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21대 국회 당론 추진…19·20대에선 자동 폐기
산업 안전 의무 소홀히 한 기업경영자 처벌 핵심
한국경총, 중대재해법 통과되면 기업 활동 우려
'보수당' 국민의힘 "초당적 협력" 약속…'제정 탄력' 관심
與노동존중실천단·한노총 발의 "당론 아니지만 노력할 것"
기업과 정부의 산업 안전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에 대한 국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정의당에 이어 더불어민주당까지 법안을 내놓고, 보수당인 국민의힘까지도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19대·20대 국회에서 연이어 무산된 법안을 21대 국회에서는 처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민주당-노동계 합의안 마련해 중대재해법 발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계와 합의를 이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를 알렸다. 이날 자리에는 박주민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노동존중실천추진단과 국회 생명안전포럼, 한국노총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우원식 의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민주당의 노동존중실천추진단 1호 법안이자, 국회 생명안전포럼 1호 법안"이라면서 "또다른 김용균을 막는 법이기에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 제정만으로 모든 중대재해를 모두 막을 수는 없겠지만, 생명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이 확고하게 자리잡길 기대한다"며 "어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초당적 협력을 말한 만큼 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국노총과 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었다"며 "지난 국회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이 중대재해법을 당론으로 채택해 반드시 이번 회기에서 통과시키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박주민 의원안은 정의당의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과 내용면에서는 거의 유사하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의 사망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공무원까지 형사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다만 박 의원안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해 법 적용과 처벌 수위를 조정했다. 또 개인사업자와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안전 의무 및 보건 조치 의무 이행을 위한 제도 마련을 전제로 4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고 노회찬 숙원 법안...7년 만에 여야 '큰 틀 공감'
정의당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또 사업주 등에 손해액의 최대 10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도 담겼다. 고 노회찬 의원의 숙원 법안이지만, 20대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정의당안에 '기업처벌법'이라 명시된 부분이 재계 입장에서는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샀고, 보수 정당 의원들 역시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말한다. 경총 관계자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사업주 처벌 형량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올해 1월 사업주 처벌 수위를 강화한 개정안을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법안을 도입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과잉처벌"이라고 주장했다.
우원식 "아직 당론으로 보긴 어려워" 정의당 "당론임을 밝혀야"
아직까지는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안이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앞서 이낙연 민주당 당대표는 지난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해마다 2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희생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그 시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그 취지를 살리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다른 관련법과 병합 심의가 될 것"이라고 말해 노동·시민단체·정의당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 대표의 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취지는 반영하지만, 법 제정에서는 한 발 물러선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전향적 입장을 취하는 국민의힘과 달리 일부 언론에서 민주당이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자는 쪽으로 당론을 모으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머뭇거리는 민주당의 행보가 사회적 요구와 배치된다는 점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우원식 의원은 "아직 당론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당론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저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민주당과 정책연대를 하는 한국노총도 그런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당과 충분히 논의해서 이 방향(중대재해기업처벌법) 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주민 의원은 "(당 소속) 노동존중실천단 안에 중대재해TF가 만들어진 것은 당 차원의 판단과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당론으로 정해지려면 의원들의 의사가 모이고, 의원총회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 의원은 또 "산안법 개정도 어려웠는데, 중대재해기업처벌이 되겠냐는 질문도 있는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의 어제(10일) 발언에 희망을 갖는다"고 말했다.
강은미 의원은 박주민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 "박주민 의원의 법안이 면피용이 아니라 확고한 당론임을 국민 앞에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이낙연 대표가 연설한 날에만 적어도 4명의 노동자가 죽었다"며 "당대표로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책임을 질 때"라고 말했다.
'보수정당' 국민의힘 '초당적 협력' 전향적 입장...제정 탄력 받나
앞서 국민의힘은 10일 '약자와의 동행' 일환으로 추진된 여의도 연구원의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 "그간 당이 방치하는 동안 산업현장 안전 관리 미비로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해왔다"며 "민주당과 우리 당이 제대로 처리 못해 자동폐기 된 걸 사과한다"고 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산업 안전은 정파간 대립 문제가 아니다"면서 "모든 정파가 힘을 합쳐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는 제도를 마련하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모두가 한마음으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장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주 원내대표는 "제가 환노위에서 일할 때도 이런 문제를 주장했는데 입법까지 연결시키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너무 늦어서 마음이 무겁다"며 "외국 입법 사례라든지 사고 방지에 어느 정도 도움되는지, 과잉입법은 아닌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데, 지금의 방식은 되지 않는다. 민사든 형사든 훨씬 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이 문제를 같이 논의하자는 것 자체로도 굉장한 진전"이라며 "중대재해법을 비토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재벌 이미지를 내걸던 국민의힘까지 협력을 약속하고, 뒤늦게 더불어민주당까지 호응하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한 국회 내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각 당마다 조금씩 입장 차이가 있어 세부 각론은 조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 소수 진보정당 중심으로 발의됐다 무산됐던만큼 7년 만에 여야가 뜻을 모을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인다.
한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직접 고용관계와 간접고용에서도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물려, 헐거운 기존 법망을 촘촘하게 재설계한 것이다. 지난 19대·20대 국회에서도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발의됐지만, 거대 양당의 무관심 속에 자동 폐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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