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 보고서에 ‘문책’ 요구는 과도한 정치적 대응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한 소비지원금 지급안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한 소비지원금 지급안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조세재정연구원의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라는 보고서가 곳곳에서 난타당하고 있다. 지역화폐 도입의 선도자격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근거 없이 정부 정책을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라며 "조세연이 왜 정치적 주장에 가까운 얼빠진 연구결과를 지금 이 시기에 제출했는지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까지 주장했다. “2년 전까지의 연구결과를 지금 시점에 뜬금없이 내놓는 것도 이상하다”며 정치적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있을 때 추진하여 좋은 반응을 얻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는 지역화폐의 효과를 부정한데 대해 분격한 모습이다.

경기도 산하 경기연구원도 조세연 보고서에 대한 비판에 나섰다. 경기연은 “조세연 보고서는 의도된 전제와 과장된 논리로 지역화폐에 대한 일반적으로 보편화된 상식들을 뒤엎고 있다”면서 “사용한 자료부터 부실하고 사실에서 벗어난 가정과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지역화폐 발급으로 골목상권 활성화를 뒷받침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뒤집는 내용”이라며 “사실이라면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할 중대한 사안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국책연구기관이 국정운영에 대하여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도 이 지사를 거들고 나섰다. 김 원내대표는 "지역 화폐가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에도 지역경제 활성화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면서 "민주당과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서 지역사랑 상품권의 발행 규모를 15조원대로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지사에 대한 힘 실어주기로 해석되는 말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얼빠진’ 연구보고서이길래 그러나 싶어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특별히 정치적 의도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 일반적인 연구보고서였다. 보고서는 지역화폐 도입이 유발하는 경제적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지역화폐 도입 시 해당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 증가와 함께 대형마트의 매출액이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로 이전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하는 지역화폐는 인접한 다른 지역의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또 특정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은 인접한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는데, 결국 모든 지역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매출 증가 효과는 줄고 발행 비용만 순효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역화폐가 온누리상품권 등 다른 상품권이나 현금을 단순 대체하는 경우에는 소형마트의 매출을 늘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보고서는 평가한다. 그래서 조세연 보고서에서는 지역화폐의 발행을 중앙정부가 보조해주거나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조세연 보고서가 지역화폐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만 담은 것이 아니었다. 지역화폐가 대형마트에서 지역 소상공인으로 매출을 이동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인근 지역의 소비감소를 전제로 한 만큼 중앙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비용부담의 마이너스 효과가 난다는 게 요지이다.  지역화폐의 긍정적 효과를 설명하고 있는 경기연 등의 기존 보고서는 화폐 발행 지역 내에서의 매출 효과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고, 조세연 보고서는 역외 다른 지역에 미치는 영향까지 감안하여 전국적인 효과 여부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니, 초점이 다른 양 쪽의 견해가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전국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중앙정부의 정책을 조언한 조세연 보고서를 갖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때린다고 비판하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관점의 연구 결과 사이의 토론을 하면 되는 일이다.

문제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보고서를 놓고 지나치게 정치적 해석을 하며 ‘문책’까지 요구하는 광경이다. 그냥 연구자들 혹은 연구기관들 사이의 토론의 문제로 넘기면 될 일을,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하며 화를 내는 것은 적절한 대응방식이라 하기 어렵다. 문제의 보고서를 향해 여러 차례 성난 반응을 보인 이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채택해 추진중인 중요정책에 대해 이재명의 정책이라는 이유로 근거없이 비방하는 것이 과연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온당한 태도인지 묻습니다.” 자신의 정책이기 때문에 근거없이 비방을 했다는 것이고, 국책연구기관이 정부의 중요정책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정책’이기 때문에 비판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지역화폐가 문재인 정부의 중요정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혹 그렇다 해도 국책연구기관이 정부 정책과 다른 의견을 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국책연구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법률로 보장되어 있다. 정부 정책과 같은 의견만 내는 것을 임무로 한다면 굳이 연구기관을 따로 운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의 입맛에 맞추는 연구보고서만 내놓는데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심지어 같은 사안을 놓고도 정권이 바뀌면 입장이 달라지는 고질적인 병폐도 보아왔다. 이런 마당에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 하나를 놓고 ‘문책’까지 요구하며 정치적으로 과잉 대응하는 모습은 이들 기관을 정치의 부속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크다. 요즘 자신의 정책이나 의견에 대한 비판에 참지 못하고 불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재명 지사를 보면, 대권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의견들을 껴안을줄 아는 ‘민주주의적 리더십’의 산을 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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