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삼성 이건희 회장이 떠났다. 글을 쓰기 전에 그의 장례식을 전후해 언론에 나온 칼럼들을 검색해봤다. 이회장과 삼성이 우리나라, 아니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칼럼 수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이는 그를 조문하고 나온 정·재계 인사들의 짧은 인터뷰가 곧바로 엄청난 논란을 초래한 한국사회 여론 구조의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망자의 영정 근처에서 추모의 변에 이어 공과와 영욕, 이 두마디에 기업인 이건희 회장의 삶은 편리하게 압축됐다.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는 조국 사태 때처럼 찬반이 당장 달려들듯 대치하는 여론의 기세 앞에서 언설을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이건희 회장의 삶과 죽음은 유명 인사들의 조사와 언론 매체들의 특집 보도로 한때의 유행처럼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 그와 삼성은 기업은 물론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한 훌륭한 텍스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난 2007년 삼성의 비자금과 로비 폭로 이후 과는 공을 삼켜버렸다. 삼성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던 정경유착, 무노조경영에 이어 불법승계라는 딱지가 가압류되듯이 들러붙었다. 흔히 얘기됐듯이 이건희 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에서 정반대 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와 삼성의 연이은 위기로 인해 한국사회는 기업과 국가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쳐 왔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이건희 회장이 삶의 마침표를 찍은 지금은 그와 삼성을 통해 한국의 길을 찾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라도 이런 기회를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재판장이 어떤 판결을 내리더라도 삼성과 재벌이 겪어온 영고성쇠는 이미 한국사회에서 공공재처럼 활용돼야 한다. 그 논의의 방법도 찬반 위주의 여론몰이가 아니라 1992년, 50세의 이건희처럼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리며 체중이 10kg 빠질만큼 치열해야 한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한 그는 1988년부터 신경영을 선포했지만 5년 동안 '삼성병'에 절망했으며 앞선 부회장 8년까지 포함해 13년 동안 좌절의 시기를 경험했다.

이건희 회장의 삶은 취업난에다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더 힘든 인생의 터널을 거치고 있는 20~30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굴지의 재벌 가문에 3남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시작은 비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산사대부속초등 4~5학년 동기였던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 사장은 ‘당시로서는 구하기 힘든 장난감을 가져와서 함께 놀던 생각은 나는데 말이 없고 장난도 잘 치지 않는 아이라 다른 기억은 거의 없다’고 회고했다. 초등학교 때 유학 간 일본에서는 3년 동안 1,200여편의 영화를 관람했고 와세다대 성적은 F학점에 가까울 정도였다고 한다. “선진국을 보고 배우라”는 아버지의 당부와 달리 프로레슬러, 야쿠자, 사기나 절도 전과 20범 등의 사람을 만나고 관찰했다. 삼성 비서실 견습사원 시절(26~27세)에는 삼성 관련 신문기사에 밑줄 긋는 일을 했다.

여기까지라면 ‘재벌가의 아들답게 해 볼 것 다 해보고 회장을 물려받았다’는 20~30대의 코웃음이 나올만 하다. 하지만 그가 13년간의 시련과 실패를 극복하고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이르는 과정은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다. 부회장으로서 SK와 경쟁을 했던 대한석유공사 인수를 비롯해 모든 사업들은 실패했다. 1987년 회장에 취임했지만 5년간 그는 ‘수줍은 황태자’에 불과했다. 그랬던 그는 1992년 세번의 계절을 치열하게 보낸다. 그리고 이듬해 ‘지금 당장 변하지 않으면 삼성은 곧 망한다’는 신년사를 시작으로 사장단과 L.A로 건너갔다. 다른 나라 제품에 밀려 구석에서 먼지를 덮어쓴,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는 삼성의 제품을 보여준 것이다. 1993년 10월 삼성이 일본을 제치고 메모리 분야에서 드디어 세계 1위에 등극한 비결은 반도체 5라인을 세계표준인 6인치가 아닌 8인치 웨이퍼 양산라인으로 결정해 생산량을 두 배나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장의 의사결정이 실패할 경우 손실액은 1조원 이상이었다.

이건희 회장 다음의 삼성이 새로운 시작점에 섰다는 의미는 우리나라 전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마치 공상과 같았던 세계 1위의 꿈을 달성한 삼성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듯이 대한민국도 경제 수준에 걸맞는 합당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 가을 성찰의 계절을 맞아 우리는 고 이건희 회장의 삶과 죽음을 통해 개인과 기업, 국가가 스스로의 두려움과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개선과 발전을 이뤄야 할지에 몰두해야 한다. 그 성찰에 아울러 정경유착이라는 모진 회초리에 몸서리를 치고 있을 삼성이 2대 회장의 빈자리를 메우고 국가경제의 선두를 이어갈 수 있도록 모색해야 한다. 일류의 삼성에는 과연 무엇이 어울리며, 또 그렇지 않은지는 그 명석한 두뇌와 혹독한 고초로 이젠 자각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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