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피해호소인’에 여가부 “피해자가 맞아“
이해찬 피고발…‘선택적 피해자 중심주의’
진중권 “‘피해호소인’, 2차 가해성 단어”

<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故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의 당사자인 여성 비서에게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정부여당이 써 ‘2차 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여가부가 나서 ‘피해자’ 표현이 맞다고 입장을 밝힌 가운데,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런 상황에도 몇몇 여권 성향의 사회적 유명 인사들이 “진작에 고발 하지 뭐했냐”식의 뜨는 무리한 발언 등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여당‧서울시, ‘피해호소인’ 표현 사용…이해찬 고발당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해당 비서에게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서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으며, 이낙연 민주당 의원 또한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의 말씀을, 특히 피해를 하소연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절규를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피해 고소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피해자’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이는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피해 호소인의 고통과 두려움을 헤아려 ‘피해 호소인’을 비난하는 2차 가해를 중단해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표현했다. ‘성추행 의혹’이나 ‘피해자’ 등의 내용은 발언에 들어 있지 않았다.

사건의 당사자 중 하나인 서울시 또한 15일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직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이를 두고 “해당 직원이 아직 시에 피해를 공식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황 대변인은 “피해 호소인이 여성단체를 통해 입장을 밝혔고, 우리 내부에 공식적으로 조사가 진행되는 시점에선 ‘피해자’라는 용어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의 전례가 있냐고 기자가 묻자 “초유의 사태이기에 이전에는 그런 말을 쓴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정부여당과 서울시가 ‘피해자’ 표현을 삼가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질 당시 윤호중 의원이 ‘피해자’ 단어를 명백히 사용한 것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의혹이 언론에서 보도 된 직후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피해자’라고 호칭했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해찬 대표는 결국 검찰에 고발당했다. 16일 오전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이 대표를 겨냥해 “공개된 장소에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표현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이는 가해자가 누구 편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적 피해자 중심주의’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며 고발장을 대검찰청에 접수했다.

“‘피해호소인’은 2차 가해성 발언”…여가부 “피해자가 맞는 표현”

이를 두고 해당 여성 비서의 변호인을 맡은 김재련 변호사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피해 호소인과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말은 ‘언어의 퇴행’”이라며 정부여당과 서울시의 처사를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2차 가해’로 규정하고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얄팍한 잔머리로 국민을 속이려 하는 아주 저질에 가까운 행태”라고 크게 비난했다.

저명한 여성계 인사인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 또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서울시나 정부 측이 피해호소인이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문제적”이라며 “피해호소인이란 용어는 가해지목인이란 용어와 짝을 이루는 것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들거나 그 수위를 낮추는 효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교수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공식적 기관이 사용하는 것은 피해자 a씨는 물론 앞으로 성폭력 문화에 저항하고자 하는 이들의 용기를 꺽는 행위이자 여전히 가해자들에 대한 끝없는 배려와 고심을 표현하는 용어”라며 “가해자를 가해자로 부르지 않기 위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둔갑시키지 말라”고 밝혔다.

사실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는 2011년 서울대에서 있었던 ‘담배 성폭력’ 사건에서 창조된 용어로, 피해와 가해를 고정하는 이분법 구도를 피하기 위해 ‘피해호소인’ 및 ‘가해지목인’ 등의 말들을 사용한 것이 그 용례의 출발이다. 피해과 가해의 소재를 불분명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논란이 되는 용어로 평가된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16일 브리핑을 통해 “성폭력 방지법등 소관 법률에 따라서 피해 공공지원 받는 분을 피해자라고 보고 있다”며 “고소인도 중립적인 표현이라 보고 쓸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부여당과 서울시가 쓴 ‘피해 호소인’보다는 ‘피해자’라는 표현이 맞는 표현인 셈이다.

여권 지지 인사들, 2차 가해성 발언 쏟아내

한편, 정치인이 아닌 여권 지지 성향의 사회적 유명인사들 마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극렬 여권 지지자 일부가 피해자 여성 비서의 개인 신상을 터는 등 호응하고 있다. 이에 황태순 평론가는 16일 ‘폴리뉴스’와의 통화에서 “현 여권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행태들이 분명 사건 당사자 여성 비서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언론이 이를 철저히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여권 성향으로 알려져 있는 진혜원 부부장검사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이 박 전 시장과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권력형 성범죄를 자수한다. 성인 남성 두 분을 동시에 추행했다”고 썼다. “팔짱 끼는 것도 추행이에요?” “여자가 추행이라고 주장하면 추행이라니까!”라고도 적었다.

이는 ‘성추행 의혹’의 피해자 여성에 대한 명백한 조롱성 발언이기에, 비판 여론이 크게 일고 있다. 진 전 교수는 진 검사를 두고 “진혜원 검사는 피해자를 조롱하는 2차 가해를 했다”며 “더 이상의 폭언을 막기 위해 고소나 고발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진 검사는 여성변호사회에 의해 대검에 징계 촉구 공문이 접수된 상태다. 검사징계법상 징계 사유인 ‘품위 손상’에 해당될 뿐더러 ‘2차 가해’ 성격이 짙다는 취지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출연해 논란이 됐던 여권 성향 팟캐스트 ‘쓰리연고전’에도 출연했을 정도로, 여권 지지 성향이 뚜렷하다고 추정되는 박지희 아나운서는 14일 ‘청정구역 팟캐스트’ 방송에서 피해자 여성 비서를 언급하며 “4년 동안 그러면 대체 뭐를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도 너무 궁금하네요“라고 발언했다.

박 아나운서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아주 싸늘했다. 누리꾼들은 ”그렇게 옹호하고 싶으면 당장 박원순 밑에 가서 본인이 일해라“, ”그 논리대로라면 50년 만에 피해 사실 밝힌 위안부 할머니들은 뭐가 되냐“,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비난 쏟아붓는 일본 극우의 논리다“, ”서지현 검사도 8년 만에 밝혔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YTN라디오에서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를 진행하고 있는 이동형 작가도 1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생방송에서 “미투 사건은 과거 있었던 일을 말 못 해서 밝힌다는 취지로 신상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향해 “피고소인(박 전 시장)은 인생이 끝이 났는데 숨어서 뭐 하는 것인가”라고 요구했다. 또 “(피해자는) 뒤에 숨어 있으면서 무슨 말만 하면 2차 가해라고 한다”면서 “4년씩 어떻게 참았는지도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친여 성향인 사회적 유명인사들이 여성 비서에 대한 비난과 조롱성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두고 진 전 교수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금 문빠들이 피해자에게 하는 짓은, 80년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들이 권인숙 의원에게 했던 짓과 그 본질에서는 똑같다”며 “정권은 바뀌었는데 펼쳐지는 풍경은 하나도 다르지 않으니, 가해자를 비호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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