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 연설 전문을 기사로 접했다. 코로나 19방역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정부의 자부심이 짙게 깔려있는 연설이었다.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 선방했음을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도 알겠고,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연설이 공중에 떠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다.

연설문에는 우리가 세계 최고임을 자랑하는 표현들이 쉬지 않고 반복해서 등장한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입니다.”

“이미 우리는 방역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방역과 보건의료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했습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확실한 '방역 1등 국가'가 되겠습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길을 열어나가겠습니다.”

“우리는 ICT 분야에서 우수한 인프라와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투명한 생산기지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연설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말들이 나온다.

“우리가 표준이 되고 우리가 세계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를 가장 빠르게 극복한 나라가 되겠습니다. 세계의 모범이 되고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겠습니다.”

코로나 19 방역을 잘해왔던 것을 인정하는데 조금도 인색할 생각이 없다. 현장에서 고생했던 의료인들, 정부와 방역당국 모두 그동안 불철주야 잘해왔다. 그러니 지금처럼 살아가기가 힘들 때 국민의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 잘했다고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나라라도 된 것처럼  '세계 1등' 식의 요란한 수사를 반복하는 것은 거북하다.

지난 정권들도 '세계 일류 국가'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정치적 수사인가는 익히 경험한 바 있다. ‘세계 1등’이라는 것이 어떤 지표를 객관적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도 모호할 뿐 더러, 중요한 것은 그런 서열적 사고가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코로나 방역이 성공했다고 하루 아침에 국민의 삶의 질이 세계 정상으로 등극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대다수 국민의 삶은 코로나 이전에도 어려웠지만, 코로나를 거치며 더 어려워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극심한 불황이나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방역이 성공했다 해서 자동적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코로나 경제의 긴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게 될 것인가는 아직 장담할 일이 아니다. 코로나 위기가 가져온 어려운 경제상황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말이 힘이 되는 면도 있겠지만, 정작 본질은 고달픈 삶들이 얼마나 개선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말하는데 비중이 두어져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연설이 있기 직전부터 이태원 클럽에서의 집단감염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여주어 긴장을 잔뜩 높이고 있다. 코로나 경제위기의 터널도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미래 담론을 말하는 학자들이야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겠지만 대통령과 정부에게 코로나 위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장미빛의 포스트 코로나 대한민국을 말하기에는 아직 우리가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우리가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려고 더 많이 노력할 수록 우리는 희망에 덜 의존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더 많이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두려움은 물론이지만, 희망조차도 인식의 부족, 정신의 무능력의 징표이며, 따라서 우리는 희망을 줄이고 보다 이성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스피노자는 한다. 지금같이 힘들고 어려울 때 듣는 포스트 코로나 희망의 담론은 용기를 줄 수도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벌어지면 만들어진 가짜 희망으로 끝날 수도 있다.  우리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돌아보게 만든 코로나의 이후를 말하면서 다시 '세계 1등' 담론으로 돌아가는 광경은 어쩐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