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산티아고에서  11개국이  CPTPP 출범에 대한 합의에  서명헸다. <사진=연합뉴스>
▲ 칠레 산티아고에서  11개국이  CPTPP 출범에 대한 합의에  서명헸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20일 미국 제46대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다.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이라는 대통령 선거운동 슬로건이 의미하듯이,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초래했던 다양한 형태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특히, 국제통상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전망된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기조 아래 일방주의적 통상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로 침체한 국내경제를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리더십을 복원하는 외교정책의 연장 선상에서 통상정책을 운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상 분야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분야가 중국과의 통상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부분에서는 전임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사이에 차이가 없다. 이는 미국의 여론 주도층이 가지고 있는 공감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을 견제하고 경제적으로 중국을 봉쇄하여 기술패권경쟁에서 한발 먼저 앞서가려는 전략을 바이든 행정부 역시 선택할 것이다. 다만, 일방적인 고율의 관세부과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견제와 봉쇄하는 전략을 시행할 것이다.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봉쇄하는 것은 크게 다자무역체제인 세계무역기구(WTO)를 이용하는 방법과 소규모의 경제체제를 활용하는 방법 등 두 가지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후자를 더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WTO는 현재 중국을 포함하여 164개국이 회원국이어서, 특정 사안에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랜 시일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WTO를 통해 중국의 불공정무역관행을 단시일 내 미국의 의도대로 제어하는 게 쉽지 않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소규모 경제체제를 활용하는 방법을 선호할 텐데, 이런 이유로 주목을 받는 것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다. 원래 CPTPP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총 12개국이 참여하여 추진되어 오던 것인데, 지난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TPP 탈퇴를 선언해 버렸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TPP를 추진했던 가장 큰 목표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라는 큰 틀 아래 추진되어 온 TPP 협정이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바이든과 시진핑 <사진=연합뉴스>
▲ 바이든과 시진핑 <사진=연합뉴스>

사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이 지금 형태의 CPTPP에 단순히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다만,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일방적인 고율의 관세부과를 통해서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트럼프 행정부의 사례에서 경험하였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CPTPP를 어떠한 형태로든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제통상 규범 측면에서 현재의 CPTPP는 TPP 협상 과정에서 일부 국가의 반발로 원래 계획보다도 낮은 수준이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지지를 받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경제통합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CPTPP가 형편없이 낮은 수준의 경제통합은 아니다. 지난 11월 한국 등 15개국이 서명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보다도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한 지역주의적 대응수단으로 CPTPP를 고려한다면, 당장 가입하는 것보다는 디지털 무역, 노동, 환경 등 USMCA에서 규정된 수준으로 재협상 후 가입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회원국 확보를 추진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CPTPP 가입을 추진하여, 중국과는 RCEP, 미국과는 CPTPP+를 활용하는 양대 축 전략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반영한 것이 지난 1월 11일 개최된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논의 결과이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CPTPP 참여 적극 검토’와 함께 ‘한미 전략적 경제협력 방안’이다. 이러한 두 가지 의제를 별개의 안건이 아닌 패키지로 이해하여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 보건 및 방역, 디지털 및 그린 뉴딜, 첨단기술, 다자주의 등 미국과의 협력 안건을 ‘CPTPP 참여 적극 검토’와 함께 제시한 것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보내는 한국 정부의 신호’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CPTPP 협상이 개시된다면, 한국 정부는 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이 CPTPP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한국 정부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다양한 경제협력 안건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바이든 행정부에 선언한 것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으로 국제통상질서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통상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중 기술패권경쟁, 국제정치질서의 변화, 디지털 무역의 확대, 안정적인 글로벌 가치사슬의 구축 등 다양한 측면을 동시에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 향후 급변할 국제통상질서의 파고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전략적 상황판단과 인식 아래 중장기적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대응정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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