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강제해산하고 ‘성경’ 퍼포먼스
오바마·부시·바이든·펠로시 등 트럼프 비판

시위대와 대치하는 미국 경찰과 주방위군 <사진-연합뉴스>
▲ 시위대와 대치하는 미국 경찰과 주방위군 <사진-연합뉴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 가운데 '인종차별 플로이드 시위'까지 격화되면서 미 전역이 혼란에 빠진 모양새다. 

플로이드는 지난 25일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 데릭 쇼빈 경관의 무릎에 8분 46초간 목이 짓눌려 사망했다. 플로이드는 당시 비무장 상태였으며,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음하는 플로이드의 모습이 당신 동영상이 공개되자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28일(현지시간) AP 통신 등에 따르면 플로이드가 사망한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도심에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운집했고, 이들은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성난 군중은 대형마트의 상점 유리창을 부수고 물건을 약탈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0여건의 방화도 일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시위대를 ‘폭력배(Thugs)’로 규정하고 약탈이 일어나면 군대를 동원해 총격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미네소타에는 500명의 주 방위군이 배치됐다.

 미국 수도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경찰이 화재 발생 현장 주변에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  미국 수도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경찰이 화재 발생 현장 주변에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29일에는 백악관 앞에서 수백명이 시위를 벌였다. 지난 31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시위대가 백악관 앞으로 모여들자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아들 배런과 함께 지하벙커로 불리는 긴급상황실(EOC)로 이동해 1시간 가량 머무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초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다. 그는 폭력 시위와 약탈을 단속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연방 자산과 민간인, 군대를 동원할 것”이라며 워싱턴DC에 군대를 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AP 통신은 당시 5개 주에서 600~800명의 주 방위군이 워싱턴 DC로 보내졌으며, 이미 현장에 도착했거나 이날 밤 12시까지는 모두 도착할 것이라는 보도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전국의 주지사들에게 주 방위군을 배치하라고 촉구하면서 이를 거부할 경우 대통령 직권으로 군대를 배치해 이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 이후 야외 회견장인 로즈가든에서 퇴장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윌리엄 바 법무장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함께 백악관 북측 라파예트 공원 건너편에 있는 세인트 존스 교회 앞까지 걸어갔다.

세인트 존스 교회는 1815년 지어졌으며, 미국 4대 대통령 이래 모든 대통령이 이곳에서 한 차례 이상 예배에 참석해 ‘대통령의 교회’라고 불리는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회 앞에서 성경을 들고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그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뒤 다시 걸어 백악관으로 복귀했다.

한편 경찰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견을 마치기 전 모인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진압 방침을 밝힌 후 당국은 워싱턴DC에 주 방위군 병력 투입을 늘렸다. 로이터 통신의 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조지프 렝겔 주방위군 사령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인디애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주에 있던 1500명의 주 방위군 병력이 워싱턴 DC에 추가 투입된다고 밝혔다.

주 방위군에 따르면 워싱턴 DC에서 일어난 항의시위에 주방위군 1300명이 투입됐고, 전날 밤에는 유타와 뉴저지주 병력 일부도 합류했다.

2일(현지시간) 기준 8일째로 접어든 미 전역의 시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 CNN 등에 따르면 수천명의 시위대가 국회의사당 잔디밭과 링컨 기념관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CBS 뉴스의 1일 보도에 따르면 플로이드 사건 항의 시위로 체포된 사람은 미국 43개 도시에서 7200명 이상이다. 

시위가 격화되고 약탈·폭력 행위 등이 이어지자 주요 도시들은 야간 통행금지 조치를 도입했다. 뉴욕 주는 밤 8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적용되는 통금령을 연이틀째 실시했으며, LA카운티는 1일부터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통행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시위에 수천명의 군중들이 모이면서 코로나19 대량발병 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제롬 애덤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 단장은 1일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개인적·제도적 인종차별주의가 가져올 공중보건상 파급 효과와, 사람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지역사회에 해로운 방식으로 밖에 나와 시위하는 것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전파되는 양상에 비춰볼 때 앞으로 우리가 새로운 집단감염 또는 새로운 대규모 발병 사태를 보리라고 예상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근처 교회를 찾아 성경을 들고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 백악관 근처 교회를 찾아 성경을 들고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민주당 인사들-부시까지 트럼프 우려

트럼프의 초강경 대응·극단적 언행에 미국 민주당 인사들 분만 아니라 같은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우려를 표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한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전국에 걸친 시위의 물결은 경찰의 관행 및 보다 광범위한 미국의 사법 제도 개혁이 수십년간 실패한 데 대한 진실하고 정당한 좌절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두둔했다.

미 언론들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참석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평화롭고 용감하며 책임감이 있고 고무적이었다”며 “그들은 비난이 아니라 우리의 존경과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오바마 전 대통령은 플로이드 사건에 분노하는 이들에게 주·지역 선거에서 제대로 투표해 사법 제도의 개혁 등을 압박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인종주의가 우리 사회를 좀먹는 역할을 하는 데 대해 인지하고 그와 관련해 무언가를 하기 원하는 대통령과 의회, 법무부, 연방 사법부를 확실히 갖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워온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2일 미 의회에서 취재진 앞에 성경을 들고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경 퍼포먼스’를 저격한 것이다.

CNN방송 등에 따르면 펠로시 하원의장은 ‘범사에 때가 있어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는 내용인 전도서 3장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미국의 대통령이 불길을 부채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치유의 사령관이었던 많은 전임자의 뒤를 따르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라이벌인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은 2일 연설을 통해 미국의 인종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일 필라델피아 시청을 방문해 20분간 진행한 연설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숨 쉴 수 없다”는 발언을 언급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랜 원망과 새로운 공포로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었다”며 그가 최루탄을 이용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고 성경 퍼포먼스를 보인 것을 맹비난했다. 또 경찰관이 피의자를 체포할 때 목을 조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 등을 언급하면서 “의회는 당장 경찰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이전 가장 최근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부시 전 대통령은 2일 성명을 내고 “시위대가 책임 있는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행진하는 것이 힘”이라며 평화 시위를 지지했다.

그는 “지속되는 정의는 평화적 수단을 통해서만 온다. 약탈은 해방이 아니고 파괴는 진전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 평화가 진정하게 공정한 정의를 요구하는 것도 안다. 법치는 궁극적으로 공정함과 법적 시스템의 합법성에 달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부시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서 구조적인 인종주의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가. 유일한 방법은 상처받고 비통에 잠긴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며 “그 목소리를 침묵시키려 하는 이들은 미국의 의미를, 미국이 어떻게 더 나은 곳이 되는지를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통합과 공감을 강조하면서 ‘강경 대응’ 일변도의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화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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