링을 밀어부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자국 산업 보호주의를 검토해볼 시기를 맞고 있다.

공산권 오프쇼어링 단점 경험

오프쇼어링은 지난 30년간 주요 산업국이 경제영토를 키워낸 방식이다. 원정 생산과 동시에 해외 시장을 확보해 현지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인건비와 지대를 줄여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개발도상국이 주는 파격적인 혜택과 정책자금, 낮은 법인세 등으로 부수적인 이익도 누릴 수 있다. 

장기화 양상을 보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오프쇼어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보다 급변하는 해외 변수의 악영향을 차단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된 것이다. 각국 오프쇼어링 비중이 큰 중국과 베트남 등 공산권 국가가 코로나19 시즌에 적극적인 보호주의를 드러낸 것이다.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정책 수단을 활용해 일시에 제어한 것이다. 경제학적 조절기능에 익숙한 산업국으로선 공산권 국가에 공장을 두기 불안한 상황이다.

떨어지는 고용률도 정부로선 부담이 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해외에 있는 한국 기업 중 5.6%만 리쇼어링 하면 국내에 일자리 13만개가 창출된다. 코로나19로 세입은 줄고 세출은 커지고 있는데, 리쇼어링으로 한국 기업의 법인세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제9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 겸 정책점검회의 주재하는 김용범 차관<사진=연합뉴스>
▲ 제9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 겸 정책점검회의 주재하는 김용범 차관<사진=연합뉴스>

정부도 리쇼어링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8일 "세계 공급망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리쇼어링도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제9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 겸 정책점검회의'에서 "글로벌 가치사슬(GVC)의 고리가 약화되면서 중간재 공급을 특정국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완제품 생산과 공급이 더 어려워지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재고를 최소화하는 적시생산(just in time) 전략보다 재고를 비축하는 비상대비(just in case) 전략이 중요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쇼어링 계기로 기업환경 변화 목소리

기업들도 리쇼어링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하지만 덮석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법인세율을 떨어뜨려 국내 회귀를 유도하는데 한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지방세을 포함해 27.5%로 올렸다. 국내에 들어오면 내야할 세금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2018년 동안 국내로 복귀한 한국기업은 연평균 10.4곳이다. 같은 기간 미국 482.2곳에 비하면 극히 적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물류비와 지대는 부담이 크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노동유연성은 떨어지는 것도 리쇼어링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리쇼어링을 계기로 국내 기업 환경을 국제적 환경과 비교해 ‘친기업'화 해야 한단 목소리도 있다. 해외 공장을 접고 국내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적극적인 유인책을 만들어 달란 얘기다. 노동유연화나 최저임금, 법인세율 등에서 정책 기조가 달라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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