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하는 집단적 나르시시즘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이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대차법에 대해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이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대차법에 대해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의 '임대차 3법 반대' 연설에 대한 반향이 뜨겁다. "제게 든 생각은 4년 있다가 꼼짝없이 월세로 들어가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며 "이제 더 이상 전세는 없겠구나, 그게 제 고민"이라고 했던 윤 의원의 연설은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을 통해 화제가 되었다. 초선 의원인 그의 이름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유튜브 영상에는 "속이 뻥 뚫린다. 보면서 눈물 났다" "국토교통부 장관 보내야" "레전드 영상" 등의 댓글이 달렸다. 미래통합당 내에서는 장외투쟁을 하지 않고도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내투쟁의 모범으로 일컬어지는 모양이다.

윤 의원의 연설이 반향을 얻는 데는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에 대한 많은 국민의 거부감이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적어도 남의 인생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에 대해 법을 만들 때는 최선을 다해 점검해야 합니다”라는 윤 의원의 말은 그러한 민심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윤 의원은 단지 여당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축조심의과정이 있었다면, 저라면, 임대인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지, 고가 전세의 부자 임차인까지도 보호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지, 근로소득 없이 임대로 생계를 꾸리는 고령 임대인은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 등을 같이 논의했을 것”이라며 자신이 생각했던 대안을 얘기한 것이, 이전까지 통합당 의원들이 보였던 모습과는 다른 것으로 평가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윤 의원의 연설이 많은 공감을 얻으며 화젯거리가 되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윤희숙 저격수’로 나선다. 박범계 의원은 윤 의원이 “임차인을 강조했는데 소위 오리지날은 아니다”라며 ”국회 연설 직전까지 2주택 소유자이고 현재도 1주택 소유하면서 임대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주택 하나는 처분한 윤 의원을 비판한 박 의원이 정작 다주택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풍이 불었다. 게다가 “눈 부라리지 않고 이상한 억양 아닌 조리 있게 말하는 건 그쪽에서 귀한 사례”라고 언급한 대목은 지역감정을 유발시켰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박 의원은 이를 삭제하고 자신의 다주택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역시 민주당의 윤준병 의원은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다가온다”, “전세의 월세 전환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임차인의 입장에서 전세와 월세에서 부담하게 되는 금액의 차이가 어떠한지, 그래도 전세가 월세에 비해 임차인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무엇인지에 무지하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니 “월세 사는 세상이 다가온다”며 감격해 하는 그의 모습은 국민에게 얼마나 생뚱맞게 받아들여졌을까.

두 의원의 경솔한 발언들이 역풍을 맞고 있는 와중에 김남국 의원이 저격에 참전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윤희숙 의원님 글에서 임대차 3법으로 월세로의 전환이 '가속화 된다’는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논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는 것이 김 의원의 지적이었지만, 그 논거는 5분 짜리 짧은 연설에서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견문을 넓히고 상식을 키우는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임대인들이 당장은 보증금 반환할 여력이 안되니까 전세시장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겠지만, 실거주와 매도를 택하는 임대인들이 늘어날 것이고 가뜩이나 귀한 전세매물은 앞으로 품귀현상을 빚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물론 부동산 시장의 앞날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니, 윤 의원의 얘기가 과장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몇 년 후의 일을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유있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다면 그 우려를 해소할 보완책을 의논하는 것이 국회의 책임이었다. 그럼에도 국회심의조차 건너뛰고 자신들의 생각만 담아 통과시킨 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들을 경청하는 것 조차 거부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야당 의원의 연설이 공감과 인기를 얻자 함량 미달의 저격에 나서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은, 불통의 태도 그 자체이다. 우리의 여당 의원들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심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카라바조 <나르시시즘> 1595년경
▲ 카라바조 <나르시시즘> 1595년경

           

카라바조의 작품 <나르시시즘>에서 나르시스는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너무도 사랑하다가 결국 자신을 찬미하면서 호수에 빠져 죽는다. 그런 종류의 ‘자기애’는 저주이며 그 극단적인 형태는 결국 자기파멸이 된다는 점을 그림은 말해주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자아도취적인 사람은 스스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우월감에 빠진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4.15 총선 이후 지지자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열고, 비판하는 목소리들에는 귀를 막아버린 민주당은 집단적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쓴 소리를 듣기 싫어도 참으면서 경청하는 것이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바라보며 국정을 운영하는 자세이다. 집권세력이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너무도 사랑하다가 스스로 호수에 빠져버린다면 나라의 불행이 되고 만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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