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뉴타운 재개발 여파에 "건물 임대료 상승"
지역이 보존적 가치가 있다면 "보존 재개발해야"

김한구 이태원앤틱가구거리협회 회장. <사진=김현우 기자>
▲ 김한구 이태원앤틱가구거리협회 회장. <사진=김현우 기자>

 

[폴리뉴스 김현우 기자] 영국 런던의 최대 앤틱(골동품) 가구·소품 시장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 일본 도쿄의 '메구로 가구거리(目黒インテリアストリート)'. 두 곳 모두 지역 상권의 특색을 잘 유지하고 있는 ’앤틱 가구거리‘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이태원앤틱가구거리(가구거리)'를 찾았다. 이곳의 역사를 알기 위해 지난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직후로 거슬러 가봤다.

이태원앤틱가구거리협회(회장 김한구)에 따르면, 당시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온 미국 군인(미군)들은 본국에서 쓰던 가구도 함께 가져왔다. 이후 전쟁이 끝나자 미군들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폐허가 된 땅에 남아있던 한국인들은 이들이 버리고 간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군들이 사용하던 가구는 대부분 유럽풍의 고가 가구였고, 한국인들은 한곳에 모여 수집한 가구를 되팔았다. 그 장소가 현재의 가구거리다. 이곳은 최근 주한미군들이 평택 미군기지로 이전하기 전 모여있던 용산 미군기지 옆이기도 하다.

올해로 이태원앤틱가구거리의 역사는 70여년이 지났다. 유럽풍의 거리. 다양한 앤틱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들. 한국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앤틱가구거리가 이곳에 있다.

하지만, 최근 한남뉴타운 개발과 전례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가구거리는 위험에 처해 있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이태원앤틱가구거리. 상점은 문을 열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뜸하다. <사진=김현우 기자>
▲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이태원앤틱가구거리. 상점은 문을 열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뜸하다. <사진=김현우 기자>

 

한남 뉴타운 개발에 사라지는 개성

“적게는 3000만원 많게는 1억원에 가구가 팔렸다”

기자는 김한구 이태원앤틱가구거리협회 회장을 만났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 당시, 이곳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김한구 회장은 "가구거리를 찾는 손님 대부분이 앤틱 마니아층이라 불리는 큰 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20여 년간 장사를 하는 상인 A 씨는 "1990년대 당시 유럽에서 1000만원에 들여온 작은 장식장이 1억원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며 "몇억 원대 골동품 가구거래도 흔했다. 길가는 고급 승용차와 트럭들로 종일 북새통을 이루고, 배송에 필요한 트럭 운송조합만 2곳이나 이곳에 자리 잡고 영업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최근 가구거리는 야속하게도 재개발 인근 지역에 포함됐다. 지난달 24일 정비업계와 각 자치구에 따르면 총 28개 구역이 2차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서울시에 최종 추천된 것으로 조사됐다. 용산구에선 한남 1구역이 추천됐다.

가구거리는 재개발 소식의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중개업소가 우후죽순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거의 개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김 회장은 "몇 년 전만 해도 이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마치 유럽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앤틱가구로 특화된 개성 있는 거리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부동산 중개업소가 하나 둘 씩 들어오면서 앤틱 가구거리만의 모습을 잃어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재개발 여파에 따른 건물 임대료 상승도 문제였다. 수십 년간 한 곳에서 가구점을 운영해오던 상인들도 하나 둘 이곳을 떠났다. 이에 대해 권강수 상가의 신 대표는 한남뉴타운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인근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권 대표는 "한남뉴타운 재개발 지역, 종로구, 충무로 등 서울의 구도심은 앞으로 정부 주도하에 개발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현재 부동산 가격의 추세가 오르고 있는 만큼, 가격 상승세는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가구점은 운영하는 상인 B 씨는 "원조라는 자부심 하나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며 "고가구를 찾는 사람이 줄어드는 대신 재개발에 관심을 보이는 수요가 늘어나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한구 회장은 "(부동산 가격 상승세로 인해) 임대인들도 월세를 올리고 있다. 상인들도 월세를 많이 내는데, 이곳에 새로 입점한 공인중개사들에게는 더 많이 받는다"며 "상인들이 월세를 약 300만원을 내면 공인중개사들은 450~500만원을 내고 있다. 향후 재개발이 될 가능성을 보고 비싼 월세를 내며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개발이 되더라도 현재의 가구거리 개성을 보존하고 개발해야 한다"며 "이런 대안 없이 개발이 되면 안된다. 정부 입장에서도 이 거리를 ‘스토리(역사)가 있는 장소’로 만들어 보존하며 개발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가구거리 인근의 중개업소들은 이곳이 고유의 색깔을 잃더라도 매매가가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한남뉴타운은 황제 뉴타운이라고 불리며 인기가 치솟고 있다”며 "가구거리는 한남뉴타운과 아주 가까이 위치해 있어서 업종이 바뀔 순 있어도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태원앤틱가구거리도 코로나19 대확산의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 했다. 사진은 앤틱 가구를 판매하던 한 상점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사진=김현우 기자>
▲ 이태원앤틱가구거리도 코로나19 대확산의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 했다. 사진은 앤틱 가구를 판매하던 한 상점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사진=김현우 기자>

 

코로나19 직격탄에 재개발까지 '이태원앤틱가구거리'의 미래는

가구거리의 거리는 한적했다. 옆 골목에 위치한 이태원 음식 거리처럼 곳곳에 임대문의 안내판도 붙어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유동인구도 줄어들면서 오가는 발길이 줄었다. 가끔 보이는 손님은 20·30세대 커플들뿐인데, 앤틱 가구 특성상 워낙 고가제품이라 대부분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김 회장을 포함한 상인들은 '앤틱 가구거리 페스티벌' 등 자체 마케팅을 기획하며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이곳은 10대부터 70대까지 전 연령층이 방문해 즐길 수 있는 거리다"라고 강조하면서 "고령층은 추억을 회상할 수 있고, 젊은 층은 옛 것에 대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구거리의 상점마다 모두 다른 개성과 특색을 갖추고 있다. 볼거리가 풍부하다. 또한 매년 봄가을 가구거리 축제 등을 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태원앤틱가구협회는 매년 ‘이태원 앤틱 페스티벌’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태원 앤틱 거리에 있는 업체 100여 곳이 참여한다. 축제에서는 깊숙이 자리했던 오랜 앤틱 가구, 조명기기, 소품 등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주말 플리마켓 행사, 유튜브 채널 운영 등 다방면으로 이태원앤틱가구거리의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협회의 노력뿐만아니라 서울시와 용산구청에서도 함께 적극적으로 노력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의 특색에 맞는 상권을 개발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장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역사와 개성을 살려 작게는 상인부터 크게는 지역 상권까지 연계해 특화산업을 조성하고 보존해야한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태원앤틱가구거리가 재개발 지역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지역이 보존적 가치가 있다면 '보존 재개발'을 해야 한다"라면서 "특화산업 거리 조성 등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도 해당 지역은 보존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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